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농담덩어리와 같은 소설
새벽에 내 귓가를 맴도는 모기 때문에 일찍 잠에서 깼다. 곤히 잠든 상태였다면 앵앵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텐데, REM SLEEP 상태였던가 보다. 살짝 깨었는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파리는 참을 만 한데, 모기는 참지 못하겠다. 에잇, 이 놈의 모기생퀴.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그냥 거실로 나와서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들었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타이밍이 있는 것처럼, 책 읽기에도 그런 게 있는가 보다. 전에 읽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였던 내용들이 갑자기 '어, 이것 봐라'하는 생각이 들면서 의미 혹은 색다른 재미로 다가오는 뭐 그런. 아무튼 오늘 새벽이 그랬다.
오늘 아침 집어든 책은 2012년에 출간된 책이다. 대부분 책의 운명이 그러하듯이 이 책 역시 초판의 벽을 넘지 못했던 거 같다. 요사이 출간되었으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초판으로 끝나는 비극은 없었을 테고, 현 세태에 대한 조롱과 풍자로 가득 찬 희대의 B급 명작으로 남았을 텐데 몹시 아쉽다.
방사능으로 인하여 코가 없는 상태로 출생한 기형아 Y의 일생을 추적한 이야기이니 딱 작금의 사태를 조롱하는 글로 등극하게 되고, 작가는 기시다 땡큐, 서그여리 땡큐 하면서 절을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말고. 이야기의 형식은 가히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데, 기형아 Y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신문, 잡지의 기사 따위를 모아, 가로세로로 얽어내어 전체 이야기를 직조한 것처럼 구성하였다. 하도 절묘하게 짜깁기를 해서 자칫 기사스크랩을 읽고 있는 듯한 환각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그 절묘한 비틀기 신공에는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환경으로 기형아가 발생했다고 하면, 소설의 허구성과 상관없이 악다구리를 퍼부어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된다. 원래 이런 기형의 발생은 아마 우리 세대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걸. 우리 다음세대도 무사할지 몰라. 아무튼 세대를 거치면서 방사능은 축적이 될 것이고, 어느 순간 유전자 변형이 확 일어나게 될지 모르지. 가히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라 할 수 있겠지.
이런 일련의 상황이 ‘진화’로 기록될지 혹은 ‘멸종’으로 기록될지는 아무도 몰라. 포유류의 번성이 혜성충돌로 인한 급격한 환경변화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하는 과학자들도 있으니, 오직 '신'만이 알 수 있겠지. 만약 ‘그’가 있다면 말이야. 그러니 너무 떠들어대지 말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부지런히 방사능을 우리 몸에 축적해서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겠다. 인류가 모두 엑스맨이 되는 그날을 위하여.(그냥 헛소리)
각설하고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소설이 취한 구성의 참신함은 도리어 '이게 도대체 뭐지?' 하는 당혹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감정과는 별개로 책의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고 처음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을 보니, 아마도 지난번엔 읽다가 집어치워뒀던 것이 분명하다.
기사내용은 100% '구라'다. 그것도 아주 그럴듯한 ‘구라’다. 이 작가의 다른 책을 한번 읽었던 적이 있다. 그 책에서 아주 근사하게 ‘책을 읽는 이유’를 설파하였다. 눈이 번쩍 뜨이는 멋진 글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 책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이 놈의 기억력) 작가는 이 책에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아마도). 그의 글에 감명을 받은 나는 ‘아아, 이 작가의 책을 좀 더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솟구쳐 이 책을 구했는데, 그때는 실망했고, 지금은 감탄을 하고 있다. 과연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구나.
점심식사 후 카페에서 우아하게 차를 한 잔 하며,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카페사장님이 재미있냐며 제목을 물었다. 내 입으로 대답하기 좀 거시기해서 책 표지를 보여주었더니, 인상을 쓰시며 나를 다시 쳐다보신다.
제목이 맘에 들지 않으신 듯하다.
<Y 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
거짓말 아니고 이게 진짜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