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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ystep Jul 30. 2020

옆구리로 타는 자전거

짐 자전거에 미쳤어요

꼬불 꼬불 시골의 포장되지 않은 길에 교통수단이라고는 경운기나 자전거들이 대부분이었던 시절. 텃밭에 있는 야채들을 수시로 뽑아 밥상에 척척 올리면 한 끼 식사가 되는 시골에서 냉장고란 이름 조차 생소했던 시절, 아니 그런 시골에서 난 어린 시절을 살았다. 여자애들이라면 하나쯤은 가져 보았을 플라스틱 인형 하나 없이 나는 만화책에서 보았던 긴 머리 서양 여인을 선이 죽죽 나 있는 국어 공책 한가운데 수없이 그렸다.  어린 황소 눈만큼 큰 눈을 그려 넣고,  밥만 먹고 머리만 길렀을 것 같은 종이 인형의 긴 머리를 크레파스 칠 하는 것은 나의 방과  주요 활동 중에 하나였다.  팔랑거리는 종이 인형을  오리면서 그녀에게 입힐 드레스며 예쁜 티셔츠를 상상했고, 혹시라도 잘못 자를까 봐서 숨죽이며 가위질을 했었다. 엄마가 참으로 쉽게 쓱쓱 하던 그 가위질이란 게 나에겐 얼마나 어려웠는지 나의 종이 인형들은 모두 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아마도 13살 14살 즈음이었던 거 같다.  학교에서 돌아온 어느 날.  삐거덕이는 우리 집 녹슨 대문

 문턱을 폴짝 뛰어들어 섰는데 마당 한 구석에 처음 보는 커다란 짐 자전거가 놓여 있었다.  좁고 고장 난 대문 턱을 넘기 힘들어서 동네 어른들은 우리 집에 오시면 항상 대문 밖에다 자전거를 두셨기에  이 크고 무거운 자전거의 정체가 궁금하여 주위를 빙빙 돌며 관찰하기 시작했다.



자전거에 대한 나의 기억은 신기함 별남 자체였었다.  5일장이 열리는 시골 시장은 내게 신천지 놀이터 여서 혼자 곧잘 가서 뛰어놀곤 했었다. 그곳에서 자주 마주친 짐 자전거들.  내 키의 몇 배나 되는 높은 짐을 가득 싣고 그 좁은 시장통을 아슬아슬하게 혹은 요리저리 피하며 달리던 자전거들을 만나면 난 무척이나 신기해서 넋을 잃고 그것들이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쳐다보곤 했었다. 자전거가 인파를 피해 좁은 시장통을 달리다가 옆으로 기울면  그 무거운 짐들이 옆으로 쏠리면서 휘청거렸고,  나도 모르게 내 고개와 몸도 자전거 뒷좌석에 높이 쌓인 짐처옆으로 쏠리 휘청거렸다. 울퉁불퉁한 시골 시장길에 뭔가에 걸려서 자전거가 덜컹할 때면 그 높은 짐들이 마치 하늘로 높이 튀어 사방에 흩어질 것 같아 나의 온몸도 긴장감으로 쫄깃해지며 나도 모르게 오줌까지 지리곤 했었다. 짐 자전거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무섭게 난 또 다른 놀 거리를 찾아다니느라 짐 자전거에 대한 관심도 금방 사라졌었지만,  아슬아슬한 짐 자전거들의 곡예를 또 보고 싶어 5일장을 기다리했었다.


"좋나? 우리 거다." 눈요기만 하던 내게 뒷마당 밭에서 풀을 뽑고 있던 엄마의 반가운 말이 들렸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등에 메고 있던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 버리고 본격적으로 우리 꺼  자전거 탐색전을 시작했다. 투박하지만 양 옆으로 떡 벌어진 핸들은 금방이라도 크게 날갯짓하며 하늘로 멋지게 날아오를  만 같은 이름 모를 를 닮았다. 막내 동생 궁둥이 만한 안장은 옆에서 보니 목을 길게 빼고 새벽이면 꼬꼬댁 목청 높이 울어대며 내 잠을 설치게 하는 수컷의 모가지를 닮았다.  넙데데 한 페달들은 엄마가 보름달 만한 배추 전을 부칠 때만 사용하던 부침개 뒤집기를 양쪽에 올려놓은 것 같았다.  페달과 뒷바퀴 사이 작은 구슬들을 알알이 머금고 있는 자전거의 심장 같은 긴 고리 모양의 체인에는 이상한 기름 냄새가 났는데 반짝이던 노란 기름을 만지자 시커멓게 손에 묻어 비누로 한참 동안 빡빡 씻어 내야 했었다. 사람과 무거운 짐의 무게를 다 견디며 열심히 밟는 데로 빠르게도 느리게도 달리는  얇은 바퀴들의 이상한 고무 냄새를 강아지처럼 킁킁이며 맡기도 했다. 장날이면 나의 오줌을 지리게 했었던 묘기의 주인공 짐받이를 만지자 짐들이 내게로 휘청 쏟아져 내릴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뒷바퀴에 있는 받침대를 보니 농사일로 지친 농부들이 단잠 잘 때 좁은 논두렁에서 잠시 눈을 붙이려 비스듬히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는 모습 같았다. 자전거의 단단한 한 손 받침대가 무거운 자전거 몸체를 비스듬히 받쳐주며 걱정 말고 푹 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부모님이 애써 마련한 논을 수시로 오가려는데,  두어 시간 간격으로 시골길 먼지 폴폴 날리며 게으르게 아주 가끔 오는 버스를 타기엔 요금이 너무 아깝고 그렇다고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어서 여차여차 자전거를 장만하신 거라 했다. 그 날 이후 난 짐 자전거에 정신이 온통 팔려 그렇게 좋아하던  황소 눈을 가진 긴 머리의 종이 인형은 완전히 까먹어 버리고 말았다.


새벽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아빠는 그 커다란 짐 자전거 주변을 맴돌고 있는 나와 언니 동생들을 위해 구멍이 숭숭 난 딱딱한 철제 짐받이 위에 합판을 잘라 붙여 우리 작은 엉덩이들이 빠지지 않도록  만드셨다. 엄마는 천 조각들을 모아 마술처럼  방석을 만들어 합판 의자 위에 깔아 주셨고 아빠는 우리를 하나씩 자전거에 태우고 가끔씩 동네를 한 바퀴씩 돌아 주곤 하셨다. 꽃방석이 깔린 짐받이 의자라고는 하지만 울퉁불퉁하고 꼬불거리는 시골길을 달릴 때면 뒷자리에 앉은 나의 몸은 심하게 들썩일 수밖에 없었고 그럴 때마다 시골 장터에서 보았던 높은 짐들처럼 하늘로 높이 솟았다가 엉덩방아를 찧곤 했었. 엉덩이가 뽀깨질것처럼 아파도 혹시라도 또 자전거 탈 기회를 잃을까 봐 나는 아프다는 불평을 한 번도 지 않았다. 거친 길을 달리다 떨어질까 두려워  뒷자리에 있는 긴 철대 막대를 너무 힘껏 붙잡아서 두 손바닥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물집까지 생겼었다.

그렇게 뒤 좌석 짐받이에 앉아 아픔을 감내하며 내 얼굴을 스치던 바람을 즐기던  난 허파에 구멍 난 사람처럼, 아빠가 일하러  나가시고 나면  마당 한 구석에 덩그러니 서 있는 자전거가 너무 좋아서 오랫동안 바라 보고 또 바라보고 이리저리 만지며 하루 종일 놀곤 했었. 손바닥을 페달에 대어 밀어 보기도 하고, 바람이 팽팽한 바퀴들괜스레 툭툭 쳐보기도 하고,  자전거 광낸다며 수십 번 마른걸레로 장도 닦고 핸들도 닦았다. 아빠가  매달아 놓은 자전거 따르릉 벨도 "시끄럽다 쫌 고마해라" 하는 엄마의 고함이 들릴 때까지 누르고 또 눌러대다.


그렇게 자전거에 정신이 빠져 있었던 나는 여름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다. 아침마다 오 형제의 등교 전쟁을 안치러도 되는 방학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도 아빠처럼 새벽부터 일을 나가셨다. 그 여름 방학 첫날. 아침잠이 많은 내가 그 새벽에 벌떡 일어나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며  마당 구석에 있는 아빠의 짐 자전거를 보러 달려 나갔다.  뒷 짐받이 의자에만 앉아 아빠가 운전하시던 자전거를 내가 직접 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난 후에부터 난 매일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며 안달이  있었다.


우선 자전거를 움직이게 하는 게 관건이었다. 짐 자전거의 받침대를 짧은 다리로 툭 쳐서 올리고 받침대 없이 자전거 몸체를 일으켜 세워 보고 싶었지만 나의 짧은 다리는 허공을 휘휘 젓기만 할 뿐 좀처럼 쳐 올릴 수가 없었다. 또한 내 목 높이까지나 오는 안장에도 앉아 보고 싶었지만 키 작고 어린 나에게는 당연히 오르지 못할 높이였다.  일단은 받침대 올리는 것은 포기하고 비스듬히 서 있는 자전거 안장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받침대가 비끗해서 자전거가 옆으로 넘어질까 봐 어찌나 바들바들 떨며 올라갔는지 모른다. 겨우 안장에 올라 가 앉는데 성공은 했지만 나의 짧은 다리는 페달에 닿기는커녕 허공에서 헛발질로 페달 돌리는 시늉만 해야 했다.


자전거 안장과 페달 사이에 동동 떠 있는 두 발.  페달을 향해 두 발과 발가락들을 죽을힘을 다해 뻗치니 쥐가 심하게 났다. 그래도 자전거 짐받이에 짐을 가득  고서 지그잭으로  달려 보고  아래위 로도 점프하며 마구 시골길을 달려 보고 싶은 마음에 그냥 포기하기는 싫었다. 안장에서 조심조심 내려와 자전거를 받치고 있던 받침대를 온몸과 오른쪽 발을 뻗쳐 옆으로 처 올리자 자전거가 기우뚱하며 옆으로 비틀거렸다.  온몸으로 쓰러지려는 자전거를 받아내자 받침대가 없는 자전거가 휘청거리며 앞으로 조금씩 움직였다. 너무나 흥분되어 혼자서 "아 신기해 죽겠다"를 연발하고선 좁은 대문의 높은 문턱을 기어코 넘어 짐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남자 고등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걸어서 15분 이면 충분한 거리를 자전거를 끌고 가는데 십리 이상 걸은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가는 길 중간에 경사진 곳이 있었는데 그곳을 오를 때는 어찌나 무겁고 힘이 든 지 두 다리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아팠다.  빗물처럼 흘러내리는 땀도 땀이지만 혹 넘어지기라도 자전거 밑에 깔려  버린다면 모든 게 끝장날 거 같았다. 누군가가 지나갈 때까지 도움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고, 부모님 몰래 끌고 나온 자전거 이기들키면 혼날 각오는 안 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피하고 싶었다. 그런 수모와 창피함을 당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만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어렵게 자전거를 끌고  넓은 학교 운동장에 도착했을 때는 가슴이 너무나 벅차올랐다.  장시간의 긴장과 무거운 짐 자전거 무게를 견디느라  딴딴해진 장딴지도 핸들을 꽉 쥐었던 손과 손목들도 무척 아팠지만 운동장에 홀로 서 있는 난 크게 야호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만큼 환희를 맛보았다. 어지러움이 사라질 때쯤에는 자전거의 벨도 힘껏 눌러보았다. 따르릉 거리는 소리가 왜 그리도 유쾌하고 즐겁게 들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고서 난 본격적으로 짐 자전거를 끌고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조금 익숙해진 듯 자전거 무게를 견딜 수 있게 되자  비틀거리고 휘청거리던 것이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그렇게 수십 번을 돌고 나니 또 안장에 앉아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운동장을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안장이 너무 높아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도저히 올라탈 수가 없었다. 설령 안장에 여타 하여 앉았다 하더라도 내 짧은 다리로 페달을 밟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전거와 곤두 박질 하고 말 것이 뻔한대도 불구하고 내 발로 페달을 밟아 달려보고 싶은 욕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아쉬움을 가득 않은 채 자전거와 운동장 걷기만 몇 시간하고 집으로 몰래 들어왔다. 짐 자전거와의 첫날이 무척 힘겨웠지만 나도 모르게 오후 내내 행복한 웃음을 웃고 다녔고 그날 이른 저녁에 아픈 다리와 팔을 몰래 주무르며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자전거 위에서 페달을 쌩쌩 밟고 달리는 꿈을 매일 꾸던 나는 그렇게 일주일 이상을 자전거와 걷기 데이트만 하던 중 새로운 시도를 해 보기로 했다.  짧은 두 팔을 높이 들어 핸들을 잡고선 오른쪽 발로 뒤차기로 땅을 차며 힘껏 앞으로 달리다가 자전거를 받치고 있는 삼각 튜브 사이로 짧은 두 다리를 넣어 페달에 두발을 얹어 보려는 이었다. 키도 작고 어린 나에겐 결코 쉽지 않은 시도인 줄 알면서도 무조건 도전했고 그 후로 넘어지기를 수 백번 아니 천 번 이상은 했던 거 같다. 넘어질 때마다 무거운 자전거를 넘어진 만큼 또 일으켜 세워야만 했던 도전.  가끔씩 아침 점심도 거른 체  5-6시간씩 쉬지 않고 운동장에서 넘어지고 일어서기만 반복하며 시간이 흘러갔고 어느 날 갑자기 자전거를 오른쪽 발로 힘껏 뒤로 밀어 자전거와 함께 앞으로 달려가다가 왼쪽 발을 오른발 위로 꼬아 왼쪽 페달에 올려놓고 오른발은 잽싸게 자전거 중간의 삼각 튜브 안으로 밀어 넣어 오른쪽 페달에 올려놓게 되었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옆으로 반쯤 누워 그 큰 짐자전거의 페달을 혼자 힘으로 밟고 있는 것이었다.  


옆구리로 짐 자전거 타기는 그 날부터 기적처럼 시작되었고 옆으로 넘어지면 또 일어나 다시 타고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자전거에 미쳐 있었던 나는 방학이 끝나 갈 즈음에는 혼자서 마음껏 페달을 밟고 운동장을 누비며 탈 수 있게 되었다.  온몸에 멍과 상처를 달고 살면서 부쩍 잠꼬대며 끙끙 앓는 소리까지 내는 나를 엄마는 걱정스러운 듯  "하루 종일 힘들게도 노나보다. 몸이 아플 정도로 놀지 말고 살살 놀고 다니라" 하셨다.  


혼자 자전거 타기에 꽤나 자신감이 붙었던 어느 날 난  옆구리로 짐 자전거를 타고선 냇가에서 빨래하시는 엄마를  모르게 찾아갔다.

"아구 깜짝이야. 멀리서 우리 자전거랑 비슷한 게 오길래 뭔가 하고 보고 있는 거라.  사람은 안 보이고 자전거만 보이는데 자꾸 내 한 테로 오고 있는 거라. 고 옆에 뭐가 쬐매한게  달려서 보일랑 말랑 하는데 옆으로 누워 갔고 페달을 억수로 열심히 밟길래 신기해서 계속 쳐다봤는데 그게 니구나." 눈치 빨랐던 엄마조차도 유난히 키가 작고 몸집이 작았던 내가 그 큰 짐 자전거를 혼자서 배우고 또 냇가까지 끌고 왔으리라곤 전혀 상상을 못 했다고 하셨다.  안장 위에 사람은 없는데 조그만 애가 그 큰 자전거를 옆구리로 누워 달랑 거리며 타고 오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다며 한참을 그렇게 눈물이 나도록 웃으셨다. 엄마가 힘들게 빤 무거운 이불 빨래를 같이 꼭 짜서 함께 짐받이에 올려 떨어지지 않게 꽁꽁 묶고 엄마가 머리에 이고 가려했던 빨래를 실었다. 처음으로 짐받이에 무거운 빨래를 싣고 가려니 경사 진 길에서는 넘어질까 진땀을 무척 많이 흘리기도 했지만 옆구리로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그렇게 5일장에서 보았던 아저씨들보다 더 화려한 곡예를 엄마에게 선사하며 집으로 달려왔다.



짐 자전거에 대한 나의 막연한 호기심과 끊임없는 도전은 여러모로 나를 조금 성숙시켜준 거 같다.  유독 아침잠이 많았던 나를 새벽마다 일으켜 주었고, 체육 시간이면 운동장 구석 차지였던 내가 어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기를 쓰고 자전거를 배웠다. 매일 시퍼런 멍과 상처로 밤마다 앓는 소리를 내어도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다시 일어나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매일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 주었다.

내가 배운 자전거 페달은 내가 밟은 만큼만 앞으로 나아갔다.  다리가 아파도 힘차게 밟으면 그만큼 앞으로 멀리 달려 나갔다.


인생에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들은 내가 키가 더 크고 다리가 더 길어질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수백 번 수천번 반복하며 타게 된 짐 자전거처럼, 나는 인생의 어려운 숙제들을 맞닥뜨리게 될 때마다 키가 더 크고 다리가 더 길어지기를 기다리기보다, 옆구리로 반쯤 누워서라도 페달을 힘차게 밟듯 정면 돌파하며 끊임없이 도전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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