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라도 나르시시스트
한국임프라브협회 공연 후기
오늘은 공연 날이었다.
기억의 끝에 주목받기를 피하는 아이가 있다.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다물고 살아온 시간들을 밟고 무대 위에 섰다. 일 년에 꿈을 꾸는 날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데 이번 주에만 시험 보는 꿈, 쫓기는 꿈을 두세 번 꾸었다. 어쩌면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낮이 단조롭다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어제 꿈에서는 시험 과목을 잘못 알고 가는 바람에 시작 시간이 긴박해오는데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임프라브는 즉흥극의 일종이다. 그 자리에서 관객에 의해 주어지는 상황, 규칙에 맞게 스토리를 만들어 가야 한다. 대본도, 미리 정해진 역할도 없다. 하나의 시나리오를 따라 연결되는 형식도 아니다. 갑자기 상대의 대사 한마디에 속수무책 끌려가면서도 마치 여러 번 입을 맞춘 듯 포커페이스로 받아쳐야 하는 일이다. 안개속으로 뚜벅뚜벅 걷는 느낌이랄까.
일명 곽사부라 불리는 우리의 리더 현경님도 임프라브가 뭔지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소개했다. 임프라브는 정의 내리고 틀이 있는 것에서 벗어나 있다. 어떤 키워드가 주어질지 알 수 없다. 미리 맞춰보지 않고 무대에 오른다. 공연이라 할지라도... 그렇다고 매주 모여서 3시간씩 입을 맞춰보는 것이 앞 뒤 문맥 없는 이벤트만은 아니다.
임프라브에도 포맷이 있고 일련의 훈련 과정이 있다. 우선 목을 풀고 몸을 풀고 뇌를 말랑말랑하게 한다. 그리고 무대에 올라 저마다의 페르소나를 입는다. 누군가는 페르소나를 벗어내고 있을 것이다. 목도, 몸도, 뇌도 늘 긴장 상태인 나는 갈 때마다 아무 말을 뱉어내고 집에 오는 길이면 어깨가 처지기도 한다. 그래도 나만의 가면을 찾고 싶어 일요일 오후가 되면 용산으로 길을 나선다.
저마다 자신만의 이유와 사연으로 이곳에 왔겠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앞으로도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출 것이다. 오히려 속을 모르는 그들과 연대를 느낀다. 거리가 있어 안정감이 든다. 오늘 공연에서 나는 심판을 맡았다. 심판은 깍두기가 될 수도, 극 중 최대 존재감이 될 수도 있는 자리이다. 집에서 거울을 보고 연습을 했던 그 말을 제대로 뱉었다는 안도감(예상문제가 들어맞은 덕분에..)과 곽사부의 기습 질문에 역시나 아무 말이 나와버린 자괴감이 차례로 강타를 날렸다. 덕분에 낑낑거릴 새도 없이 숙면을 취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 꿈에서는 자기 최면에 푹 빠진 나르시시스트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