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환자들 2
눈을 감고 그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그가 웃으면서 나에게 여윈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Mr. H!
새로 배정된 노인 재활 병동에서 일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만난 그.
내가 20대 중반의 팔팔 날아다니는 간호사 신졸이라면 그는 50을 갓 넘은 아저씨 환자였다.
평균 연령 때가 75세 이상이었던 노인 재활 병동에서 만난 50대의 아저씨 환자는 모두의 관심이 될 법한데도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간호사들이 별로 간호를 맡고 싶지 않아 하던 환자였다.
내 환자는 아니었지만, 향수병이 심했던 난 그를 보는 순간 여위신 내 아버지가 생각났고 갑자기 애착이 생겼다.
진료 기록을 읽어보다 울컥 눈물이 나올 뻔했다.
몇 년동안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수년을 이 병동 그 방에만 지냈다는 소리를 듣고선 왜 일까 무척 궁금했는데,
그는 그냥 평범하게 회사 생활을 하던 착실한 회사원이었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갱단들이 길거리 전쟁에서 쏜 총에 엉덩이 부위를 맞은 후 그의 평범한 인생은 완전 바뀌었다. 대 수술을 여러 번 거치긴 했지만 하지 마비와 심한 욕창으로 이 병원 저 병원 전전 긍긍하다가 양로원겸 재활 병원인 이곳에 보내진 것이었다.
그가 이곳에 온 후 가족 친지 친구들 그 어느 누구도 그를 찾는 이가 없었고, 그는 하루 종일 말 한디 하지 않아, 아마도 총격으로 뇌가 상했을지 모른다는 진료 기록에 없는 추측까지 난무했었다.
지정된 병실서 한번도 나와본 적이 없고 그의 방 한 구석엔 녹슬어 보이는 휠체어만 친구 마냥 그를 하염없이 그렇게 마주 하고 있었다.
그를 간호하게 된 어느 날. 무척이나 바쁜 날이었지만, 반갑게 인사를 했다. "Mr. H 씨 저는 오늘 당신의 간호를 맡게 된 간호사입니다. 처방된 약들을 준비해 왔어요. 일어나서 드시겠어요? 이 약은 당신의 혈압약이고, 이 약은 상처를 빨리 낫게 해 주려는 약이고요. 이 약은 비타민이고요." 쫑알거리며 계속 말을 해 나가도 한마디 말이 없이 있다가 윗몸을 살짝 일으키며 컵에 있는 물을 쳐다보았다. 물병도 컵도 너무 더러워 보였다. 기다리라고 하고선 새 물병과 시원한 물을 가져다 줘었다. 그는 고개만 살짝 끄덕일 뿐 눈 한 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의 엉덩이의 총상으로 인한 상처와 늘 누워 있어 주변에 발생했을 욕창을 드레싱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는 말이 없었지만, 내가 하라는 데로 윗몸과 팔을 이용해 몸을 요리조리 돌려주었다. 밤 번 간호사들이 드레싱을 해 놓았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항문과 가까운 곳이라 아무리 잘해 놓았다 하더라도 깨끗이 8시간을 유지하기는 힘들 거 같았지만, 그래도 좀 심하다 싶었다. 테이프로 뒤범벅이 된 드레싱을 떼어낸 순간, 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내 눈앞에 있는 깊은 상처. 내 두 주먹은 족히 들어갈 만한 크기에 뼈와 인대까지도 드러나 있고 생고기가 썩어 들어가는 것 같은 역한 냄새로 현기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방을 박차고 나올 수는 없었다.
더러운 드레싱을 버리기 위해 화장실에 휴지통을 가지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선 손 씻는 척하며 최대한 소리 나지 않게 울컥이며 나오는 구역질을 토해내고 나서 다시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여전히 나와의 아이컨택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하고 끝난 첫 상처 치료. 그 이후 3교대 간호사들 모두에게 교대하기 전 반드시 드레싱을 갈아 주라는 나의 독촉이 시작되었다. 드레싱 후 시간과 날짜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적도록 하였다. 그건 어느 환자에게나 적용되는 매뉴얼이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혹시 지나치더라도 문제가 생기면 아무런 표시가 없는 드레싱을 자기가 한 양 덮으려는 얄팍한 태도들을 가진 몇몇 간호사들은 일부로 잊어버린 척하면서 하지 않고도 한 척하였었기에 반발도 있었고 네가 뭔데, 간호 감독이라도 돼 라는 태도로 나를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뉴얼대로 하지 않는 당신들을 보고 하겠다는 위협으로 그들은 억지로 따랐고, 갑자기 꼬박꼬박 하루에 3번 드레싱을 바꾸기 위해 간호사들이 애쓰는 걸 보고선 한 달쯤 지나 환자가 밤 근무 중인 한 간호사에게 입을 떼었다. "그 동양인 간호사 이죠?" 의아애 하는 그녀에게 또 한마디 하고선 다시 침묵에 빠졌다고 전해 들었다. "그녀가 오고 나서 나의 드레싱은 하루 3번씩 꼬박꼬박 이뤄지고 있어요."
그랬다. 그 환자의 담당이 아닌 날에도 내 환자 중 한 명을 바꿔 그 환자를 돌보았다. 상처 치료 시간이 꽤 걸리는 통에 담당 간호사들은 흔쾌히 허락하고 나중에는 아예 그쪽 팀이 되어 그 환자를 전적으로 돌보게 되었다.
"Mr. H, 처음에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의 상처는 내 두 주먹을 넣을 만큼 컸는데 두 달이 된 지금은 내 주먹 하나 반 들어갈 정도로 작아졌어요." 그러면서 매일매일 사이즈를 재고 그 사이즈를 수박, 멜론, 사과, 귤, 호두 등으로 표현해 가면서 그의 마음을 열기 시작한 지 4개월 정도가 지나 상처가 사과만 해졌을 때 그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여전히 낮은 목소리의 그가 나에게 한 말은 감사하다는 인사였고, 자기의 상황이 나에게 뭘 보답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처지라 미안하다는 인사였다.
드레싱을 끝내고 나서 난 구석에 있던 휠체어를 끌어내고 앉아서 그에게 내 눈을 봐 달라고 했다. 쑥스러움과 깊은 상처로 쑤욱 꺼져 있던 그의 눈가에 배어 있던 외로움의 그림자가 어찌나 강렬하던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두 눈은 지금까지 잘 보기 힘든 선하디 선한 눈매였다.
그에게 나는 감사함의 대가로 그가 해 줄 일이 있다고 했다. 그의 쑥 꺼진 눈이 살짝 당황해하면서도 궁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감히 물어볼 자신감 조차 없었던 그는 그냥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난 당신을 치료하던 첫날부터 당신과 꼭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뒀었어요. 당신이 정말 잘 먹고 빨리 나아서 이 휠체어를 타는 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이 1월 말이니 봄꽃이 만발하는 4월 초나 중순쯤에 휠체어를 타고 병원 뒤뜰로 나가서 저와 점심시간에 데이트해 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그가 흰 이빨과 잇몸까지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선 다시 수줍은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선 조금 피곤하다며 누웠다. 나가면서 난 끝까지 말했다. 제대로 먹지 않던 그의 영양 상태가 염려되었던 터라 잔소리처럼 큰 소리로 떠들면서 나왔다. "우리 데이트하려면 많이 골고구 잘 드셔야 해요. 비타민도 뱉어 내지 말고 다 드시고요. 천천히 다리 운동도 시작하고요. 그래야 휠체어에도 앉고 밀기도 할 힘이 생기죠."
환자가 갑자기 물리치료를 하고 싶다고 신청을 했다. 두 세 숟갈 먹고 밀어내던 밥상이 비워져서 나오기 시작했고 영양사들도 처음으로 콜을 받고 환자와 영양 상태를 점검했다.
탄력을 받은 건지 사과 만하던 상처도 매일 눈에 다르게 작아져 호두알 만해 져 가던 던 3월 중순 어느 날.
짧은 휴가를 지나고 일 하러 간 그날. 간호복을 갈아입고 인계를 받으러 병동으로 나가던 난 간호사실 앞쪽에 고개를 숙이고 휠체어에 앉아있는 그를 발견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소리를 지르는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던 그에게 난 달려가 안아주고 나서 그의 손을 잡고 혼자 춤을 추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환자들과 직원들 모두가 박수를 치면서 혹은 함께 기뻐하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날은 하도 흥분을 해서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우리의 데이트가 좀 더 빨라질 거 같아요. 팔에 힘을 조금만 더 키워서 스스로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 타는 법을 빨리 배우길 바라요. 그리고 휠체어를 조금만 밀수 있다면 두꺼운 외투를 입고라도 뒤뜰로 데이트 가요!"
그는 정말 열심히 운동하고 먹었다. 그래도 마르고 뼈대밖에 없었던 몸에 살이 붙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여전히 여위고 다리는 꼬챙이 같았지만, 엉덩이 상처가 작아져 가면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게 가능해진 것만으로도 우리는 기적이라 불렀다.
주말 연휴를 앞두고 일하던 3월의 마지막 날. 상처가 이제 애기 새끼손가락만 하다며 올라오는 새살마저 아기 손가락처럼 핑크빛이라고 깔깔 거리며 드레싱을 마쳤다. 왠지 그는 기운이 없어 보였고 창백해 보였다.
퇴근할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그는 날 쳐다보면 웃기만 했지 여전히 창백해 보였고 퇴근하고 다음 주 보자고 손을 흔들어 주는데도 힘이 없는지 팔을 제대로 들지도 못한 체 떨구었다.
불안함이 엄습해와 당직 의사를 콜을 했지만 연락이 제대로 닿지 않았다. 인계하는 내내 그 환자 걱정에 주임 간호사도 다른 간호사들도 환자 멀쩡하던데 걱정 너무 한다며 이렇게 많이 좋아진 것만으로도 넌 충분히 했으니 주말이나 잘 보내라고 토닥였다. 피부가 검은 그 환자가 창백해 보인다고 하는 내가 웃기다고 말하는 병동 사무직원의 반 놀림을 뒤로하고 인계 후 다시 가 봤지만 그는 천천히 눈을 떠보였고 여전히 힘없이 웃기만 했다.
다른 간호사에게 계속 의사 콜을 부탁하고, 연락 오면 무조건 빈혈검사와 기본적 피검사 오더 받으라고 하고 난 무작정 피검사를 한 후 검사를 내려 보낸 후에야 퇴근 시간 1시간 30분 이상을 넘긴 후에야 퇴근을 했다.
다음날 주말인데도 전화를 걸어 Mr. H의 안부를 물었다. 그냥 탈수가 되어서 수액을 맞고 잘 자고 있다고 했다.
얼마나 감사한지 그제야 난 안심하고 깊은 잠을 자고 주말을 보냈다.
4월의 아름다운 첫 월요일, 기분 좋은 마음으로 Mr. H와 데이트를 할 생각을 하며 출근했는데, 큰소리로 인사해 주던 환자들과 직원들이 모두 나의 눈을 피하고 있는 걸 느낀 순간, 난 탈의실이 아닌 그의 병실로 먼저 달려갔다. 텅 비어 있는 병실. 다시 달려 나와서 그의 진료기록을 찾는데 그 차트 조차 없었다.
내가 의자에 주저앉자. 그제야 주임 간호사가 다가와서 소상히 얘기를 해 주었다. 내가 뽑아 보낸 혈액 검사 결과가 밤늦게 나왔을 땐 너무나 극심한 빈혈이라는 진단이 나왔고, 그 새벽에 환자에게 수십팩 혈액을 찾아 수혈을 시작하기까지 몇 시간이 더 흘렀는데, 수혈을 받다가 중도에 끝내지도 못한 체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의 임종을 지켜본 밤 번 간호사가 중간에 수혈 백을 갈러 갔을 때 본 그의 검은 피부는 더욱 창백해 있었고, 그는 겨우 겨우 눈을 뜨고서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선 평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았다고 했다.
그 한마디에 밤 번 간호사는 울기 시작했다고 나에게 고백했다. 그가 스러지듯 내 이름을 부르고선 남긴 한 마디... "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