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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안솔 Jul 22. 2023

예쁜 여자가 이상형이라는 남자와의 소개팅을 포기합니다

K와 의미 없는 카톡을 주고받는다. 내가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과 문자로 서로를 알아가는 게 불편하다. 엄밀히 말해서 모르는 남자와 일상을 나누는 게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만나기 전에 한동안 문자질을 하면서 상대를 탐색하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 있기에 응대를 안 할 수도 없다. 생사 확인에 가까운 문자가 나흘째 지속되자 지친 나는 조신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승부수를 띄운다.


'K님, 주말에 뭐 하세요? 괜찮으시면 저랑 잠깐 보실래요?'


그는 이미 계획이 있다며 만날 수 없단다. 다음 주 중으로 시간을 조정하던 중에 그가 갑자기 통화를 하자고 한다. 나의 패기 있는 데이트 제안이 그에게 약간의 용기를 준 모양이다.


50여 분간의 첫 통화에서 그가 살아온 간략한 발자취, 성격, 그리고 이상형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다지 관심이 없다. 무슨 일을 하든 밥벌이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궁금했던 건 그가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지였다. 이게 궁금했던 걸 보면 아마 이 남자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그의 여자 취향을 듣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는 첫째, 무조건 예쁜 여자가 좋단다. 둘째, 셋째도 말했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흠.. 외모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남자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주 희박하다. 물론 예쁨의 기준이 극히 주관적일 수 있지만 예쁜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말하는 남자는 모든 사람 눈에 예쁜 전형적인 미인을 좋아한다는 것쯤은 안다. 그리고 자기 객관화가 나름 되어 있는 나는 절세미인이 아니라는 것도.


사람은 다 외모를 본다. 외모를 안 본다는 사람도 취향이 있기 나름이다. 나조차도 남자다운 외모를 선호해서 예쁘고 티 나게 꾸민 남자는 쳐다도 안 본다.(그들도 딱히 내게 관심을 보이는 건 아니라 나의 무관심이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다) 20대 남자가 예쁜 여자를 대놓고 밝히는 건 새로울 게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연애경험이 어느 정도 쌓인 30,40대 남자는 여자외모가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외모 외의 다른 매력을 더 높이 평가한다. 40대가 갓 된 K가 아직도 예쁜 외모를 일 순위로 본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적어도 우리의 가치관이 많이 다른 것 같다.


K의 여자취향을 존중 안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외모야 말로 아무런 노력 없이 주어진 특권인데, 그 특권을 인생을 40년 넘게 살고도 여전히 추구하는 그의 가치관이 너무 가볍다. 어쩌면 내가 그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일인이므로 자기 방어를 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그와의 만남이 더 이상 기대가 되지 않는다.


다른 취향은 맞춰가면 된다지만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영역은 깨끗이 포기하는 게 맞다. 물론 만나보고 걱정을 현실화시킬 수는 있겠으나, 살아보니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일들이 있다. K와는 굳이 만나보지 않아도 결말을 알 것 같다. 그를 기꺼이 어딘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을 절세미인에게 양보하련다. 잘 가시오, 그리고 마주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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