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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azy Scientist May 25. 2023

선의라는 섬광, <영주>

영주(2018) | 차성덕 | 드라마 | 한국


몸을 접음으로서 세상과 닿는 면적을 줄인 채 앉아있는 상문(유재명)의 공간은 넓지 않아 보인다. 불현듯 상문의 공간에 침입한 영주(김향기)는 좁은 공간의 희미한 빛마저 가리고 서서 상문의 세계에 침투한다. 트럭을 몰다가 사람 둘을 죽이고 그 일로 말미암아 아들을 죽음 곁으로 내본 자가 모두 자신이라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상문은 한번은 형을 살음으로써 두 번은 스스로를 증오하면서 벌을 받고 있다. 그는 “책임이란, 회피가 가능한 상황에서도 기꺼이 떠맡는 것”이라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을 실현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영주(2018)> 스틸컷 :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가장이 된 영주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부단히 노력하지만 집까지 팔아야 할 상황에 놓이자 부모를 죽게 한 사람들을 찾아간다.

회피가 가능한 상황에서도 책임을 지는 것은 우리가 늘 간과하고 있는 일이다. 사실 책임을 오롯이 떠맡는다는 것을 간과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상문이 죄책감에 시달리는 날에는 그의 곁에 아내 향숙(김호정)이 있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그녀는 또한 모든 것을 아는 존재이다. 영주가 돈을 훔치고 달아난 다음날 “넌 좋은 애야. 아줌만 알 수 있어.”라고 말하는 향숙은 마리아와 닮았다.


<영주(2018)> 스틸컷

상문의 자학을 막아내는 이는 상문이 죽인 부부의 딸 영주도 포함된다. 부모님을 죽인 상문에게 악의를 가지고 접근한 영주는 상문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의도치 않게 도움을 준다. 그 순간 영주는 상문과 향숙의 선의의 세계에 들어간다. 그들을 만나기 전, 부모 없이 살아가는 영주 곁에는 늘 불의가 도사리고 있었다. 어른이라는 명목으로 휘두르는 폭력과 알지 못하기에 당하는 사기는 18살 아이에게 비정했고 차가웠다. 어리고 순진한 존재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당하기 쉽다. 알지 못해 피할 수 없었던 아픔을 그것도 추억이라 말하는 꼰대 대신 일심양면 도움을 주는 어른이 상문과 향숙이다. 영주는 그런 두 사람을 보고 혼란스럽다. 영주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사람과 최초로 선의를 베푼 어른들 중 무엇이 더 무거운 존재인지 저울질한다.


<영주(2018)> 스틸컷

영주가 저울질을 보류하고 있는 사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영주에게 영인(탕준상)이 찾아온다. 고민을 재촉하는 영인이 간 뒤 영주의 내적 갈등은 끝에 치닫는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서트는 영주의 내적 갈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거친 아스팔트 위, 두부를 실은 카트에서 물이 떨어진다. 그것이 영주가 흘리는 눈물인지, 단지 두부에서 떨어지는 물인지 구별 할 수 없었다.

 

<영주(2018)> 스틸컷

그 외에도 영화 속 몇몇 장면은 상징적이다. 하고자 하는 말이 뚜렷하고 그것을 향해 내달리는 힘이 좋다. 설득력이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결말이 그 헐거움을 잊게 한다. 영화관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관심을 가졌고 관객의 호응 또한 높았다. 너무 명확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명확한 무언가가 너무나도 빛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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