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low Flower Cafe in Ubud, Bali
그 카페로 가는 길은 힘겨웠어요.
가파른 계단을 많이 올라 숨차고 무더웠지만 표정이 꺼벙하면서 뭔가 띠꺼워보이는 하늘색 불상과 귀여운 집들을 카페 가는 길에 발견하고 기분이 좋은 상태로 카페에 도착했어요. 이런 아름다운 길을 걸은 것도 행운이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니 환상적인 전망이 눈앞에 펼쳐져 속으로 방방 뛰었어요.
'뷰가 미쳤어!'
앞서 걷던 세명의 프랑스 사람들도 그 풍광에 압도된 듯 땡볕이 내리쬐는 테라스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눈을 떼지 못했어요. 옐로우 플라워 카페에서 보이는 이 로맨틱하고 숨 막히는 뷰가 알고 보니 한때 화산이었던 볼케이노라고 해요.
초가집같이 생긴 정자에 신발 벗고 들어가 앉아 부채질로 땀을 식혔어요. 큰 빈땅맥주 한 병, 채식옵션 나시고랭, 스프링롤을 시키고 잠시 기다린 후 음식이 나와 한입 먹어보니 오후의 나른함과 더위에 반쯤 잠겨있던 눈이 번쩍 뜨였어요. 어떻게 이런 맛이!? 까만 나무볼에 담겨 파인애플과 바나나가 얹어 나온 나시고랭은 열대과일 덕분에 달달함이 더해져 계란과 함께 나왔을 때보다 한결 감칠맛이 났고 땅콩소스에 찍어먹는 스프링롤은 고소하고 신선한 맛이 좋았어요. 땅콩을 즐겨 먹지 않아 땅콩소스나 피넛버터를 멀리하는 제가 소스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어보기는 처음이었어요.
나시고랭은 제가 먹어본 나시고랭 중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어요. 나시고랭은 인도네시아의 전통음식으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매년 꼽힐 정도로 인기가 많아요. 호주에 살 때 알게 된 미고랭은 발고랑 내를 연상시키는 이름 때문에 이상하다고만 여기고 인스턴트라면 미고랭을 딱 한번 먹어본 게 다였는데 작년에 처음 발리에서 미고랭과 나시고랭을 먹은 후 홀딱 반했어요. 밥알 가득 + 채소 듬뿍 들어간 짭조름하며 달달한 맛의 볶음밥과 누들에 반할 줄이야. 한입 한입이 너무 맛있어서 양이 줄어드는 게 아쉬웠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맛이었어요. 한국인 입맛에 안 맞을 고수도 들어가 있지만 주문할 때 미리 빼달라고 하면 돼요. 저는 계란을 빼달라고 해서 파인애플과 바나나가 얹어진 채식 나시고랭을 먹었어요. 햄이나 치킨을 추가하면 추가요금이 더 붙어요.
맛있는 음식에 꽂혀 먹는데만 집중하다 뭔가가 움직이는 느낌에 옆을 바라보니 벌건 대낮인데도 연푸른 민트빛이 감도는 도마뱀이 기어 나와 벽 한쪽을 장식했어요. 생긴 것도 색깔도 신비롭고 사랑스러운 녀석이었어요. 파충류는 싫지만 더운 나라에 오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도마뱀 겍코Gecko는 예외랍니다. 예쁜 맛집에서 신이 나 맥주를 원샷하던 여자를 찾아온 도마뱀은 카레색 쿠션 뒤로 숨어 들어갔고 저는 맥주 대짜를 들이켜서인지 화장실이 급해졌어요. 심각한 길치라 화장실이 어딘지 몰라 마구 헤맬 때 예수님처럼 머릴 길게 늘어뜨린 금발 남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며 제 마음을 읽었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화장실이 어디인지 알려줬어요. 우붓에서 긴 머리 남자를 많이 봤어요. 특히 비건 식당 사유리 힐링 푸드 Sayuri Healing Food에서 짝퉁 예수님들을 틈만 나면 만나요(전인권도). 자유인이 대거 서식하고도 남을 재미난 우붓입니다.
화장실에 다녀오자 어린 두 딸을 데려온 인도인으로 보이는 가족이 제 바로 옆테이블에 자릴잡고 앉으며 양해를 구했어요.
"우리가 방해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전혀요. 심심했는데 잘됐네요. 내향인이지만 지루한 건 못참고 사람 구경하는 것도 즐긴답니다.
네 식구의 영어 악센트가 귀에 익었어요. 혹시나 하고 영국인이냐고 물어보니 방글라데시계 영국인들이었어요. 발리에 산지 2년이 넘었는데 이 식당 단골이고 부부가 요가를 하러 바로 옆 인튜이티브 요가 Intuitive Yoga에 자주 간다고 해요. 박찬호과인 젊은 아빠가 묻지도 않은 TMI를 늘어놓은 덕에 글소재도 생겨 고맙네요. 우아한 웨이브 머리에 긴치마를 입은 부인이 참 여리여리하고 예쁜데 밝은 어린 딸들은 더 예뻤어요. 저녁식사를 하러 온 가족이 단란해보였습니다. .
먹은 음식 계산을 하고 밍기적거리며 취중작문 삼매경에 빠져있는데 테이블에 앉아있던 뒷자리 백인 커플 중 남자가 몹시 진지하고 정중하게 물었어요. 제 자리에 앉고 싶으니 뜰 때 제발 알려달라고. 시옷자 눈썹을 한 얼굴표정이 정말 절실한 걸 보니 이 자리가 명당인가 봐요.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고 말한 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옆집 막내딸이 벽에 붙은 두 마리 도마뱀 중 한 마리를 잡으려고 살금살금 다가가 손을 뻗자 민트 겍코는 혼비백산 도망가버렸어요.
2025년 4월 말 발리에 휴가 왔을 때 이 카페를 알게 되고 5월에 한국 생활을 모두 정리한 뒤 숙소를 정하며 이 동네로 오고 싶었지만 전망이 좋아서인지 너무 비싸 예산이 감당을 못할 것 같아 그 옆동네의 홈스테이를 예약했고 한 달간 지내며 자주 찾아왔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 카페 바로 옆 인튜이티브 요가에서 요가하고 이곳에서 목을 축이고 배를 채워요. 눈이 축 쳐진 발리 강아지도 만나고 한들한들 피어있는 노란 꽃들 너머로 초록이 우거진 볼케이노 뷰를 감상하며 치유의 시간도 가져요. 눈도 혀도 배도 마음도 한순간에 편안해지는 마법의 공간입니다.
이 예쁜 맛집 Yellow Flower Cafe를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우선 연필(2H 같이 연한 심의 연필)로 중요한 선을 대충 그어준 뒤 피그마 마이크론펜(방수펜)으로 밑그림을 그려줍니다.
그림이 작아(A4) 들고다니고 여러 카페를 전전하며 펜선을 그리기도 합니다. 시간이 참 오래 걸린 작업이었어요.
예술적인 발리식 천장을 붓으로 채색하기가 가장 힘들었지만 마치고 나니 뿌듯해졌습니다.
이제 그림자 그리기만 남았어요. 거의 다 끝나갑니다. 그림자 그리기가 제일 귀찮아 미적거리며 딴짓하고 다른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드디어 완성입니다. 감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많은 그림은 인스타그램@nonichoiart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