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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Sep 17. 2023

사평역에서

소설도 있고 시도 있고

우리집 꼬맹이의 책장에서 ‘사평역’이란 얇은 소설책이 보였다. 고개가 갸우뚱. ‘사평역에서’란 시가 있는데. 소설을 읽어보니 시골역에서 추운 겨울날 톱밥난로 앞에서 연착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풍경이다.

심지어 시와 내용도 닮아있네.


설마 저명한 소설가가 시인을 표절했을 리는 없고. 검색을 해보니 시인의 ’ 시‘에서 글을 쓸 수 있는 모티브를 얻었다고 했다네. 그럼 그렇지.


꼬맹이에게 ‘사평역‘이란 역이 사실은 없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시를 읽고 나서 실제 사평역을 보고 싶어서 이곳을 찾아 헤맨 ’ 김훈‘이란 작가가 있다. 결국엔 못 찾고 돌아와서 시인에게 물었더니, 자기가 지어낸 역이름이라고 해서 허탈해했다더라 고 이야기해 주었다.


요사이 아비에 대한 의심이 많아져서 사평역을 찾아보더니, “에이 또 뻥치시네”하면서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보여준다. “어, 사평역이 있네”


여기 사평역엔 추운 겨울날 쓸 수 있는 톱밥난로도 없고, 시골장터를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아지매도 없고, 돈을 훔쳐 도망간 여자를 찾으러 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서울아줌마도 없잖어.


“아. 몰라. 좌우간 사평역은 있다니깐”


에잇, 이 놈의 지하철공사는 어째서 사평역이란 이름을 써버렸을까. 뭔가 도둑을 맞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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