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훈 Jun 11. 2023

지영

2. 만남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내가 다니는 그녀의 언니가 운영하는 헤어샵에서 였다. 어느 날 내가 머리를 하러갔을 때 그녀가 왔었다. 그녀도 머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그 시간에 손님이 너무 밀려들었다. 일손이 모자라니 원장인 그녀의 언니가 그녀에게 내 머리를 좀 감겨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녀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안내했다. 의자에 누우니 그녀가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다.


"참 지영아, 원장님은 얼굴에 수건 덮는거 싫어하셔."


언니의 말을 듣고 그녀가 수건을 치우면서 물이 튈텐데 괜찮으시겠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했다. 나는 치과에서도 수건을 덮지 말라고 한다. 수건을 덮으면 질식을 할 것 같아 수건을 덮지 않는다. 이 트라우마가 왜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가 머리를 감기기 시작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눈을 감고 그 느낌에 집중했다. 기분이 좋았다. 갑자기 내가 참 변태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언니가 몇번 점심을 먹자고 한날 그녀도 함께 나왔다. 그렇게 그녀들과 알고 지낸 시간이 이년여가 지났다. 어느 날 언니의 지인이 고깃집을 개업했다고 해 거기서 함께 소맥을 몇잔 했다. 그녀의 집이 우리아파트 가는 길목이라 대리를 불러 가는 길에 함께 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뒷 좌석에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꽤 많이 나누었다. 아니 주로 내가 묻고 그녀가 답을 했다. 그녀의 남편 얘기며 애들 얘기를 했다.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였다. 남편과는 주말부부로 1주또는 2주만에 만난다고 했다. 모두가 그렇듯 그녀의 얘기에는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런 그녀가 측은하게 다가왔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사적인 얘기를 나눈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녀에게 행복을 주고 싶었다. 잠시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돌아보니 그새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피곤했나보다.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겨 어깨를 내 주었다.

 그녀의 아파트 앞에서 기사분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당부를 하고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녀가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잠시 엘리베이터 앞에서 생각을 했다. 엘리베이터는 시간이 늦어서 인지 그 층에 그대로 서 있었다. 집으로 와 씻고 자리에 누워서도 그녀 생각에 잠이 들지 않았다. 내가 뭘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두 자매는 특히 언니는 나를 참 많이 따른다. 내게 사소한 것까지 상담을 하고 조언을 구한다. 그리고 그걸 참 고마워했다. 언니는 이혼을 하고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돌싱맘이었다. 가끔 한탄도 했지만 늘 씩씩했다. 두 자매는 같은 부모에서 났는데도 아주 참 많이 달랐다. 한가지 같은 점이 있다면 둘다 씩씩하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인가 그녀의 집에 간 적이 있다. 그날 그녀가 일하는 백화점 부근에서 세미나가 잡혔고 내가 그녀의 집 부근에서 아침에 일을 마친다고 하자 그녀가 그럼 차를 태워달라고 했다. 가는 길이라 그녀를 태워주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시간을 보니 아직 일렀다. 그녀에게 전화를 해 주차장에 있으니 준비되는대로 내려오라고 했다.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괜찮으시면 올라오셨다 같이 가요."


그녀가 호실을 알려줬다. 집앞에 가니 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그녀가 일부러 열어둔 모양이다. 신발을 벗고 거실에 들어섰다. 깔끔하게 정리된 집안이 그녀의 성격대로인 듯 했다.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주방쪽에서 삐~~하는 소리가 들렸다. 커피포트가 내는 소리였다. 그때 그녀가 수건을 둘둘 마른 머리를 하고 욕실에서 나왔다. 예쁘다.


"저기 잔이 있어요. 커피 한잔 하세요. 두 잔을 타세요. 저도 마실거에요. 죄송해요"


조금 빠른 어투로 말을 내뱉고는 그녀는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주방에 가보니 블랙커피 봉지가 두개 있었다. 내가 커피를 많이 마시는 걸 그녀가 알고 있었다. 나는 거의 하루에 여섯 일곱잔을 마신다. 거의 보약마시듯 마신다. 봉지를 찢어 커피잔에 붓고 물도 부었다. 이 커피는 안저어도 금방 녹는다는 걸 안다. 거실 탁자에 그녀의 커피를 놓아두고 욕실을 향해 말했다.


"집 구경해도 되지?"

"네~~"


그녀가 대답을 하며 욕실에서 나왔다. 커피를 한 모금하고는 드라이기를 들고 말렸다. 바빴다. 시간이 조금 빠듯해 보였다.


"아~ 금방 끝나요. 둘러보시면 끝날거에요."


나는 방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작은 방 두개는 아이들방과 옷방이었다. 딸만 둘인데 아직 저학년이니 같이

쓰고 있나보았다. 안방문도 열어 보았다. 예쁜 레이스가 있는 침대보를 한 예쁜 침대가 놓여있었다. 별다른 장식없이 침대와 양쪽에 협탁이 있는 게 다였다. 심플했다. 침대 맞은 편 벽에는 커다란 TV가 걸려 있었다.


"TV가 안방에 있네."

"아~ 제가 TV보는 걸 좋아해요."


그러면서 그녀가 씩 웃었다. 그 웃음은 무얼까? TV보는게 조금 멋적어서였을까? 어느새 그녀는 화장을 하고 있었다. 화장하는 모습이 예뻤다.


"아, 보지마세요. 그렇게 보면 화장을 못한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화장을 했다. 그건 그녀의 전공분야다.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일하는 그녀다. 톡톡톡 쓰으쓱 그녀는 볼을 두드리고 입술에 루즈를 발랐다. 루즈를 바르고는 두 입술을 몇번 붙였다가 떼었다. 그녀가 일어나며 이제 옷만 갈아입으면 된다고 하곤 옷방으로 내 달렸다. 커피를 한 모금했다. 잠시이지만 그녀가 옷 갈아입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순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변태인가 보았다. 시간이 조금 걸렸다. 조금 뒤 가방을 맨 그녀가 옷방을 나오며 빨리 나가자고 재촉을 했다.


차는 막히지 않았다. 거의 30분쯤 걸리는 시간이다. 시계를 보니 늦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대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동안에 그녀와는 많이 가까와져 있었다. 그녀는 나를 많이 신뢰하고 따랐다. 그녀의 남편도 몇번 본적이 있다. 처와 처형을 잘 챙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기가 쉽지않은 게 남자들이다. 그런데도 그는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자기보다 내가 그녀들과 가까이 있다보니 그녀들에게 생기는 여러 일들에 대해 내게 많이 묻고 내가 해결 방안을 알려주는 데 그로 인해 이 자매 들은 나를 매우 잘 따른다. 언젠가 언니가 말했다. 옆에 계셔서 정말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10분이면 도착할 것 같았다. 그녀는 차안에서도 거울을 내려 화장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냥 쭈욱 동해안으로 갈까?"

"정말요? 와우~ 고 고. "


내가 그렇게 말하니 그녀가 맞장구를 친다. 우린 그러면 안되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안되는 줄 알면서 그냥 해 본 소리에 또 그렇게 대답하는 거였다. 거기엔 작은 아쉬움이 숨어 있었다. 넘을 수 없는 선이 그어져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영호 作


작가의 이전글 지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