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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Jun 11. 2023

지영

4. 고백

그날 저녁 늦게까지 퇴근을 하지 않고 불꺼진 사무실에 앉아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낮에 한 그녀의 말을 몇번이고 곱씹었다. 우리 그냥 마음가는 데로 맡겨봐요. 샘이 하는 고민 나도 했거든요. 그런 말들이 계속 머리를 지나다녔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아내였다. 왜 안오는거냐고 했다. 일이 좀 있어서 정리를 하고 늦을거니 먼저 자라고 했다. 아내는 언제나 나를 지극하게 챙긴다. 그런 아내에게 미안했다. 그렇다고 마음이 정리되는 건 아니었다. 마음가는 대로 그냥 두어보자고? 그녀는 그게 뭘 뜻하는지 알고 하는 소리일까? 그 종착역이 어디인지 알고는 있을까? 정신을 차리고 정리를 해야하는 건 나였다. 브레이크를 밟고 그리고 시동을 꺼야만 한다. 그것이 사고를 막는 방법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럴 수가 없다. 멈추어 지지않는 것이다.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였다.


"어디에요? 사무실이에요?"

"응. 그래"

"제가 그리로 갈께요. 우리 얘기해요."


그녀가 온다는 말에  불안이 엄습해 왔다. 도망가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녀는 전화 말미에 어디 가지 말고 거기 꼭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끊었다.


"불은 왜 끄고 있어요? 근데 정말 좋네요. 여기서 야경 처음 봐요. 진짜 예쁘네요"


창가에 다가가며 그녀가 말했다. 한참을 바깥을 보던 그녀가 돌아 섰다. 창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내가 다가갔다. 그녀의 어깨가 조금 떨리고 있는 것 같았다. 착각일까?


"얘들은 어떡하고 왔어?"

"엄마에게 맡겼어요. 괜찮아요. 걱정안해도 되요."


그녀가 나를 스쳐지나 입구에 있는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그리고는 내게로 와 손을 잡고 나를 이끌었다. 쇼파에 나란히 앉았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입을 뗀 건 그녀였다.


"나 샘 좋아해요. 몰랐죠?"

"...."


그러고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둘 모두 그저 멍한 눈으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선을 쇼파아래 발을 보고 있던 그녀가 또 입을 열었다.


"나 샘 처음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뛰었어요. 언니 가게에서 처음 만난 날이요."

"...."

"그날 샘 머리를 감기는 내내 가슴이 떨렸어요. 몰랐죠?"

"...."

"언니가 샘이랑 밥먹는다고 하면 나도 갈거라고 했어요. 졸랐어요. 언니가 말 안했죠?"

"...."

"아침에도 설레었어요. 그냥 샘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아니 그냥 내 모든 걸 다 주고 싶었어요. 옷을 갈아 입을 때 그냥 뛰쳐나가 샘을 안고 싶었어요. 어쩌면 오늘 내 감정이 샘한테 전달되어서 샘이 혼란스러워졌는지 몰라요. "

"...."


그녀는 작정을 한 듯 모든 걸 뱉어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를 몰랐다. 그녀를 말리지도 그렇다고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긴 침묵 끝에 내가 말했다.


"지영아. 힘든 길이야. 가서는 안되는 길이야. 난 괜찮다고 하더라도 넌 안돼."

"아니에요. 우리 잘 할 수 있을거에요.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할거에요. 그냥 샘은 지금처럼 그렇게 제 옆에 나무처럼 서 있으면 되요. 모든 건 제가 알아서 할거에요. 빠르지도 않게 삐뚤어지지도 않게 아무도 아파하지 않게 그렇게 사랑할거에요."

"...."


그녀가 몸을 돌려 나를 올려다 봤다.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양쪽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는 얼굴을 다가와 내 아래 입술을 가볍게 두 입술로 감쌌다. 그리고 윗입술을 살짝 빨았다. 감미로왔다. 그녀의 향기가 참 좋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입술을 떼고 그녀는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어떤 음탕함도 불순도 보이지 않았다. 순수함만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조금의 안도를 느꼈다. 그래도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자세를 고쳐 앉더니 몸을 기우려 내게 기댔다. 시선은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다치고 그녀는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 이상하죠? 내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요? 뭔가가 나를 뒤덮어 나를 확하고 체면을 건거 같아요. 어떤 다른 세상이 펼쳐진 거 같아요. 그런 세상속에서 지냈어요."


그녀는 창밖에 시선을 둔채 넋두리를 하듯 애길했다. 여전히 몸은 내게 기댄체여서 그녀가 얘길하는게 내 몸으로 고스란히 전달이 되었다.


"그냥 샘옆에 있을거에요. 달이 돌듯이 그렇게 멀어지지도 또 부딪쳐 깨어지지도 않게 샘을 느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거면 난 괜찮아요. 난 지금 이대로도 샘을 느껴요. 아니 지금보다 더 떨어져 있어도 샘을 느낄 수 있어요.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에도 샘을 느껴요."

"나도 그래"

"정말요?"


그녀가 기대고 있던 몸을 용수철처럼 몸을 떼면서 물었다. 정말이냐고 몇번을 물었다. 어느새 그녀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 있었다. 영혼만으로도 서로를 느낄 수가 있을까? 접촉없이도 느낄 수 있을까? 플라토닉러브라는게 정말 가능한 것일까? 남녀가 섹스없이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하긴 섹스를 한다고 서로의 사랑이 깊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건 어쩌면 속임수에 불과할 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한 순간 서로에게서 얻어낼 수있는 묘약같은 것일 게다. 그런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한 순간에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그래 그렇게 나무처럼 너의 그늘이 되고 쉼터가 되어 네 곁에 있을께. 가끔 나무 위로 올라와 보렴. 그렇게 살자. 살아보자. 마음이 가는 데로 흘러가 보자. 바람이 있어야 구름이 흐르고 인간은 사랑이 있어야 흐를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한동안 같은 쪽을 바라보며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신영호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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