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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안솔 Jul 23. 2023

카톡으로 이별통보한 여자, 읽씹으로 대답한 남자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이유

J에게 카톡으로 이별을 통보했다. 그는 나의 일방적인 이별이 같잖았는지 무응답으로 대응했다. 솔직히 그가 전화해서 ㅆㄴ이라고 저주를 퍼부울 까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별을 몇 번이나 망설였었다. 그가 조용히 헤어져 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다. 그와의 이별을 두려워할 정도로 우리는 잘못된 만남이었다.


이 남자와 4월 한 달을 사귀었다. 2주 동안은 데이트하면서 싸웠고 나머지 2주는 격렬히 싸우기만 했다. 간혹 어떤 사람은 뜨겁게 싸우는 자극에 중독되어 오히려 싸움을 부츠기거나 즐긴다고도 하는데 나는 평화주의자로서 언쟁을 웬만하면 안 하는 사람이다. 내가 언쟁하는 당사자가 아니어도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극도의 불편함을 느낀다. 싸움을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이 그와 일주일 사귀고 전화로 4시간을 싸웠다. 그리고 알았다. 안 맞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많은 남자를 만나본 건 아니지만 몇 번의 연애를 하면서 크게 싸워본 적이 없다. 가치관이 비숫한 사람을 만났었고 중요하지 않은 일은 잘 맞추는 편이어서 그다지 싸울 일이 없었다. 하지만 J와는 모든 것이 삐걱거린다. 성인이 된 후로 가족을 제외한 사람과 싸워본 건 그가 처음이다.


1. 우리는 가치관이 너무 달랐다.

데이트 초반에 상대가 무슨 질문을 하는지 보면 이성을 볼 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인다. 기본적인 스크리닝에 통과해야 두 번째 데이트도 있는 거고 진지한 관계로 발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본인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게 돼 있고 어떤 질문을 하는지 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을 볼 수 있다.


처음 만난 날 그는 어느 학교 출신인지부터 물었다. 저녁에 뭐 할 거냐는 질문에 동네친구와 공원에서 배드민턴 칠 거라고 대답했다. 그는 내 친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고 고등학교 수학교사라고 했더니 다음 질문이 “임용 본 거예요?” 이 남자 설마 정교사인지 계약직인지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하는 거야? 맞다. 그는 그 질문을 내 친구가 똑똑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물어봤었다.  


첫 만남에서 그의 입에서 나온 질문을 듣고 나는 직감했다. 우리는 가치관이 아주 다르며 따라서 추구하는 바도 다르겠구나.


네 번째 데이트에서 그는 내가 얼마 버는지, 얼마를 모아놨는지 물었다. 나의 경제력뿐만 아니라 집안 경제력까지 꼼꼼히 따지며 머릿속으로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2. 그는 이겨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나와 가치관이 아주 다른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나는 공감능력이 좋은 편이지만, 상대가 나와 다른 생각을 얘기하면 동의하지 않으므로 듣고만 있는다. 나의 동의를 얻지 못한 그는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화가 난다. 그리고 흥분해서 나의 동의를 이끌어 내려고 한다. 그에게는 더 이상 사소한 문제에 대한 의견차이가 아니라, 자존심 싸움이 되고 만다. 그가 흥분했다는 이유로 내 의견을 굽힐 생각은 없는 나를 그는 왜 이렇게 고집이 세냐, 왜 억지를 부리냐며 몰아세운다.


가치관이 달라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과정을 잘 지나가려면 잘 싸워야 하는데 그와의 싸움이 너무 지친다. 그와의 끝없는 논쟁이 힘들었던 건 그의 모진 말이었다. 그는 동의를 못 받으면 흥분을 잘했고, 흥분하면 험한 말을 퍼부었다.


나를 이겨먹어서 그에게 좋을게 뭐가 있을까?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가려다가도 그의 날 선 말이 내 마음을 닫게 만든다. 나는 놀라서 두 걸음 뒷걸음친다.


3. 그는 잔소리가 많았다.

한 번은 내가 주식으로 쌀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잔소리를 한 시간 동안 들은 적이 있다. 어떻게 한 시간 동안 고작 사소한 식습관 하나로 싸울 수 있냐고? 과장이 아니다. 이런 식이다. 시작은 항상 소소하게 서로를 알아가는 관심에서 시작된다. 뭐 먹고 사냐는 사소한 그의 질문에 나는 신이 나서 최근 일주일간 먹은 걸 읊어댄다. 내가 쌀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그는 쌀을 왜 싫어하냐고 다잡는다. 그에게 나는 쌀을 좋아하는데 밥 짓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간편하게 먹는 습관이 들어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그는 그게 바로 쌀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싫어하는 거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좋아하다’와 ‘싫어하다’의 정의 차이에 대해 논쟁을 시작한다. 그 논쟁이 마무리되면 식사를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지 배고플 때 먹는 나의 식사 시간에 대해 지적을 시작한다. 그리고선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식습관의 변천사에 대해 묻는다. 나의 식습관 변화가 부모님의 영향이라고 생각한 그는 부모님의 식습관에 대해, 식습관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모님 병력까지 꼼꼼하게 묻는다. 내가 더 이상 이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그의 잔소리는 끝나지 않았을 거다.


잔소리 많은 게 애정의 척도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듣기 싫은 참견으로 들린다. 지금까지 스스로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해왔고 나의 정서적 평안과 육신의 편리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둬왔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나를 위한답시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주제넘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지도 않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잔소리는 나에게 상당히 무례하게 들린다.


예상대로 우리는 맞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일 때 나름 괜찮은 사람일 수 있으나, 함께 있을 때 불이 기름을 만나 활활 타오르듯 상극이었다. 우리는 만나면 안 되는, 혹여 실수로 만났다면 빨리 헤어져야 하는 조합이었다. 그래서 헤어졌다. 나는 비겁하게 카톡으로 이별을 통보했고 그는 그답게 읽씹으로 나와 뜻이 같음을 보여줬다. 비등비등하게 딱 이 정도의 수준인 우리는 어쩌면 수준이 딱 맞아서 애초에 서로에게 끌렸던 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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