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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 Won Jun 11. 2021

건축, 공간을 느낀다.

라 투레트 수도원 가는 길

'Gare de Lyon~ Gare de Lyon~'

플랫폼에서 방송이 울려 퍼진다. 기차 역사는 늘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기차가 출발하기도 전에 잠들었다. 얼마나 잠들었던 것일까?!

여행은 늘 자신의 한계를 넘기는지도 모르게 주변을 흡수하려고 한다.

몸이 앞으로 쏠리는 걸 느끼는 순간, 아차 내가 잠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붉게 물든 눈 커플 위로 빛 그림자의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몸은 살얼음 깨지듯 '뽀각뽀각' 소리를 내며 손가락에서부터 움직임이 시작됐다.

붉은 눈꺼풀을 밀어내자 묵직한 피로감이 밀려왔지만, 나의 시선은 물속을 헤엄쳐 나오듯 사방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측면 창이 천정까지 휘감고 있는 기차는 맑은 날씨에 반응하며 반짝였고, 조용하지만 힘 있게 마을을 지나 숲 속으로 향하고 있었다.

창밖의 숲은 우리의 움직임을 지켜보듯, 동물 케이지에 담겨 그들에게 관찰되고 있는 것 같았다.

짙은 녹음의 그 눈빛들은 불편함보다는 우리를 맑게 정화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는 곳은 하루에 2번 기차가 서는 곳이다. 그곳이 내 삶의 크나큰 한 전환점이 될 줄도 모르고, 우리는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가 타고 온 기차는 내리는 기차역과 너무나 상반되게 빠르게 떠나갔다. 기차역은 석탄과 땔감이 쌓여 있었고, 마치 오래된 과거의 시간이 쌓여 있을 것 같았다.

기차가 떠나고, 숲소리와 지나가는 새소리, 사람들 발자국 소리가 귀에 잡힐 때쯤, 우리는 숨은 그림 찾듯 그곳과 연관된 신호들을 찾으며 오솔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소박한 입구에 다 달았을 때, 우리는 이미 그곳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인지하게 됐다.

입구 주변에는 미소로 가득한 국적 모를 외국인 가족들과 커플들, 그리고 우리였다. 가족들은 아이들로 부산했고, 커플들은 애틋함으로, 우리는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운이 좋아 기다림 없이 입장이었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과 시선을 충분히 교감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볕을 한껏 머금은 넓은 들판과 회색의 콘크리트 조형 무더기들이 놀이동산 같이 조합되어 있었다. 건물들은 자연에 순응하는 듯했지만, 직선의 경직된 힘이 있었고 강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었다.

건물 입구는 거친 회색 콘크리트 피부에 딱지가 내려앉은 듯한 붉은 철문이 보였고, 그 문은 몬드리안의 '노랑, 빨강 파랑의 구성'의 느낌이 들었다.

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 다르다'라는 감탄과 함께, 나도 모르게 정제된 집중과 관찰이 시작됐다.

주변의 자연과 격리된 벽을 가졌지만, 자연을 거부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쉼터를 제공하는 벽, 천장, 바닥을 지녔지만 인간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이 곳은 콘크리트, 유리, 금속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 공간은 높은 순도로 정제되고 제련된 군더더기 없는 묵직한 성직자의 검과 같았다.

내부 복도를 걷고 있노라면, 내 머릿속에 있었나 싶은 미지의 곳에서 기호들과 블록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특이하지만 매력적인 조합으로 짜인 공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벽과 창은 단출하였으나, 그 모습들이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이 없었다. 직각으로 돌아가는 회랑에 차곡차곡 붙어있는 공간들은 마치 시계태엽의 톱니바퀴들이 돌듯 서로 제각기 특성을 지니며 공간의 이야기를 엮어가고 있었다.

익숙한 비율 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공간은 제법 큰 중정을 마주하는 창과 함께 방문객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서로 숨겨주고 보여주고 겹쳐지다가 다시 분리되며 변화무쌍한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사람이 만들었지만, 자연의 언어였고, 자연의 언어였지만, 그 언어는 인간만이 친숙함과 경외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언어였다.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사람이 드나들고 건너볼 수 있는 창과 문은 서로 오누이처럼 함께하면서도 다름을 보였고, 상하부를 연결하는 계단의 입구마다 있는 무릎 높이의 등들은 무뚝뚝한 벽과 계단 속에서, '걸음을 조심하며 정숙하게라면 누구에게나 환영하겠다!'는 말을 하는 듯했다.

그 문과 창들의 무늬는 바닥과 천정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구성된 복도는 한 명 내지 두 명이 천천히 거리를 유지하며 걷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경탄할 만한 비율과 공간감, 그리고 움직일 때마다 변화하는 모습들에 나는 연거푸 감탄하고 있었다.

커플들은 가이드의 설명에 집중하며 하나하나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공간을 누비고 있었으며, 그 가족들은 부산함과 공간의 무게감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복도는 중정을 두고 'ㅁ'자로 돌아가는 회랑의 마지막으로 자연스럽게 우리를 유도했다. 그 벽에는 무엇이든 흡수할듯한 검은색 커다란 철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판타지 영화같이 그 너머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을 것 같은 두려움과 신비함을 지닌 검은색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 색들이 오랫동안 검은 바탕에 붙잡혀 이제 도망갈 기력 없이 그곳에 정착해 순응하고 있어 보였다.

아이들은 가이드보다 먼저 그곳으로 뛰어가 당겨보고 밀어보고 만져보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문 건너편 세상은 너희들 따위가 맞이할 곳이 아니다'라고 하듯 뒷짐 지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가이드와 함께 문에 다 달았을 때, 그 재질감과 차가운 색감, 풍겨오는 오라와 소리, 냄새는 더욱 인간이 출입하는 문이 아닌 것 같은 강렬함이 느껴졌다.

문고리를 잡고 힘을 주며 밀자, 문의 1/3 지점의 힌지에서부터 움직임이 시작됐다. 그 움직임은 가속되어 돌기 시작했다.

밀려 들어가는 곳은 미지의 손길이 넘실대며 슬금슬금 밀려 나오는 듯했고, 밀려 나오는 곳은 오랜만에 들숨을 쉬듯 복도의 쉬고 있던 공기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기다렸던 놀이동산 입구가 열리는 듯 쏜살같이 뛰어들어갔지만, 금세 몇은 다시 나와버렸다. 남아있는 아이들이 다시 나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진입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한 발짝 들어섰을까. 그랬다. 나도 순간 움찔했다. 공기가 아닌 다른 촉촉하고 무게감 있는 무엇인가로 가득 찬, 물속 같은 공간에 발을 내딛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바닥은 나를 지구 중심으로 한층 더 무게감 있게 당기고 있었다.

그 공간의 숨결은 내 주변의 공기와 기운을 순식간에 밀어내고 나를 속속들이 그 공간에 것들로 채워 넣고 있었다.

아이들은 잔뜩 주눅이 들어 아빠도 아닌 엄마의 손에 매달려 뒤로 숨어있었고, 엄마의 손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질 것 같으면, 이 공간에 빠져 익사할 것처럼 긴장하고 있었다.

공기는 고요했지만, 전혀 여지를 주지 않았으며, 빛은 제한되어 잊고 있던 그 귀중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천정 구석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굴절된 빛들은 어둠 속의 신의 손길 같았고, 그 손길은 차디찬 대리석 바닥 낮은 턱 위를 비추었다. 우리로 하여금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고 있었다.

가이드는 출입 제한구역만 인지시키고, 설명을 자제하고 있었다. 이미 이 공간의 대기, 빛, 소리, 빛, 냄새가 어마한 농도로 우리의 오감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것은 인간에게 말하는 자연의 언어였으며, 인종, 문화, 경험, 지식을 관통하고 넘나드는 이야기였다.


이 공간의 느낌은 내 머릿속에 하나의 프리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외부로부터 빛, 소리, 냄새, 촉감 등으로 형용화되는 공간 그리고 어떤 사유, 이야기, 경험이 내 머릿속을 진입하게 되면, 이 프리즘을 거쳐 내 자체만의 스펙트럼으로 재해석하게 된다.


나의 건축 공간으로의 경험에 강렬했던 첫 발자국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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