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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엄마 Apr 21. 2024

수치스러운

  며칠 전 밤,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을 어쩌질 못하고 이것저것 막 먹었던 날이었다. 필요한 열량에 비해 과하게 먹은 것이 불편해 운동을 하고 자려는데 먼저 자러 들어간 아들이 "엄마 그냥 자면 안 돼요?" 한다. 그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왜? 무엇 때문에?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내 마음 때문에 늦은 밤 감정카드를 펼쳤다. 그런데 감정이 약간 나쁜 정도를 나타내는 파란 컬러가 아니라 격한 표현이 있는 보랏빛 카드에서 손이 멈춘다. 눈으로는 애써 파란색 카드를 살펴보았지만 다시금 내려놓고 보라색 카드를 손에 쥐고 있다. 고른 감정카드도 극단적인 쪽이다. 심술 난, 당혹스러운, 화나는, 억울한, 혐오스러운 그리고 수치스러운. 


 도대체 무엇이? 무엇에 심술이 나고 화가 났으며, 당혹스러우며 억울하고 혐오스럽고 수치스럽기까지 하단 말인가. 아이는 그냥 자자고 했을 뿐인데. 묘하게 떨어지는 아이의 억양이? 부정어로 표현한 것이? 대체 나 왜 기분 나쁜 건데? 왜 이 정도까지 나쁜 거야? 이해가 되지 않아 며칠을 카드를 펼쳐놓고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곱씹고 곱씹어 봐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어 이 비슷한 감정이 올라오는 다른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가 그려진다. 교육을 받으러 가면 모둠활동이 참 많다. 무척이나 내향적이지만 수업에 필요한 만큼의 적당한 자기 개방은 잘하는 편이고, 빠르게 진행하고, 정리하는 것에도 익숙하다. 발표도 한다. 다만 발표자가 정해지는 그 순간이 싫다. 정해진 시간 내에 해야 하니까 모둠활동에 주도적이었던 건데 함께 교육받으러 온 교육생들은 적극적이거나 자발적이다 싶은지 발표를 시킨다. 어느 한 사람이 나를 지정하면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지 않으니까 몰아가듯 해서 결국은 내가 하게 된다. 그럴 땐 보통 내가 모둠 안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하다. 바로 그 순간! 어차피 누군가 해야 하니까 하긴 하는데 "제일 어리니까 샘이 발표해라."가 나를 엄청 짜증 나게 한다.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에게 하라고 하는 순간. 나는 강요의 순간이라고 생각이 들면 그 상황의 정도나 상대의 표현과는 관계없이 기분이 나빠지는 거다. 심술이 나고, 화가 나고, 억울해하면서 나를 혐오하고, 그리고 수치스러워하면서. 


 이 감정들을 펼쳐놓고 얘들이 왜 상황에 맞지 않게 튀어나올까 생각해 봤다. 그 아래 무언가 더 있는 것 같았다. 며칠을 책상 앞에 놓아두고 노려보다 발견한 것은 '불안'이었다. '불안한'. 내 감정과 선택과 결정에 많은 부분을 좌우하는 그 불안. 또 너였냐. 이 불안의 뿌리는 뭘까. 궁금해졌다. 그냥 나는 내가 불안감이 높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기질적으로'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글을 쓰지 못한다 하더라도, 책상을 정리하지 못한 채 펼쳐 놓는다 하더라고 어떻게든 파헤쳐 보고 싶은 마음에 그냥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어제 답을 찾았다. 


 미사 중 또 분심이 생기려 해 십자가를 보았다. 지난 피정 때 '외롭지 말라고 나를 부르셨구나.' 했던 깨우침이 다시 떠오르던 그때. 아! 내 불안의 장면을 보았다. 초등학교 6학년, 반 여자 아이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했다.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그때의 나는 필사적이었다. 딱 한 명만이라도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 초등 6학년 내내 초연한 척했지만 나는 외로웠다. 그 상황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 한 친구와 가까워졌고 그야말로 지독한 가스라이팅을 겪었다.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친구는 나에게 자신의 한문 숙제를 시켰고, 그 친구의 숙제를 하느라 정작 나는 숙제를 못해, 나가서 매를 맞았다(한문 숙제만이었을까. 가장 숙제가 많았던 과목을 말할 뿐). 나에게 죽으라는 쪽지를 보냈던 그 아이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한다. 학교 화장실에서 쪽지를 보며 울던 내가 아직도 안쓰럽다. 나는 외롭고 싶지 않았던 거다. '또 외로워질까 봐.' 하는 불안에 타인의 요구에 순응하면서도, 그런 내가 부끄럽고, 창피했던 거였다. 결국엔 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그 마음. 지난가을부터 내가 결심하고 결심하게 되는, 이제는 꼭 나를 지키고 살겠다는 그 마음이 정도를 지키지 못하고 밀려 들어와 추태를 부렸다. 과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도 정도 이상의 분노의 감정이 넘실거렸던 이유. 나는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었던 거다. 한쪽에는 나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그 반대편에는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그 두 마음이 오락가락하였고 과거의 경험들이 그 마음에 덧씌워졌다. 그리고 불안과 외로움과 그리고 그 모든 복잡한 감정들이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알아차리고 나니까 큰 산을 하나 넘은 기분이었다. 앞에선 무척이나 높은 산이었는데 뒤돌아보니 넘을만한, 야트막한 야산 같기도 하다. 또 한 편으로는 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경험과 시간이 생각보다 더 깊게, 내 뼛속까지 상처를 남겼었구나 싶기도 했다. 어린 날의 내가 가엽다. 그리고 이 알아차림이 정말이지 고맙다. 이제부터라도 내게 남은 시간을 나를 지키면서,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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