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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엄마 Mar 11. 2024

불안

  아이가 중학교에 가자 담임선생님이 사물함에 달 자물쇠를 사 오라고 하셨단다. 집에 있는 새 자물쇠에는 어찌 된 영문인지 여벌의 열쇠가 없었다. 덜렁거리며 물건을 잃어버리기 일쑤인 녀석이라 혹시나 하나밖에 없는 열쇠를 잃어버려 교과서를 꺼내지 못하는 아찔한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시간을 내 새로 자물쇠를 사자고 했었다. 주일 저녁의 잠시 잠깐의 평화가 남편과 아들의 투닥거림으로 깨지고, 분위기도 전환할 겸 둘이 같이 가서 자물쇠를 사 오라고 보냈다. 집에 들어온 아이에게 내일 학교 갈 책가방을 정리해 가지고 오라고 한 후, 자물쇠의 열쇠 세 벌을 분리해서 하나는 집에, 하나는 아이 필통에, 그리고 하나는 책가방 속에 보관하던 순간이었다. 가방 가장 안쪽에는 포장을 뜯지 않은 자물쇠가 하나가 더 있었다. 기존에 집에 있던 여벌의 열쇠가 없던 자물쇠와 함께. 


 아이에게 "이건 뭐야?"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예전에 있던 거라고 한다. 그럼 왜 이걸 두고 새로 샀냐고 물었다. 그러자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 딱 봐도 수상쩍다. 오늘 자물쇠를 산 영수증을 보자고 하자 찢어버렸다고 한다. 그럼 용돈 카드 내역서를 보자고 했다. 그제야 아이가 오늘 산거라고 말했다. 남편에게 왜 아이가 자물쇠를 두 개나 사게 뒀냐고 하자 잠시 다른 걸 보고 있는 사이 아이가 혼자 계산해서 나왔단다. 아이의 거짓말이 화가 났다. 필요 없는 물건을 사고 물건을 쟁여두는 아이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행해 놓고 딴짓을 한 것 같은 남편에게도 짜증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슨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때 아이가 물었다. "과소비라고 생각하세요?"


 과소비. 조용히 혀 끝으로 과소비라는 말을 굴려보았다. "아니. 과소비는 아니야. 자물쇠 두 개를 샀지만 네 용돈의 절반이 안 되는 금액이니까." 이어서 말했다. "왜 하나를 샀는데 또 다른 걸 샀어?" 아이가 대답했다. "불안해서요." 어떤 것이 불안하냐고 묻자 대답을 잠시 망설이던 아들은 자물쇠와 열쇠를 잃어버릴까 봐라고 했다. 아이의 대답에 나는 내 화의 원인을 단박에 찾아낼 수 있었다. 나도 불안했던 거다. 지금은 천 원, 이 천 원으로 불안을 잠재울 수 있지만 나중에는 아이가 자신의 불안을 누그러뜨리는데 얼마의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불안. 그게 비용이 아니라 '무엇이', '어떤 것이' 될지 모른다는 아들 불안의 기회비용에 대해. 그걸 깨닫고 나니까 아이에게 차분히 말할 수 있었다.  


 네가 불안해서 자물쇠를 하나 더 산 것처럼, 엄마도 지금 불안한 거야. 불안을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하나 더 사는 것은 아닐 수 있어. 엄마는 네가 자꾸만 그런 식으로 해결할까 봐 불안해서 너에게 언성을 높이게 되었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걸 솔직히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네가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서 엄마는 가서 환불해 오라거나, 영수증을 붙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어. 그런데 엄마가 이런 말을 한다면 좋은 태도가 아니지. 그건 네 거짓말에 대한 엄마의 앙갚음이 되는 거야. 엄마는 그러고 싶지 않아. 자꾸만 일상에 대해 불안해지는 마음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리고 우리 서로에게 솔직했으면 좋겠어. 불안해서 하나 더 샀다고 해서 엄마가 혼내지는 않아. 산 자물쇠는 네 책상에 보관했다가 필요하면 꺼내 쓰자.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하는 아이에게 "응. 엄마도 이런 엄마 모습이 마음에 들어."라고 말했다.  

불안. 아이와 내 몸속에 마치 유전자처럼 흐르고 있는 이 감정. 생각해 보면 아이와 나의 불편한 감정은 대부분 여기에서 싹이 튼다. 불안해서 화를 내고, 불안해서 몰입하고, 불안해서 다그친다. 내가 추측했던 것보다 더 많은 나의 감정과 행동과 태도가 불안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한 때는 잘 쓸 수도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의 내 모습은, 그리고 아이의 모습은 불안을 잘 활용하지는 못한다. 마주 보지 못하고 피하려고 했던 비겁함이 나은 결과인 것 같아 씁쓸하다. 자물쇠를 사러 가게 된 모습부터 내가 불안함을 깨닫는 그 순간까지, 내 마음 저 깊은 곳 조용히 흐르면서 침식과 퇴적을 반복하고 있는 불안을 본다. 원인을 알 수 없고, 작은 일에도 심하게 불안해하는 나를 안다고 한들 단박에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앞으로도 이 순간처럼 '내가 마음에 드는 내 모습'을 선택할 약간의 지혜와 여유가 주어지길 바랄 뿐이다. 아이에게 담대함과 용기의 유전자를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지만 아쉬운 모습도 안고 조금씩 달라져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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