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윗집과 소란이 있었다. 스마트폰을 바닥에 둔 건지 끊임없이 울리는 진동에 머리가 울리는 느낌이었다. 짜증을 참지 못하고 경비실을 찾았다. 지난번 경비원께 전날 밤의 위층 소음을 말했더니, '소음이 나는 그 즉시 오셔라. 경비원 대동하고 같이 올라가서 얘기해야 한다.'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경비원과 함께 올라갔지만 말은 내가 했다. 하기 싫은 말을 제삼자에게 하게끔 하는 건 못할 짓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그건 현실을 모르고, 미숙한 내 판단이었다. 윗집 남성분께 '올라오는 게 쉽지 않다. 진동이 계속 울린다. 지난 주말엔 늦은 밤에 사람 소리도 오래도록 크게 났다. 슬리퍼 소리도 정말 크게 난다. 주의해 주셨으면 좋겠다.'가 내가 한 말이었다.
잠시 후 벨이 울렸고, 역시나 경비원을 동반한 윗집 여성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지금이 몇 시인데 올라왔느냐라며 따졌다. 상대도 나도 이미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윗집은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세 번이나 올라오냐고 말하며, 나더러 올라와서는 안된다고 했다. 나는 올라가려고 한 게 아니라 경비원을 통해 말하려고 하니 경비원이 소음이 나는 그 즉시 경비실로 와서 동행해서 가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대는 내가 예민하며 생활소음에 대해서 이해해야지, 그 정도도 이해 못 하면 공동주택에 살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40년 아파트에서 살았지만 이렇게 소음이 많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밤 소음은 심하지 않냐고 맞대응을 했다. 덧붙여 어차피 끝이 나지 않을 이야기니 앞으로 올라오지 말라면 올라가지 않겠다, 조심해 달라고 말을 하며 마무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상대는 끝끝내 말을 이어갔고, 역시나 열받은 나는 아이를 데려다줘야 한다고 면전에서 문을 닫았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왜 다른 사람들과 편안한 관계로 지낼 수 없을까. 이웃사촌 같은 말은 구닥다리 표현이 되어버렸다 해도 그냥 적당히, 이렇게 얼굴을 붉히며 화내지 않는 사이로 그렇게 지낼 수는 없는 걸까 씁쓸하고 착잡했다. 남편에게 전화해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며 불안을 내려놓으려고 애썼다. 나는 소심한 사람이다. 대범보다는 심약에 가깝다. 그래서 버티고 참고 누르다가 크게 터트리고, 터트리고 나서는 앞으로 오가며 마주칠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불편해한다. 그래서 이런 갈등이 참 힘들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갈등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며 도파민이 돌아 갈등을 만들고 만드는 사람이 있을까. 요즘은 이상한 사람이 많으니까 있다손 치더라도 일반적이지는 않을 거다. 그러니 상대도 이 상황이 기분 나쁘고 불쾌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더구나 본인은 층간소음을 막기 위해 슬리퍼도 신고 다니고, 남편과 자식이 여러 차례 이야기 해서 나름 조심하며 산다고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면 더더욱 억울할 수도 있다. 그래, 좋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이야기했으니 앞으로는 조심을 하겠지 그냥 털자라고 생각하는 찰나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위층에서 남편에게 전화해 따졌다는 거다. 순간 애써 추스르려던 마음에 또 지옥의 불길이 타올랐다. 검색창에 층간소음 복수를 입력했다. 그러다 허탈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실은 이 층간소음으로 인한 괴로움보다는 더 큰 것이 있었다. 위층 사람이 남편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이유, 바로 우리와 상대는 누수로 법정 분쟁을 갔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둘 다 지금 아파트에 세입자를 들이고 살고 있던 무렵, 위 층 보일러 분배기의 문제로 물이 샜고,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세입자가 그 피해를 봤다. 그리고 세입자는 그 피해에 대해 우리에게 분풀이를 하듯, 이사 전 날 남편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내 우리를 황당하게 했다. 위층과의 분쟁은 결국 소액재판으로 이어졌고, 우리 측의 누수 증거를 자신의 결백을 토로하는 것으로 첨부해 계속해서 시간을 끌었다. 코로나 시절 남편은 수요일에 열리는 가정법원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과 부산을 비행기 타고 다녔다. 결과는 일부 승소로 마무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있었다. 내가 아무리 떳떳해도 내용 증명 봉투만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편이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 억지 트집을 다는 서류가 올 때면 진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상대로부터 우리가 질 거고, 자신들이 선임한 변호사 비용도 우리가 내게 될 거라고 이쯤 하고 그만하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서울-부산을 출퇴근하며 돈은 돈대로, 체력은 체력대로 쓰는 남편을 볼 때마다 속이 상했다. 나는 그때의 미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는 이사 오기 전 삼 주간의 인테리어 공사로 새벽부터 이른 저녁까지 쿵쿵거릴 때면 위층에 대한 분노는 고스란히 적립되었다. 그렇게 적립된 분노는 저들이 이사 후 밤 10시 이후, 12시경에 말하고, 의자를 끌 때마다 화력을 더했다. 층간소음은 사실이지만 분노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의 항의가 정당한 행동이었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진짜 내 마음은, 한 번은 사과를 듣고 싶었다. 법정에서 승소 판결로 우리에게 입힌 피해에 대해 금전적으로 약간의 변상을 하는 것 말고, 진짜 사과를 말이다. 법원은 아주 최소한의 피해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구제할 뿐이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어 미안하다고, 그동안 번거롭게 해 미안하다고, 그 한 마디를 바랐다. 듣고 싶던 그 한 마디가 없어 잔뜩 심술 난 채로, 나 역시 상대를 자극했다. 그들도, 우리도 아파트 이슈에 발이 묶여 여기서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내 심술은 이제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