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을 했다. 남편과 꽤 오랫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싸우다, 멈추다, 다시 싸우기를 반복했다.
말다툼을 하다 보면 그전에 말다툼을 한 데서부터 이어서 다시 시작을 하는데 그럼 그 과정에서 또 다툼거리가 생긴다.
"지난번에 그렇게 말해놓고 그걸 잊었어?"
"말을 하다가 당신이 자러 들어갔으면 그다음은 당신이 먼저 얘기하자고 해야 하는 거 아냐?"
"이 일이 당신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니? 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어?"
이게 내가 주로 한 말이라면,
"그렇게 말했으면 됐잖아. 무슨 말을 더 해. "
"너는 무슨 일로 우리가 이렇게 싸웠는지 기억이 나니? 나는 안 난다."
"무슨 말을 더 하라고? 미안하다고 했잖아."는 남편의 말들이었다.
추격하고 묻고 따지는 게 나라면, 덮어버리고 묻어버리고 회피하려는 게 남편이었다. 나는 해결을 해야 덮을 수 있는 사람이고, 남편은 덮고 지나가야 해결이 되는 사람이다. 우리 둘 모두 각자의 입장은 타당하다.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에 또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데 왜 굳이 이 불편이 벌어질 수 있는 불안을 감수해야 하는가.'가 나의 입장이라면 '각자의 기준이 다르니 생각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고, 굳이 이걸 싸우는 상황을 경험할 필요가 없다.'는 남편의 입장이다.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하면 둘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상황 안에서는 손톱만큼도 서로의 입장을 양보할 수 없을 만큼 팽팽하고 치열하게 다투게 되는 생각의 차이이기도 하다.
2008년에 결혼했으니 부부로 산지가 벌써 17년 차다. 아이가 14살이니 부모로 산 지도 14년째.
그런데 여전히 다툰다. 못된 말을 주고받으며 거칠게 싸우고 아파서 어쩔 줄을 모른다. 결혼한 지 십 년쯤 되었을 무렵에도 참 많이 싸웠었는데 주변에서 십 년 차쯤 되면 정말 많이 싸우는 시기라며 잘 넘기라고들 했다. 그래서 이 시기만 넘기면 좋아지나 했었다. 실제로 아이 출산 후부터 십 년째 꾸준히 이어지던 부부싸움은 십삼사 년이 되자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이제 우리 부부에게 큰 다툼은 없겠지. 이제는 좀 더 편한 부부로 살아가게 되겠지.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돌아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즈음 싸움이 덜 했던 것도 있지만 그때부터 삼 년을 주말 부부를 하면서 얼굴을 맞댈 절대적인 시간의 부족으로 다툼거리가 덜했던 것도 싸움이 적었던 큰 몫을 차지했던 거다.
싸움의 이유가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었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사건 그 자체라고도 생각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땐 우리 부부의 싸움에 시어머니와 우리 부모님을 끌어다 그분들은 모르게 참전시기키도 했다.
남편과 한 달 정도 냉랭하게 지내고, 또 이어서 삼 주를 서로를 잡아먹을 듯 싸우던 시기, 참석하고 싶은 모임과 참석하고 싶지 않은 모임까지 겹치면서 '좋은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좋은 관계란건 뭘까. 어떻게 해야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싸우지 않는 관계란 있을 수 없다. 가장 친밀해서 서로에게 민 낯으로 맹수처럼 이를 드러내며 싸우는 남편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적절하게 두껍거나 얇은 가면을 쓰고 만나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으로 필요나 목적에 의해 맺어진 관계에서는 노골적으로 싸울 수는 없으니 은근하게 싸운다. 전화를 피하거나 문자 확인을 늦게 한다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거나, 만나는 것을 회피하는 등으로.
나는 운 좋게도 좋은 관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 뚜렷한 목표 의식으로 나와 자신이 속해 있는 그룹 전체를 강력하게 밀어붙이던 목표지향적인 분이 계시다. 당시 이 분으로 인해 관련 분야의 지식이 바닥이었던 나는 매주 매 주가 괴로웠다. 그래서 외면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고,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등으로 혼자 싸웠다. 하지만 이 분이 인격적으로 정말 좋은 분이셔서 결국엔 내 모든 거절과 다툼의 행위가 부끄러워졌었다. 그리고 그분에게 스치듯 가볍게,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그땐 너무 어려워서, 매주 목표치를 달성하는 것이 힘들어서 좋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고. 그분이 좋은 사람이어서 따뜻한 사람이어서 내 부끄러움을 내 보일 수 있었다.
나를 들여다보면 나는 은연중에 싸우지 않는 관계가 좋은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과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싸우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싸우니까 그게 죽을 맛이었다. 이만하면 그만하고 잘 지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 싸움의 이유와 방법에서 멈추지 않고 파생되는 자멸과 공멸의 생각.
이번 시간을 경험하면서 나는 부부싸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건을 집어던지고, 상대를 해치거나, 두고두고 상처가 될 말을 뱉는 것이 아니라면 다툼은 타당하다. 그리고 당연하다. 나와 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차이를 좁힐 수 없는 생각이, 태도가, 사건이 있을 거다. 우리 두 사람은 내가 아는 지인처럼 좋은 인품을 가지지 못해 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나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이번 상황을 남편이 말하는 그 정도의 대응법에서, 남편 식으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내가 더 좋은 방법을 제시할 수 없다면 여기서 멈추는 것도 괜찮은 거라고. 무엇보다 내가 화해하는 법을 모르고 용서가 쉽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어쩌면 나는 어릴 때 경험했던 부모님의 부부싸움이 지긋지긋해서 환상을 품었는지도 모른다.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를 '싸우지 않고.'라고 오역하면서. 그러니까 이 글은 미래의 나를 위한 다짐이다. 또 막장으로 치닫는 부부 싸움에서 삐뚤어진 내 프레임과 내 부족함으로 기억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