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사이
부모님은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셨다.
새벽 4시 30분이면 삐거덕이며 대문을 나서서 일터로 나가시던 아빠에게 종종 하던 엄마의 잔소리. 겨울 내내 동면하는 곰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잠자기를 좋아하던 나에게 엄마의 잔소리는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그 소리에 가끔 깰라 치면 출근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새벽 밥상을 기다리며 고개 숙인 채 말없이 앞머리만 연신 만지작 거리시던 아빠의 눈과 마주치곤 했다. 방이라고 해야 고작 조그만 방 두 개뿐인데 올망졸망한 다섯 형제들이 전쟁처럼 자는 방에 자다가 한밤중에 오줌이라도 누려고 일어나는 날이면 난 몰래 엄마 아빠가 있는 방으로 침입해 잠꼬대와 발길질이 없는 평화로운 잠을 연장해 다시 깊은 잠에 빠지곤 했었다. 그런 평화로운 새벽에 시작된 엄마의 잔소리. 이미 대꾸하길 체념한 듯 아니 초월한 듯이 말없이 앞머리만 툭툭 만지고 있는 아빠와 난 눈이 어쩌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깊은 한숨과 함께 후회가 밀려왔다. 그냥 저 방에서 잘걸….
그래도 난 아빠와 눈이 마주치면 금세 웃었다. 아빠가 내게 소리 내지 말고 자는 척하라는 듯 ‘쉿’ 하는 사인을 보낼 때면 부엌에 있는 보이지 않는 엄마 눈치를 보는 아빠 모습이 웃겨서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 아빠의 사인에 난 무슨 비밀을 나눈 것 마냥 금방 눈을 찔끔하고 자는 시늉을 했다. 그건 마치 엄마의 잔소리가 클래식 음악인 양 조용히 감상하라고 아빠가 신호하시는 거라고 그것에 대답하듯 했다. 엄마의 잔소리 클래식을 듣다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말들 투성이었지만, 대충 아빠가 문제를 일으켰을 거고, 그런 문제가 엄마를 화나게 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이미 시작된 엄마의 잔소리 클래식은 아빠에 대한 엄청난 미움 때문에 쉼 없이 연주가 되었다. 다시 눈을 살짝 떠서 아빠를 쳐다보니 이번에는 나더러 귀 막는 흉내를 내며 안 듣는 게 낫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찡긋해 보이셨다.
인적 없는 새벽 일터를 가기 위해 새벽밥을 드시는 아빠의 모습을 몇 번 보지도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런 아빠를 위해 매일 이른 새벽 아빠보다 더 먼저 일어나서 음식을 만들고 도시락을 싸며 부족한 잠을 도마 소리로 채우다가 문득 지난밤 아빠의 술주정으로 잠을 잃고 또 새벽에 일찍 일어나 그런 미운 아빠를 위해 밥을 짓고 있는 자신을 보며 화가 치 밀어 잔소리 클래식을 틀어야만 했던 엄마의 마음이 세월이 지나 조금은 이해가 된다.
자는 척하던 나의 시늉은 조그맣고 아담한 밥상이 들어오면 끝이 났다. 불편하기 그지없었던 좌식 부엌에서 다리를 오므리고 허리 굽힌 채 땀 흘리며 연탄불에 밥과 국, 반찬들을 만들어 차려 들여오는 엄마가 내려놓은 아빠의 새벽 밥상. 바로 그 상 밑에 코를 디밀고 자는 척한다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까웠기에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막 일어난 양 기지개를 쭈욱 켜고 눈을 비비며 절반쯤 일어난 몸을 밥상 앞으로 내밀면 나의 미션은 성공한 것이었다. 한번 더 아빠와 비밀 윙크를 하고 엄마를 쳐다보며 씩 웃어주면 엄마는 “곰이 웬일로 이렇게 일찍 눈을 떴을까! 계속 잘 것이지..” 하고 반 놀림 섞인 소리를 하셨다.
어쨌든 엄마가 막 들여온 미움이 담긴 밥상. 독수리 오 형제나 거북이 닌자들이 적과 싸우고 난 후처럼 엉망이 된 밥과 국, 반찬, 김치들. 모든 것이 섞여서 밥상 위에 흩트려져 있는 걸 보고 밥상이 밥상이 아닌 게야 하며 놀란 눈으로 쳐다보다가 아빠는 들고 있던 수저마저도 포기하고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드시기 시작하신다…. 이것이 잔소리로 일관한 엄마가 아빠께 차려 내온 내가 상상한 밥상이었다.
하지만, 그 상상을 깨는 단아한 밥상. 단아하다 못해 정성이 느껴지는 밥상. 몇 가지 안 되는 반찬이지만 너무나 깔끔하게 스테인리스 그릇과 하얀 접시에 담겨들 있었다. 스텐 국그릇에 담겨 있는 고기 몇 점 안 보이는 무만 가득한 소고기 뭇국, 적당히 윤기 흐르고 깨가 솔솔 뿌려진 까만 콩자반, 뼈를 튼튼하게 한다는 뼈도 없어 보이는 가는 멸치조림, 세상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아삭하고 빨간 엄마표 배추김치, 겨울 내내 땅속 장독에 묻혀 지내다가 아빠가 전날 술을 거나히 드시고 온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밥상에 올라오는 속이 뻥 뚫리는 시리디 시린 시원한 하얀 물김치.
아빠가 밥상 위 덮여 있던 스텐 밥그릇을 여니,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그 서린 김 사이로 보이는 밥그릇에 탱글탱글한 하얀 쌀밥이 소복이 담겨 있었다. 너무 다른 출퇴근 시간 때문에 우리는 아빠와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거의 달랐다. 늘 갖은 잡곡으로 흰 쌀보다 집에서 키우는 누렇고 거므틱하던 우리 똥개 색깔 비슷한 우리 밥이랑은 사뭇 다른 밥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반쯤 일으킨 몸을 벌떡 일으켜 반사적으로 밥상에 바싹 붙어 앉았다. 아빠가 한 숟갈 퍼기도 전에 그 하얀 쌀밥을 한 입을 얻어먹으려 내 눈과 몸은 아빠의 숟가락에 거의 바싹 붙어 있었다.
숭늉을 들여오시던 엄마가 아서라며 내 등짝을 찰싹 치셨고, 실망한 나는 뒤로 밀려나서 아빠가 떠 올리는 밥 숟가락을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일나 가시는 아빠의 새벽밥은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하셨다. 새벽에 일어나서 매일 수 백여 미터 아래 갱으로 내려가 하루 종일 위험한 탄광에서 일해야 하셨던 아빠를 위한 엄마의 암암리 금기 사항 때문에 난 그냥 눈을 끔뻑 거리며 아빠의 눈과 수저를 번갈아 쳐다만 보았다. 아빠는
무척 미안한 해 하시면서도 얄미울 만큼 잘 드셨다.
순식간에 밥공기의 4분의 1 정도를 비웠을 때 아빠의 손놀림이 밥 비비는 걸로 빨라지셨다. 그 빨라지는 속도만큼 변해가는 밥의 색깔. 얼추 다 비볐을 때 그렇게 뽀얗고 하얗던 쌀밥이 너무나도 예쁜 노란색으로 변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밥상 앞으로 다시 튕겨져 앉았다. 하얀 쌀밥의 로망 따위는 다 잊어버렸고 순식간에 변해 버린 그 노란 밥의 정체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거기다가 내가 좋아하는 참기름 냄새도 폴폴 풍겨 올라 오자 엄마의 또 아서라는 말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날 잠재운 건 엄마의 날카로운 단 한마디였다. “날달걀이다!”
그 예쁜 노란색 밥의 정체가 바로 매일 오가던 초등학교 앞 시골 할머니가 커다란 광주리에 풀어놓고 팔던 병아리라니. 몇 뼘 안 되는 높이의 광주리를 빠져나오지 못해 빙빙 돌며 그 조그만 입으로 삐약거리며 좁쌀을 쪼아 먹던 너무나 귀여운 노란 병아리들이라니. 달걀 안에 들어가 있던 작고 귀여운 병아리들이 톡톡 껍질을 깨며 주둥이와 고개를 쏙 내밀고 나오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그 힘없고 예쁜 녀석들이 아빠의 따듯한 밥 속에서 비벼지고 있다니. 나의 놀람과 상관없이 즐겁게 밥을 비비고 있는 아빠와 잔인한 한 마디로 예쁘디 예쁜 노란 밥에 대한 환상을 무자비하게 깬 엄마를 번갈아 보며 난 어느새 배신감에 두어 발치 물러나 있었다.
방해꾼을 없앴다는 안도감이었을까 아빠는 노란 밥을 너무나 맛있게 드셨고 어느새 아빠는 나와의 비밀 윙크를 엄마한테 날리며 그렇게 서로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아빠는 수저가 밥공기 밑바닥을 긁는 소리를 낼 때까지 노란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너무나 맛있게 드셨고, 밥공기 여기저기 말라 붙어 가는 남은 노란 달걀 잔재들을 따뜻한 숭늉까지 부어 휘휘 저어 후루룩 드신 후에야 식사를 끝내셨다.
어리고 어리숙했던 나. 날달걀은 생명이 살아 있는 거 같았고 병아리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그때 나는 이상한 상상으로 그 희한한 아빠의 아침 식사를 지켜보아야 했다.
그날 엄마의 폭풍 잔소리 뒤에 나온 정갈한 밥상은 나의 상상력과 부모님의 나쁜 사이에 대한 내 편견이 빗 나간 것 같았고, 새벽잠을 확 깨우기게 충분했던 노란 밥의 정체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쉽게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엄마의 잔소리는 새벽부터 힘들게 나가셔서 수백 미터 아래 갱속에서 오랜 시간 일했던 아빠에 대한 염려였고, 버거운 매일의 삶 와중에 아빠의 유일한 위안이었을지도 모를 술이 과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고 속상함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그런 아빠를 위해 엄마가 유일하게 돈 걱정 않고 고기 대신 마음껏 줄 수 있었던 영양가 있는 달걀을 하얀 쌀밥에 숨겨 엄마의 진심 어린 걱정 염려를 아빠에게 전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예쁜 노란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