내가 만난 육식하는 스님들
고되고 험난했지만 다채로운 경험과 멋진 추억을 선사해 준 집시 화가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 후 제주도 살이를 시작했을 때 우연히 만난 승려들의 이야기를 꺼내본다.
처음 한달살이를 시작하고 도서관 가는 길에 늘 지나치던 'X X 사'는 작은 탑과 커다란 종, 돌담과 야자나무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모습의 사찰이었다. 매번 지나치며 망설이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발길이 절 쪽으로 향해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발을 들이자마자 입구에서부터 웬 노란 고양이가 애교 있는 자태로 나를 반겨 홀딱 빠져 놀기 시작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절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때 멀리서부터 합장을 하며 빠르게 다가오는 비구스님 한분이 계셨다.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다 차나 한잔하고 가라는 스님의 제안에 종탑 아래에 자리한 유리벽으로 꾸며져 사방이 탁 트인 다도공간에서 여러 종류의 귀한 차를 대접받았다.
"제주도 한달살이라. 지금 숙소는 어디에 있어요?"
"X X 리 부근이요."
"한 달에 얼마예요?"
자본주의와 물질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거라 여긴 수행자가 돈 이야기를 이렇게 직접적으로 꺼내다니 의외라 생각하며 얼마라고 대답하자 너무 비싸다며 어느 어느 할머니 집은 월 30만 원인데~ 하시는 거였다. 하긴 주지스님이라면 절 운영도 해야 하니 돈에 관한 감각도 필요하겠다 여기자 이해가 갔다.
맛이 깊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 홍차를 받아 마시며 스님은 어떻게 이 어려운 출가수행을 하시는지 존경스럽다고 하니 출가는 전혀 어려운 게 아니라 하시며 돈 때문에 출가한 스님도 많다고 한다.
"네? 돈 때문에요?"
"삼시 세끼 밥 먹을 수 있고 또 월급도 받으니까 출가하는 사람도 있어요."
엥? 스님이 월급을 받다니 생각도 못해본 일이었다. 절에 들어오는 보시금으로 생활하시는 게 아니었구나! 게다가 월급에 숙식제공도 받는다면 백수가 머리 깎고 승복 입고서 불법에 귀의한 척 가짜 수행자가 될 만도 하다. 그렇다고 어떻게 생계와 돈 때문에 짝퉁 스님행세를 할 수가 있을까? 하긴 스님들이 몽둥이 들고 이권다툼하고, 룸살롱에서 신나게 놀았다는 뉴스도 있었음을 망각하고 있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스님은 몇 시에 일어나시는지 여쭤보았다. 절실하게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나인지라 새벽에 일어나시는 스님께 조언을 받을 요량으로 드린 질문이었다.
"7시나 8시쯤 일어나요."
??
어릴 적 템플스테이 할 때 스님이 새벽 다섯 시에 방 불을 일제히 켜 모두들 비몽사몽 일어나 예불했던 힘겨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 스님은 프리스타일 부엉이형 수행자이신가? 보통 스님들은 서너 시에 일어나 수행한다던데 참 특이한 스님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아침에 저 큰 종은 누가 울리나요?"
"그건 새벽 다섯 시에 종 울리는 스님이 따로 있고~ "
알고 보니 다섯 비구승려가 이 사찰안에서 함께 생활 중이고 종 치는 막내스님만 아침형 인간이었다. 스님들 중 두 분은 외국에서 온 서양인 스님이라고 한다. TV나 책에서만 접하던 파란 눈의 승려라니! 자본주의적인 늦잠 자는 주지스님, 그리고 타향살이하다 출가한 외국인 스님 이야기에 내 머리는 탈수하는 세탁기처럼 뺑뺑 돌아가고 있었다. 그 주지스님의 이야기는 내가 들어본 사찰 이야기 중 가장 쇼킹했다.
스님들이 끼니는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궁금해 절에 공양주 보살님은 계시는 지 여쭙자 요즘 제주도는 귤 따는 철이라 공양주 보살 구하기 힘드시다며 그냥 근처 식당에서 해결하신다고 하셨다.
"어머 채식식당이 근처에 있나요?" 하니 스님의 표정이 사뭇 굳어지며
"그냥 주는 대로 먹어요." 하셨다.
그리고 이어진 말씀은
"오늘은 점심으로 한우를 거하게 구워 먹었지요. 누가 고기를 쏴가지고. 한우를 놓치면 절대 안 되죠."
너무나도 놀라워 입이 벌어졌다. 가짜스님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오랜 해외생활로 한국스님을 몇십 년 만에 만나 영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한우를 맛있게 자셨다는 스님의 발언에 내 머리는 마치 위층에 놓인 큰 종을 때릴 때처럼 땡~ 하고 울렸다.
땡~
중 인가?
고기를 먹지 않으면 고산병에 걸리는 티베트나 불교국가 부탄,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라오스 등의 국가와는 다르게 우리나라 불교에선 스님이 고기를 먹으면 땡중으로 치부한다. ‘고기는 어떻게 할까요?’ 묻자 귓속말로 ‘밑에 깔아-’라고 한 냉면집에 간 스님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채식과 스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우리나라에서 스님이 고기를 먹다니…. 살생을 금하는 부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나에겐 한우에 환장한 스님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들은 이야기는 달랐다. 탁발한 식량에 들어있던 돼지고기를 드시고 식중독에 걸렸던 부처님도 주는 대로 먹으라고 하셨고 수행자들에게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 적도 없다고 한다. 승려가 고기를 먹는 게 불법도 아니니까 진심으로 그 스님을 이해하고 싶었다.
차를 한 모금 마셔 복잡한 머릿속을 씻어 내렸다.
"고기를 안 먹으면 영양부족으로 병에 걸리기 쉽죠."
"스님, 저 고기 끊은 지 몇 년 됐고 채식 공부해 보니 인체에 필요한 영양소를 식물에게서 다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채식을 한다고 하자 스님의 눈이 목탁에 난 구멍보다 커졌다.
"그래요? 채식으로 칼슘과 단백질도 채워지나요?"
"네. 아몬드, 치아씨, 케일, 콩 등으로 충분히 칼슘 섭취가능하고 거의 모든 식물에 단백질을 비롯한 영양분이 골고루 들어가 있어요. 현미에도 단백질이 들어있고요. 다양한 채소를 골고루 먹으면 돼요."
육식을 즐기는 스님과의 채식 이야기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스님은 뭔가 켕기는 게 있는 사람처럼 표정이 안쓰러워졌고 나는 이 일반인 같은 주지스님이 어떻게, 왜 출가하셨는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죽기 싫어서요."
죽음이 두려워 출가했다는 짧은 답변이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스님의 얼굴이 지옥에 빠진 사람처럼 급격히 어두워졌다. 차를 권하며 내가 더 오래 머물기를 원하던 스님께 인사를 하고 도서관에서 그날 할 일을 하기 위해 절을 나섰다.
세상에 죽고 싶어 하는 생명은 없다. 자살을 원해 높은 층에서 떨어졌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뛰어내린 즉시 마음이 바뀌어 몹시도 큰 후회를 했다고 할 정도로 진정으로 죽고 싶어 하는 생명은 드물다. 스님이 맛있게 자신 소고기도 도축 전에 도살장에서 발버둥 치며 살고 싶었던 소였을 것이다. 죽기 싫어서 출가한 스님이 죽기 싫어하는 동물을 먹는다니 어불성설이라 여겨졌다.
한달살이를 마치고 서귀포에 집을 구해 이사를 한 뒤 쌀쌀한 겨울 바닷바람이 불던 길에서 한 비구니 스님과 마주치고는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하고 인사를 드렸다. 내향적인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한 달 전 소고기에 환장하는 남자스님을 만나고 난 뒤 충격에 휩싸여 이 여자스님은 다를 거라 기대를 내심 한 것 같았다. 아담한 체구의 비구니 스님은 너무나도 반가워하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제주도에 온 지 얼마나 됐냐는 질문에 한 달가량 됐다고 하자 마침 제주도를 다음 달에 떠날 예정이라 물건을 나눔 중인데 혹시 매실액이 필요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굉장히 귀한 유기농 매실액이라 강조하시기에 감사해하며 폰번호를 드리고 한 달 후 짐 정리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자원봉사차 스님댁으로 향했다.
제주도에서 3년을 홀로 수행하다 전라도에 위치한 모 산에 있는 절로 들어가신다던 스님의 집은 분리형 원룸으로 바다가 보이는 오션뷰에 꽤 넓고 안락한 공간이었다. 스님은 당연히 사찰안에서 수행하는 줄 알았는데 원룸에서 수행을 하다니 그저 신기했다.
혼자서 도를 닦던 스님은 제주도에 쉬러 오셨다고 하시며 다시 육지 산속의 사찰로 들어가는 걸 굉장히 부담스러워하셨다. 스님에게도 안식년이 있나? 절을 3년이나 떠났다 다시 들어가시는 스님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꼭 절에서 수행해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수긍이 갔다.
함께 쓰레기를 버리고 분리수거를 한 뒤 마지막 짐 정리를 돕는데 스님이 갑자기 말씀하셨다. 체력을 위해서 반드시 잘 먹어야 한다고. 그러면서 자신은 고단백 영양제를 꼭 섭취한다고 한다. 마늘도 먹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불교승려들은 수행에 방해가 되는 오신채(마늘, 부추, 파, 달래, 흥거)와 양파를 먹지 않는다. 그런데 이 스님은 체력 저하로 마늘을 먹고 고단백을 드신다며 풀만 줄곧 먹다 몸이 축났다고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열 살이나 어린 나보다 훨씬 더 건강해 보이고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스님이 나이 오십에 이팔청춘처럼 팔팔하기를 바라는 것부터 욕심이고 무리 같았다. 스님은 내게 강력히 육식을 권하셨다.
"고기 좀 먹어요. 고기. 몸 다 망가지기 전에. 그리고 채식 웬만하면 하지 마요."
스님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나의 신념을 강요한 적은 없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완전 채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도 주변사람들에게 시장 바닥 약장수처럼 채식을 권하고,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채식에 관한 책을 보내고, 몸이 아프다는 언니에게 채식의사가 쓴 책을 보내준 적도 있었다. 채식만이 인류를 구원할 마지막 희망이고 동물해방과 환경보호를 위해 모든 지구인이 무조건 채식을 해야 한다고 굳게 믿으며 채식이 이 세상 마지막 진리인 듯 '채식 천국 육식 지옥'을 외친 것이다. 완전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채식에 교주는 없지만 추대한다면 브로콜리가 어떨까 하는 망상에도 젖어봤다).
시간이 흘러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평가하지 않는 중도의 삶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자 내가 아상이 강하고 집착이 심하며 굉장히 극단적이었다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먼저 채식의 이점을 물어보지 않는 한 언급하지 않고 채식을 한다고 동네방네 떠벌리지도 않는다. 누가 채식을 얕잡아보고 후려쳐도 그러려니 하며 싸움닭이 되지도 않는다. 한번은 식물도 생명인데 왜 먹냐면서 식물이 불쌍하지도 않냐고 그냥 이 세상 하직하라는 자살권유도 받았다. 예전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이젠 그런 사람도 이해해보려 한다. 지금은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처음 됐을 때 은근히 과시하고 거만떨던 나의 알량한 도덕적 우월감을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남의 인생에 간섭을 하거나 훈계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남의 음식을 분별하고 평가하는 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남이 무엇을 먹던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을 보며 살아야 한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평가를 멈추며 남은 생 그저 여여히 살다 가고 싶다. 들판에 핀 들꽃처럼.
제주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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