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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백조를 먹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은?

흑조의 호수에서 고양이 아조씨 돌보는 백조 화가의 호주살이

by 논이

2주 전 발리를 떠나 브리즈번을 거쳐 시드니 부근의 드넓은 호수가 보이는 집에서 혼자 남겨진 고양이를 돌보며 하우스시팅을 하는 노마드 그림쟁이 노니입니다.


2011년부터 호주, 뉴질랜드, 영국, 스위스에서 하우스시팅을 종종 해왔지만 코로나펜데믹으로 귀국해 3년 반의 제주 유배생활을 하다 발리로 떠나 4개월 반을 살고 어쩌다 보니 호주로 오게 되었는데요, 큰 짐 끌며 여행하고 적응하느라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모험과 도전정신으로 설레고 있습니다.


호주에 오기 전 발리에서 하우스시팅 웹사이트에 등록을 한 뒤 광고를 낸 집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며칠 후 영상통화로 인터뷰를 하는 도중 그는 집안 전체를 돌며 이곳저곳을 보여주고 밖으로 나와 뒷마당을 거쳐 호수를 보여주기 시작했어요. 그때 타이밍 좋게도 흑조, Black Swan 한 무리가 발레 군무를 하듯 맑고 푸른 호수 위를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고 그 동화 같은 풍경에 한눈에 반해 하우스시팅을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네덜란드가 고향인 집주인 A는 85세인 노모를 뵈러 암스테르담으로 떠나 한 달 동안 집을 비우게 돼 그의 일곱 살짜리 고양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고 수많은 시터들이 도전했지만 반려동물 초상화를 그려준다는 미끼를 던진 제가 뽑혀 현재 호숫가의 집에서 고양이 씨미 Simi와 둘이 조용히 지내고 있답니다. 서호주 센트럴 코스트의 버지이 Budgewoi 호수와 접한 곳으로 시드니에서 꽤 멀지만 아름다운 흑조 떼와 사랑스러운 고양이 덕분에 힐링은 물론 글, 그림을 위한 영감까지 얻는 데다 천국에 휴가온 듯 비현실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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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480.JPG 카메라를 들이밀며 다가가자 도망가는 흑조들. 도망가는 모습마저도 발레 하듯 우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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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다니는 펠리컨과 이름모를 눈가 빨간 새.

매일 호수에서 흑조와 오리, 펠리컨, 왜가리 등을 보는데 겁이 많은 날개 달린 친구들은 제가 가까이 다가가면 서둘러 도망가기 바빠 멀리서나마 바라보며 만족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흔히 접하던 백조가 아닌 흑조라 더 신기하고 볼 때마다 동화 속 세상에 온 것 같아 경이로울 뿐이에요. 호주가 원산지인 블랙스완은 순우리말로 검은 고니인데 몸전체가 까맣고 부리는 선명한 붉은색으로 마치 붉은 을 입에 물고 고혹적으로 춤추는 검은 드레스의 귀부인처럼 기품 있고 미려합니다.


IMG_7467.JPG 카메라 렌즈를 줌 해서 직접 찍은 흑조


스크린샷 2025-11-01 오후 5.44.07.png 가까이 보면 이렇답니다. 출처 : 나무위키


호주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흑조는 일부일처제로 살며 평생을 함께한다고 하지만 특이하게도 커플의 30%가량이 수컷 동성애커플이라고 하네요. 동성애커플은 다른 둥지에서 알을 뺏어와 품거나 암컷을 들여와 알을 낳게 한 뒤 쫓아낸다니 알면 알수록 신기한 동물의 세계입니다. 어쩐지 세 마리의 흑조가 같이 다니는 걸 계속 봤는데 의문이 풀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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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479 2.JPG 평화로운 세 마리의 흑조. 3썸? 제일 윗사진은 폰으로 찍었고 아래 두 사진은 구형 카메라로 찍었는데 느낌이 다릅니다. 다른 날 찍은 탓도 있지만 사진기로 찍은 게 더 자연스럽죠?



흑조와 백조에 대해 검색하다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어요.


백조는 럭셔리 품목으로 유럽에서 인기가 높았습니다. 잔치에서 특별한 음식으로 먹기도 하고 크리스마스에도 인기가 좋았죠. 헨리 3세의 크리스마스 저녁만찬에는 40마리의 백조가 주문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잉글랜드에서는 백조취식이 불법입니다. 오직 한 사람, 영국에서 백조를 먹을 수 있는 이는 바로 백조의 주인인 여왕뿐이에요.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호주산 흑백조(Black swan)가 몇 마리 영국으로 수입되었는데 여왕에게는 흑조를 먹을 권리가 없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살아계실 때 공식적으로 그녀가 백조를 취식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시대가 변하고 먹을게 널린 만큼 잡수시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그 아름답고 연약한 생명체의 목을 따 죽여 먹다니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칩니다. 유럽인들이 개고기를 먹는 동양인을 끔찍하다고 생각하듯 그 예쁜 백조를 잡아먹었던 그들의 조상을 저는 용납 못합니다. 사실 백조는 제 경험상 여리여리한 외모와는 달리 살짝 무서운 새입니다. 런던에서 머물 때 캐널에서 네 마리의 백조 가족에게 빵을 뜯어 주다가 제 행동이 굼떠서 답답했는지 덩치 큰 백조가 부리로 제 허벅지를 가차 없이 공격해 도망친 적이 있었어요. 빨리 빵 안 줬다고 호되게 쥐어터지고 난 뒤에는 무서워서 백조를 피했지만 바라만 봐도 아름답고 우아한 에너지를 선사하는 백조가 여전히 좋아요. 그래서 제가 백조인가 봅니다(그림 그리는 사람 =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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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엔 백조는 없고 마흔 마리 남짓의 흑조만 살고 있어요. 다행히 젠틀한 고양이 아조씨 씨미는 호수 쪽으로 절대 가까이 다가가질 않아 새들이 무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일곱 살이지만 인간의 나이로 44세인 귀여운 냥저씨를 돌보게 된 덕분에 한 달 동안 잔잔한 호숫가에서 우아한 흑조들 바라보며 그림 그리고 힐링하며 명상할 수 있어 행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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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498.JPG 따사로운 호주의 아침 햇살에 설탕가루 뿌려놓은 듯 반짝이는 버지이 호수와 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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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펼쳐진 하얀 구름이 데칼코마니처럼 반사된 오후의 호수 풍경


IMG_6143.JPG 파스텔로 색칠한 캔버스가 된 환상적인 저녁 하늘과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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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856.JPG 흑조는 아니지만 언젠가 그린 백조 그림. 종이 위에 혼합재료(잉크, 수채). 논이 그림


IMG_6864.JPG 인어와 장어가 차 마시는 연꽃카페. 백조가 차를 서빙하고 개구리는 차를 만드는 찻집


photo-output 3.png 백조는 아니지만 오리와 토끼 그림. 종이 위에 수채. 논이 그림
photo-output.png 하우스시팅을 하며 돌본 고양이들을 그려 집주인들에게 선물로 주고 왔어요. 모두 논이 그림
IMG_4262.JPG 이곳의 저녁 하늘을 닮은 그림. 린넨 위에 아크릴. 논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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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많은 그림은 인스타그램 @nonichoiart 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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