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수요일이었다. 장수는 옷이 별로 없었다. 단벌이나 다름없었다. 바지 몇개, 티 몇장, 남방몇벌이 전부였는데 그나마 성한개 별로 없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셔츠를 한장 빌렸다. 체격이 비슷해 잘 맞았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한시간도 더 걸리는 약속장소로 갔다. 창밖을 보니 다들 행복하고 아름다운것 같았다. 도착을 하니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10분이나 남았기에 장수는 오차를 한잔시키고는 홀짝이고 있었다. 신경은 온통 문에 가 있었다. 문소리가 날 때마다 올려다 보았다. 시간이 30분이 지났다. 또 무슨 일이 있는걸까? 장수는 아가씨에게 신문이 있는지 물었다. 커피도 한잔 시켰다. 아가씨가 신문을 툭 던지고 갔다. 지난번 그 아가씨다. '아이고 등신'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장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지난번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다. 뛰어오다 사고라도 난건 아닐까? 오만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두시간이 지났다. 가져다 준 커피도 거의 입에대지 못했다. 장수는 그제야 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생각했다. 그래 조금있으면 지난번 처럼 천사같은 미소를 띠면 나타날거다. 장수는 다시금 들뜨기 시작했다. 커피 탓일까? 장수는 신문보기에 몰두했다. 신문에 있는 낱말맞추기까지 하고 시계를 보니 다섯시였다. 장수는 잠시 생각했다. 더 기다려 볼까 아니면... 장수는 아가씨에게 메모지와 볼펜을 부탁했다, '"은주씨,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이번 주 토요일 2시에 여기서 만나요 장수"'라고 쓴 메모지를 입구에 있는 메모판에 붙였다. 메모들이 많이 붙어 있었다. 그 당시는 전화가 없어 이렇게 메모로 상황을 전달했다. 거리는 금새 어두워졌다. 장수는 시청앞까지 걸어나와 버스를 탔다. 토요일에는 볼 수 있을거야. 그래 아무일 없을거야. 장수는 스스로 위안을 하며 애써 괜찮은 척 했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니 왠지 외로움이 밀려왔다. 참았던 긴장이 풀리면서 스르르 졸음이 밀려 왔다.
장수가 눈을 뜨니 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세차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부슬부슬 안개같은 비가 내렸다. 그래도 버스창엔 빗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빗방울로 얼룩진 창으로 내다보니 거리는 온통 불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우산을 쓰지 않은 이들도 보였다. 차가 건널목 앞에 섰다. 무심코 바라보던 장수가 깜짝 놀랐다. 그녀다. 방금 건널목을 건너와 총총거리며 걸어가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장수는 한눈에 그녀임을 알아보았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분명 그녀였다. 차가 움직이고 잠시후 정류장에 도착하자 장수는 손쌀같이 달렸다. 우산도 없이 달리는 그의 얼굴로 빗방울이 스프레이를 뿌리듯 달라붙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저만치 그녀가 보였다. 건널목을 건너려고 서있었다. 장수는 뛰어가며 그녀를 불렀다. 달리는 자동차 바퀴소리때문인지 그녀는 뒤를 돌라보지 않았다. 그 순간 저쪽의 신호등이 바뀌고 사람들이 건너갔다. 그녀도 사람들 틈에서 길을 건너고 있었다. 장수가 막 건널목에 발을 디뎠을 때 신호등이 바꼈다. 장수는 달렸다. 그때다. 하얀불빛이 장수를 향해 쏟아졌다. 악~~~
사람들이 장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장수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니 버스안이었다. 꿈이었던 것이다. 장수는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했다. 머리가 멍했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자신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뒤도 돌라보지 않고 걸어가던 그녀의 뒷모습이 왠지 불길한 뭔가로 다가왔다. 뭐지? 왜 이런 꿈을 꿨지? 장수는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워서도 그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저녁을 먹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시간이 가지 않앗다. 일주일이 정말 몇년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