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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Nov 15. 2024

준비 없이 떠난 여행

포르투갈을 다녀오긴 했는데

리스본에서부터 포르투까지 렌터카로 이동하던 중이었나 아니었나. 암튼 지금사진님이 무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스피커에서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나옵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하느냐. 설렁설렁 대충 하면서 살아야지, 매번 열심히 하면 힘들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자기가 이렇게 오랫동안 라디오 디제이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설렁설렁 이었다는 겁니다. 이 걸 듣는 순간 이번 여행의 성격이 정해졌습니다.     


‘대충 하는 여행’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런 전조는 이미 준비단계에서부터 나타났었습니다. 어느 날 모여서 비행편을 예약하고 각자 괜찮아 보이는 숙소를 찾아서 정한 것으로 그냥 여행계획을 끝냈거든요. 비행편과 숙소 그리고 렌터카. 이걸로 여행준비 끝.


농담 삼아 ‘그럼 이제 공항에서 만나면 되겠네요’ 했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공항에서 출발하는 말 만났거든요. 동행자분들은 어찌했는지 모르겠지만 여행지에 대한 정보라고는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어디 가고 싶은지 몇 가지 알려달라는 말에 대충 인터넷을 뒤져서 몇 군데 정도 찾았지만 실제 가지는 않았습니다. 딱 한 가지 하고 싶던 것은 하루정도 트레킹을 하는 것이었는데, 날씨가 협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여행하던 2주일 동안 10일 정도는 비를 만났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정도의 비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비도 오는데 구질하고 귀찮아졌던 게지요     


아침에 일어나면 지금사진에게 묻습니다.

‘오늘은 어디로 가나요?’

다음은 지마음에게 묻습니다.

‘오늘은 어디서 점심 먹나요?’     


둘이서 전날 열심히 폭풍검색을 해두었을 거라 믿고 그냥 따라다녔습니다. 기록도 하지 않고 기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좋은 풍경이 나오면 ‘여기 좋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이 집이 맛집이네’ 추임새는 넣어 주었지만, 식당 이름은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조개찜, 문어요리, 해물죽, 스테이크 모두 맛이 좋았습니다.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녁을 사 먹고 숙소로 돌아올 때도 있었지만, 숙소에서 해먹은 날도 많았습니다. 수제비도 만들어 먹고, 라비올리를 사다가 만둣국 비슷하게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우리 모두 와인과 맥주 애호가인지라 차를 가지고 나간 날은 무조건 저녁은 숙소에서 먹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마트구경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성당구경보다는 마트구경이 재미있지 않나요.     


와인이 진짜 저렴합니다. 3유로 정도면 맛이 근사한 와인을 구할 수 있습니다. 1유로 와인은 요리할 때 물 대신 사용할 정도로 호사를 누렸습니다. 맛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아서 바닥을 보지 못했습니다. 최소한 3유로 정도는 주고 와인을 마시자고 다짐 비슷한 걸 했지만, 뭔가 그럴싸해 보이는 1유로 와인을 몇 번 더 샀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때마다 역시나 하면서 실망을 했었구요.      


숙소이야기도 해야겠군요. 포르토와 리스본 숙소옆에는 축구 경기장이 있었습니다. 포르투갈 리그의 강팀이라고 하면 포르토, 벤피카, 스포르팅을 쳐줍니다. 이 세 팀이 돌아가면서 리그우승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포르토 숙소에서 보이는 축구장을 보자마자 우리 모두 포르토의 열성팬이 되었습니다. 경기가 있던 날 표를 구하지 못하고 숙소에서 전광판을 보면서 맥주와 와인을 마셨더랬습니다.     


포르토에서 파티마, 아베이루, 나자레를 거쳐 리스본 숙소로 왔는데, 어쩌나! 이곳은 바로 벤피카의 홈구장옆입니다. 손절을 하는 것이 전광석화와 같은 우리. 벤피카의 붉은 피가 우리에게 흐르고 있다는 정신으로 벤피카 구장투어도 하고 공식 상점에서 붉은색 단복도 똑같이 사서 입고 우리끼리 멋지다면서 사진도 찍고 아침도 먹으러 가고 즐겁게 놀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국에 와서 보니 해병대 츄리닝 삘이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집 딸아이 한마디 합니다.      


‘아빠, 그 옷 너무 구려요’     


지금사진은 혼자서 사진을 열심히 찍으러 갑니다. 장노출을 위하여 삼각대에 대포같이 생긴 카메라까지 챙겨서 휘적휘적 갑니다. 남은 우리는 그냥 차 마시고 과자 까먹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쉬고 싶으면 아무 데나 앉아서 쉬곤 했습니다. 마무리를 하고 돌아오는 지금사진에게 뭐 좋은 사진 건진 게 있냐고 물어보면 언제나 한결같은 대답은      


‘별로예요’     


이 말이 재미가 있어서 여행하는 내내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이거 어때요? 별로예요.

여기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서 그런가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요. 별로예요. 다른 데 가요.

1유로 와인을 맛보고 나서. 별로예요

아무 말도 아닌 말을 하면서 깔깔거리고 웃었습니다. 누가 보면 이 사람들 정상이 아닌데 했을걸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을 하고 다니는 게 이렇게 재미있다니까요.     


지마음은 이번 여행에서 약간 정신줄을 놓고 다닙니다. 혼자 흥에 겨워 팔랑거리며 다니질 않나, 길거리에서 음악만 들리면 흔들흔들. 으음 약간 거리를 두고 떨어져 다니고 싶었다는. 여행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가끔은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속마음을 털어놓게 될 때가 있습니다. 뭐 그런 기분이겠지요. 내가 이 녀석을 또 언제 만나겠나. 대나무 숲에서 속을 털어내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지마음은 나름대로 여행을 이렇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감정에 오롯이 집중하게 되는 그런 뭔가가 있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팔랑거리며 다니는 건 ‘별로예요.’     


정말 오랜만에 뭘 쓰려니까 급 피곤 해집니다. 이게 뭐라고. 대충 끝내고 또 생각이 떠오르면 설렁설렁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 게으른 사진설명 >

첫 번째 사진. 포르토와 맨유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강변의 호프집을 맨유원정 응원단이 점령을 하고 맥주파티를 하는데 전부 미쳤더군요.


두 번째 사진은 제이름이 연상되는 식당입니다.

으음…별로예요


마지막 사진은 벤피카 구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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