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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Feb 17. 2023

비밀이 많은 사람들

내가 비정상인가, 그들이 비정상인가

<사례 하나>

아내와 교대 준비를 할 무렵 인근 가게 사장님께서 오셨다. 얼마 전 우연히 주식에 대해 얘기 나누었던 것을 계기로 그분은 오실 때마다 주식 이야기를 꺼내곤 하셨다. 그날도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자신이 보유한 종목을 줄줄이 읊어가며 어떤 것은 몇 % 오르고 어떤 것은 몇 % 떨어졌다는 식으로 열변을 토하다가 그 말 끝에 내 주식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었다.

넓게 보면 어느 정도 회복세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마이너스를 탈출하지 못한 상태라는 내 대답에 그분께선 뭔가를 말하려다가 갑자기 손으로 입을 가리는 시늉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시나 싶어 쳐다보니 조용히 손가락 끝으로 아내를 가리키며 뭔가 대단한 비밀 누설이라도 한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그 모습이 너무 우습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 그냥 편하게 말씀하셔도 상관없다고 했었다.



<사례 둘>

온라인 카페 활동을 할 때의 일이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 댓글에 '남들은 저희 부부를 일컬어 슈렉과 피오나 공주라고 합니다. 저희 부부가 슈렉과 피오나 공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 아내가 피오나 공주라 해도 호빗인 것만은 분명합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가 발끈 화를 내시는 어떤 여자분의 답글을 받았다.

"저도 키가 작아서 그게 늘 콤플렉스인 사람입니다. 부인께서 만약 이 글을 보신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실까요? 제 남편이 밖에서 이러고 다닌다면 화가 많이 날 것 같습니다. 키가 작은 사람은 사람도 아닌가요?"

도대체 어떻게 해석을 하면 저런 결론에 도달하는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언제 키 작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었냐고 당장이라도 따지고 싶었지만 굳이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불편하게 보였다면 죄송하다는 답글을 달고 말았다.



<사례 셋>

인스타그램을 맞팔로우 하는 어느 지인이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내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는지 물었다. 별생각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앞으로는 마음대로 댓글을 달지 못하겠다며 부부 간에도 비밀의 공간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따라다니며 떠벌리고 알리는 것도 이상하지만 굳이 그걸 비밀로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고 했더니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으니 당신도 이렇게 살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그 입장에 처한다면 상처받을 것 같다는 어설픈 '공감'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이렇게 살고 있으니 당신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며 은근슬쩍 '강요'를 하는 사람도 있다.


첫 번째 사례에서 그 사장님은 나도 당연히 아내 몰래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걸로 주식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두 번째 사례에서 그녀는 내 아내의 입장에 과도한 감정이입과 공감을 한 결과 터무니없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세 번째 사례에서 그 지인은 언뜻 보면 일리 있는 듯한 '부부간에도 비밀은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내게 강요 아닌 강요를 했다. 이 세 가지 사례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키워드는 '비밀'이다.


태생적으로 비밀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기에 웬만한 건 다 공개하는 편인 나는 아내에게도 모든 것을 까놓고 말한다. '나 브런치 작가 합격했쓰요~~~~"라며 주소 링크까지 날리는 수고를 하지 않았고 구독해 달라며 애원하지 않았을 뿐 이러저러한 곳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말을 했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소개글에도 브런치 주소를 넣어두었다. 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게 오픈해 놓았으니 보고 안 보고의 판단은 아내가 하면 된다.


브런치에 들어와서 글을 쓸 때마다 늘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 고민은 특히 아내 관련 얘기를 꺼낼 때이다. 과연 어디까지 공개할 것이고 어떻게 쓰면 읽는 분들이 오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표가 항상 따라다니지만 결론에 이를 무렵이면 한 가지만 남는다. 

'내가 죽는 날까지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제외하고 최대한 다 쓰자.'


오래전, 한 친구가 이런 나를 두고 너무 솔직한 것도 병이라고 말했었다. 당시에는 그냥 피식 웃고 말았지만 만약 그 친구가 이 글을 읽는다면 나도 비밀이란 게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대신 그 비밀이란 것은 특정 누군가를 향한 비밀이어서는 안 되고 나 이외의 그 누구도 알아서도 안 되는 것을 뜻하는 거라 말하고 싶다. 별로 사용하고 싶진 않지만 비밀이란 단어를 꼭 써야 한다면 나처럼 하는 게 맞는 거라 생각한다. 배우자 몰래 주식을 하고 배우자 몰래 어딘가에 가서 흉을 보고 배우자가 모르는 나만의 공간을 두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낫지 않나?




<덧붙이는 글>

재작년 늦가을쯤 어느 작가님께서 글을 쓸 때 어떤 부분을 더하고 빼는지 내게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글의 흐름에 방해되는 부분이 있다면 뺄 수는 있어도 절대 더하는 것은 없다고 답했었다. 명색이 에세이를 쓴다는 인간이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면 그게 소설이지 어떻게 에세이가 될 수 있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적어도 글을 쓸 때, 없는 것을 지어내서 쓰지는 않는다는 뜻이었고 그 생각은 꽤 긴 시간이 흐른 지금도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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