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사진 찍기
<팝업스토어-작가의 여정> 감각하기
'글로 사진 찍기'는 [퇴사는 여행]을 쓴 정혜윤 작가의 조언이었다
'눈앞에 원하는 만큼의 프레임을 설정하고 그 안에 보이는 장면을 글로 써 보는 거예요. 평범해 보이는 일상도 글로 사진을 찍듯이 기록해 보면 특별해집니다... 일상의 감독이 되어 순간들을 기록해 보세요. 좋은 글쓰기 연습이 됩니다.'
브런치 팝업스토어에 다녀왔다
그때의 장면을 떠올리며 사진을 찍듯 글을 써보기로 한다
<WAYS OF WRITERS: 작가의 여정>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전시였다
장소는 탁주 공장, 자동차 정비소, 바이커들을 위한 카페를 지나서 나타난 성수동의 어느 골목이었다
건물 주위에는 전깃줄이 낮고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어쩌면 작가는 두꺼운 절연체 안에 들어있는 전기가 아닐까? 늘 똑같은 일상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높은 전압의 흐름을 잡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팝업 스토어에 내걸린 그림은 흑백의 사람 형체였는데 윤곽 안은 글자로 채워져 있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라고 브런치가 전하는 응원의 말이었다
공간은 한 권의 책처럼 프롤로그 챕터 1, 2, 3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었다
프롤로그-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챕터 1- 어느 날 작가가 되었다
챕터 2- 계속 쓰면 힘이 된다
챕터 3- 나의 글이 세상과 만난다면
에필로그- 작가라는 평생의 여정
미리 시간을 예약한 상태였다
줄을 서서 입장할 차례를 기다렸다
놀이공원에 입장하는 것처럼 밴드를 붙여준 안내자는 '작가님 들어가십니다'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아찔하고도 낯선 중력이었다
데스크에서 사진을 찍은 뒤 바로 브런치 작가 신분증을 만들어 주었다
엔트로피의 확장인가?
온몸의 세포들이 퍼핑 캔디처럼 터지는 것 같았다
이어서 11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 작가들의 여정이 전시되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이 글로 책으로 탄생하고 있었다
직업, 취미, 삶의 방식... 생활은 모두 글이 되는 것이었다
그다음은 5인의 브런치 작가를 소개하는 공간이었다
그들의 습작 노트와 영감을 주는 아이템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비밀의 방을 엿보는 기분처럼 심장이 간질간질했다
다음 공간은 책상에 펜과 카드, 메모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직접 글을 써 보는 차례였다
작가들이 제안하는 질문과 키워드, 글쓰기 레시피들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글감 캘린더에서 4개의 레시피 카드를 골랐다
요리, 브랜드, 서툰, 응원
(좋아하는 브랜드와의 추억, 내가 좋아하는 나의 서툰 모습,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요리, 열렬히 응원하는 대상.)
브런치 소개 카드를 만들어 전시대에 올려두었다
온라인으로 발행하는 글과 종이나 카드에 쓰는 글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글이 실물의 책으로 만들어진다면 기분이 어떨까?
지면은 크고 여백을 채울 침묵의 언어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잔 그리핀의 [여백으로부터 글쓰기]에서는 글쓰기의 물질적인 세계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글쓰기가 기술이며 유형의 세계라는 부분에 매력을 느낀다
글은 한 개의 단어 안에서 상상을 시작하고 모호한 만큼 선명한 말들을 찾는 시도라는 것, 문장이 되기 위해 무수한 장애물을 헤치고 문단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 이야기가 점점 무르익으면서 글의 구성이 의미를 나타낸다는 것, 리듬과 틈이 교차하지만 균형과 무게를 가지고 개방적으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
팝업스토어의 경험은 몸으로 사진 찍기의 감각이었다
<작가의 여정> 속에 있는 자신을 3인칭으로 사진 찍는 소리, 글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감각, 그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고 싶은 발의 촉감, 써낸 글자들이 책이 되는 냄새, 글로 입맛을 돋우고 싶은 욕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