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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J Sep 17. 2024

미역국앓이

미역국을 끓인다


사랑을 끓인다

있음에 대한 감탄과 지금껏 감각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미안함이다

끓이는 일은 정성을 들여 불러보는 목소리다

있음으로 살아왔음을 충분하다 쓰는 일이다


미역국을 끓인다

눈을 껌뻑이며 기다린 밤이 또다시 미역국을 골랐다

해녀가 건져 올린 미역에 손이 찔린다

해초의 비늘일까? 해녀의 지느러미일까?


폭풍우가 할퀸 갈색 바다를 펴서 말렸다

비린내는 뭍에서 색을 바꾸었다

등뼈를 버린 줄기에 온도를 올리려면 펄펄 끓여야 한다


어마어마하게 불어나는 혈관을 엮어 창문을 내고

바다 밑에서 자랐다는 이력

바위를 견뎌온 시간은 씹을 수 없어서 오그라든 바다가 물결을 풀어놓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시 만난 물에게 태초의 빛이 되고 싶던 기도에 이를 때까지


걸음마 가득한 초원의 길을 보여주려고 들깨를 턴다

두드릴 때마다 모래섬이 들썩인다

있음에 점 하나 찍으려고 바다의 뿌리를 끓이는 거다


잦은 미역국앓이는 왜일까?

나의 강물은 소금기가 없어서인가? 생각한다

액젓으로 간을 한다

해류를 거스른 아가미가 토해낸 호흡은 끓여도 꺾이지 않아 쉰 목소리가 난다


미역국에는 아직도 을 떼지 못한 아이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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