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으로 돌아보고, 다독이는 내 마음
2024년 1월 17일이었다.
아이는 복사였다. 그날 처음 대복사를 서는, 소복사 아이에게 미사 전 대복사가 하는 일을 가르쳤다. 그리고 미사가 시작되었다. 미사를 마친 후 나는 배터리가 얼마 없어 다른 공간에 충전을 꽂아둔 스마트폰을 가지고 왔고, 아이의 복사복 정리를 위해 다시 성전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소복사 아이의 엄마가 "오늘 대복사 처음 하는데 오빠가 저희 아이를 잘 가르쳐주더라고요. 감사해요."라고 말했다. 칭찬도 감사인사도 부끄러운 내가 "처음이지만 야무지게 잘하던걸요." 하고 인사를 하고 있던 순간, "레나타, 이리 와 봐라." 주임신부님이 부르셨다. "네." 하고 갔더니 "내가 람베르토를 혼냈다. 알고 있어라."라며 이어서 말씀하셨다.
좀 잘한다고 어기적거리며 걷고, 미카엘 신부한테도 그러면 안 된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있는 거 같고, 제일 하면 안 되는 거다. 복사 잘릴 수도 있다. 잘되라고 하는 말이다.
사실 아이가 혼났다는 말에 뇌정지가 오는 기분이었다. 복사를 하면서 목요일 성시간에 처음 복사를 서서 뒷 제의방에서 불을 켠 것 외에는 삼, 사 년의 복사 기간 동안 혼이 난 적이 없었다. 아이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하는 생각과 주임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나도 혼나는 것 같아서 바짝 얼어버렸다.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몰라서 "네 알겠습니다." 하고 제의방에 들어갔더니 아이의 눈동자는 이미 빨갛게 변해있었고, 소복사 아이와 성인 전례부가 아이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짐짓 가볍게 넘겨 보려고 아이에게 "신부님께 혼났어?" 말을 건네봤지만 아이는 마음이 상했을 때 그러듯 나를 정면으로 보지 않았다.
아이는 쉬 말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뜨고서 무슨 일이냐고,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그제야 눈물만 뚝뚝 흘렸다. 상황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신부님의 입장에서 아이를 이해시키려 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리고 당시엔 신부님이 아이에게 복사 교체를 말씀하셨을 줄은 미처 몰랐다. 내가 신부님의 말씀을 들을 때 떠올랐던 단어가 '교만'이어서 "신부님은 네가 복사가 익숙하니 교만해졌다고 생각하셨나 봐. '교만'이라는 단어는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야. 엄마가 한 말이야."라고 말을 하며 달래려고 했는데 그게 아이의 눈물보를 터트려 버렸다.
나는 그날 아이가 복사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지는 못했다. 이제는 아이가 마음을 다해 신경 써서 복사를 선다는 신뢰가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전엔 타 본당에서 미사를 보고 우리 성당에서 저녁 미사를 또 본 건데 그날따라 독서와 성가, 복음과 강론이 뭔가 하나로 꿰어지는 기분이 들면서 몰입을 했다. 아이가 내 시선에 걸리는 순간 외에는 굳이 아이를 찾아 복사를 어찌하고 있는지 보지 않았다. 기뻐해야 할, 미사에 집중한 시간이 '왜 하필.'이라는 생각으로 다가왔다.
신부님이 왜 그렇게 보신 걸까? 네 마음에 정말 그런 부분이 없었을까? 오해받을만한 행동은 없었을까? 먼저 생각해 보자. 그런데 네가 다시 돌아봐도 아닌 건 아닌 거야. 신부님도 실수할 수 있어. 다른 사람의 비난이나 지적은 하나의 의견이야. 네가 외부에서 어떤 이야기를 듣든,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해. 진심으로 사랑해. 이제껏 잘해왔고 애쓴 거 알아.
그렇게 담담하게 말은 했지만 쉽게 그치지 않는 아이의 눈물을 보며 나도 울고 싶었다.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차디찬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걸었던 길, 복사를 선 날 밤이면 보름달처럼 부푼 마음으로 돌아오던 그 길이 고개를 들어 가로등과 달을 찾을 만큼 유난히 깜깜했다. 끝없이 이어진 길을 헛발질하듯 걸어왔다. 그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