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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엄마 Oct 02. 2024

저 사람에게도 작고 귀여운 엉덩이가 있겠지.

  먼저 밝힌다. 저 근사한 말은 내게서 나온 말이나 생각이 아니다. 


 어제 모임이 있었다. 참석한 분 중 한 명이 최근에 겪은 부당한 인간관계의 일로 잔뜩 지쳐 있었다. 참석한 우리는 모두가 서로를 무척이나 아끼는 사이고, 그래서 그분에게 힘을 주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다른 분이 자신의 딸이 한 말이라며 말했다. 이제 고등학생인 지인의 딸은 무섭거나 싫은 상대를 만나면 '저 사람에게도 작고 귀여운 엉덩이가 있겠지.'라고 생각한단다. 내 앞에 서 있는, 나를 경직되게 하는 저 상대에게도 옷 속에 숨겨져 있는 작고 귀여운 엉덩이가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며. 그 순간 우리 모두는 감탄했다. 어쩜 그런 생각과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누구나 정도의 차이, 표현의 차이일 뿐 싫은 사람이 있다. 무서운 상대도 있고, 왠지 껄끄러운 상대도 있을 테다. 나는 그런 사람이 많다. 기준이 높고 까다로워서인 것 같다. 불편한 상대를 피해 보통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집 밖을 나가야 하고, 누군가를 만나야만 하는 최소한의 시간과 횟수는 있다. 상대에게 어떤 의도와 관계없이 내가 평가받는다 또는 저울질당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거나, 능력적인 면에서 상대가 나를 압도한다고 생각하면 몸이 쪼그라드는 것만 같다. 그렇지 않은 척 말과 행동을 하면 결국 그건 집에 와서 이불킥을 할, 부끄러운 기억이 된다. 그런 순간에 지인의 딸이 했다는 말을 대입해 본다면? 나를 평가하는 것 같은 저 사람에게도 작고 귀여운 엉덩이가 있겠지!  상대가 내뿜는 기운으로 공간을 꽉 채우는 것 같은 긴장감보다는 상대가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겠지. 무서워 괜히 눈을 피하고 싶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작고 귀여운 엉덩이를 떠올리면 무섭기보다는 친근함이 봄의 아지랑이처럼 슬금슬금 올라올 것 만 같아. 


  '작고 귀여운 엉덩이'는 지인 아이의 표현이고.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늙고 야윈 등'이 떠올랐다. 최근 아버지의 뒷모습을 많이 봐서인가. 언제 흘렀는지도 모를 세월에 나이 들어 버린 아버지의 낡고 추레해진 뒷모습. 구부정해진 자세, 힘이 풀린 다리. 또 누군가에게는 '숨기고 싶은 작은 가슴' 일 수도 있다. 그럴듯하게 꾸미고 있지만 사실은 꺼져버린 가슴 같은 것. 

 작고 귀여운 엉덩이는 타인을 만만히 보고 우습게 보는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어딘가 가엾게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법의 문구였다. 힘의 전복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긴장되고 위축된 나를 포근하게 달래주는 것. 나와 상대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놓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는 말. 밉고 싫은 사람이 많고, 무서운 관계가 많은, 마흔 중반의 나에게 고등학생이 알려주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 저 말을 떠올리는 짧은 순간이라도 내가 상대에게 같은 인간이기에 가질 유대감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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