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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Apr 04. 2023

조폭을 동생으로 두었더랬다

제발 형님이라고 부르지 말아 주세요

"행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가게 출입문이 부서져라 밀고 들어오는 한 손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오랜만에 친구 만나러 왔다가 내 얼굴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들어왔다는 A는 내가 장사를 갓 시작했을 무렵 동네 건달처럼 살던 녀석이었다. 거리에서 취객들을 대상으로 호객행위를 하거나 조폭들 심부름을 한 대가로 푼돈을 받아 생활하며 수시로 우리 가게에 드나들던, 결코 친하고 싶지 않은 부류의 인간이었다.


"행님, 혹시 그날 기억합니꺼? OO(룸살롱 이름) 행님들(조폭들) 단체로 여기 와서 도떼기시장처럼 난장판 만들었던 거. 그날 행님이랑 저랑 둘 다 시다바리 짓 하느라 욕봤다 아임미꺼."

어쨌든 찾아온 손님이니 문전박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커피 한 잔을 내놓았더니 A는 자연스럽게 내게 흑역사로 남아 있는 그날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주택가로 바뀌며 많이 쇠퇴한 상권이지만 내 가게가 자리 잡은 곳은 한때 이 도시의 유흥 중심가였던 곳이었다. 당연히 룸살롱을 포함한 유흥업소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고 그에 따른 이권 때문인지 이른바 조폭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거리에서는 크고 작은 난투극이 벌어졌고 출동하는 경찰차를 보지 않는 날보다 보는 날이 더 많을 정도였다.


그날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날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나 싶을 무렵 평온한 분위기를 깬 것은 거리에 줄지어 서는 구형 그랜저였다. 한때 조폭들의 상징과도 같았던 속칭 각 그랜저가 가게 앞에 정차하는 순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이윽고 차에서 내린 열댓 명의 덩치 좋은 형님들이 가게에 들어서면서 악몽은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가게를 장악한 조폭들은 앞다투어 만두를 비롯한 냉동식품과 컵라면을 손에 잡히는 대로 카운터로 던지기 시작했다. 욕과 함께 명령에 가까운 주문이 이어질 때마다 연신 굽신거리며 영혼이 절반쯤 빠져나간 상태였던 나는 카운터에 올려진 음식들을 데우고 끓이며 마치 맛집으로 이름난 식당의 종업원이라도 된 것처럼 정신없이 서빙을 해야만 했다. 당시 매장 내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했던지 들어오려던 많은 고객들이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 그들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때 그 바닥의 막둥이였던 A도 본의 아니게 나를 도와 각종 심부름을 도맡아 했었다.


그렇게 정신이 없던 그 순간에도 머릿속에는 오로지 하나의 생각, 계산하지 않고 그냥 가도 좋으니 어서 빨리 나가 주는 것뿐이었다. 행여 그들의 심기라도 잘못 건드렸다가는 언제 쇠파이프와 회칼이 나를 향해 날아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최대한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갖은 애를 쓰며 그저 악몽 같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던 그때였다. 매일 담배를 사러 오시던 단골 고객이었던 아저씨 한 분이 길 건너편에서 우리 가게를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걷는 방향으로 짐작컨대 우리 가게로 오는 게 거의 확실해 보였다. 무심코 들어왔다가 괜히 필요 없는 시비에 휘말릴 것이 걱정되어 제발 내 생각이 틀리길 빌었지만 그 아저씨는 내 바람과는 달리 이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필요한 물건만 사서 아무 일 없이 나가길 바라며 카운터로 향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난장판 같던 가게 안이 일시에 적막강산으로 변함과 동시에 깍두기 형님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오셨습니까? 형님"을 외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가게 안에는 나와 인상 좋은 그 아저씨뿐이었다. 카운터에 선 그 아저씨는 담배 두 갑을 주문한 후 인자한 미소와 함께 10만 원짜리 수표를 내밀며 매장 내에 먹고 있는 모든 것을 계산하라고 하셨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는 내가 신경이 쓰였던 건지 그 아저씨는 나가는 길에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한 사람을 불러 "여기 사장님 너거들보다 훨씬 형님이시다. 앞으로 형님처럼 모시고 괜히 와서 난동 부리지 말고 먹던 거 조용히 먹고 정리 다 하고 가거라이~"라고 하셨다. 뒤늦게 A로부터 듣게 된 사실이지만 그 인상 좋은 단골 고객 아저씨가 인근 룸살롱의 사장이면서 한때 인근을 주름잡던 조직의 대부였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날의 해프닝은 큰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었지만 나는 본의 아니게 그 이후로 한동안 험상궂은 비주얼을 가진 동생들을 거느려야(?) 했다. 오며 가며 부딪힐 때마다 그 인간들이 나를 향해 '형님 형님'이라고 할 때면 쥐구멍에 숨고 싶기도 했고 먼발치에서 그들이 보이기라도 하면 오던 길을 되돌아가며 피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상권이 급격히 바뀌며 그 룸살롱의 폐업과 함께 그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고 폐업 후에도 간혹 오시던 사장님도 발길을 끊으셨다. 그 이후로 모든 것을 잊고 살던 차에 느닷없이 A가 나타난 것이었다. 이런저런 옛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처음 가졌던 일말의 불안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잔뜩 경계했던 내 마음도 조금씩 풀렸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A는 삼겹살 전문점 간판이 적힌 명함 한 장을 주며 혹시 진주에 올 일 있으면 꼭 한 번 찾아달라는 말을 끝으로 약속이 있다며 길을 나섰다.


내 인생 통틀어 가장 비굴했던 그날, 팔자에도 없는 열댓 명의 조폭 동생을 한 번에 맞이하는 호사를 누리게 된 것 외에 나는 두 가지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첫째, 절대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둘째, 언제 어느 시에 어떤 도움을 줄지 모르니 모든 사람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사람이 되고자 항상 노력하자는 게 그것이다. 장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이 두 가지는 내가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는 데 있어서도 여전히 잊지 않고 지키려는 나만의 생활신조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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