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퀴리코 도르차
어떻게 하면 읽은만한 글을 쓸 수 있을까. 고수들의 글쓰기에는 어떤 비법이 숨어있지 않나 해서 책을 찾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다면 독서와 스케치로 보내는 것이 요즘 루틴인지라 금요일 오후에는 동네 도서관을 간다. 은유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을 빌리러 갔다. 대출가능하다고는 되어 있는데 책이 없다. 사서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공포와 스릴러가 혼합된 독특한 장르소설 작가로 유명한 스티븐 킹의 글쓰기 책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력서’라고 되어 있는 부분을 읽어보다가 작가의 경험이 재미있어서 대출을 해왔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글쓰기로 밥을 벌어먹을 수 있을 때까지의 이야기는 쏙 빠져 읽을 정도로 흡입력이 있다. 다만 이야기 중간에 스티븐이 언급한 작가들이 누군지 몰라서 완전한 몰입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우리나라 작가들 이름도 모르는데.
쉬운 읽기가 끝나고 ‘창작론’에 도달하니 하품이 날 정도로 지루하다. 그래도 꾸역꾸역 읽어내고 있다. 작가란 세상에 이미 있는 이야기를 발견해 내는 사람이라는데, 발견할 때까지 연장통에 도구를 잘 정리해 두고 딱 발견하면 열심히 채굴을 하면 된단다. 어째서 성공한 작가들은 이런 말로 ‘재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건지. 재능이 없어도 꾸준히 노력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하면 좋겠지만, 나도 잘 안다. 현실은 언제나 소망을 배신하는 법. 그래도 혹시나 해서 이렇게 쓸모도 재미도 없는 글을 끄적이고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스티븐이 처음으로 한 말이지는 모르겠다. 나는 불필요한 부사를 넣어서 독자의 상상력을 방해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하기로 했다. 권위를 가진 경험자의 말이라고 무조건 동의를 해야 하나. 부사가 무슨 죄를 지은 품사도 아닌데 쓰지 말라고 하는 건지. 잠깐. 이 책은 번역서잖아. 영어의 부사와 우리말의 부사가 정확하게 일대일로 매칭이 되는 품사일까. 문법전문가가 아니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다를지도 모른다.
우리말에서 속마음을 표현하는데 부사가 얼마나 중요한데 말이야.
예를 들자면, 아내가 어느 날 친정집 나들이를 갔다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저녁도 먹고 친정집에서 하룻밤 자고 오겠다고 한다.
이 전화를 받은 나는 ‘차분하게’ 저녁식사를 혼자 준비한다. 가끔은 자유를 갈망하는 중년아저씨의 속마음이 느껴지는 ‘부사’가 아닌가.
책을 다 읽고 나서 리뷰를 써야 하지만 더 이상 읽어내고 싶지 않다. 그래도 재능과 상관없이 본받을 만한 점이 있다면,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문을 닫는다는 점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문을 닫기는커녕, 다이어트를 계획한 사람이 중간에 먹을 간식거리를 챙기는 것처럼, 전화기도 챙기도, 읽을거리에 스케치북까지 챙긴다. 이래놓고 좋은 글을 못 쓰겠다고 투덜거릴 일은 아닌 거지.
아래 그림은 문을 닫는 대신 가져간 스케치북에 그린 <산 퀴리코 도르차>입니다. 토스카나의 작은 마을이고요. 비아 프란치체나(이탈리아의 순례길중 하나)를 걷는 순례자들이 쉬어가는 곳입니다. 중세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오는 골목길이 근사한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