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경 Mar 22. 2024

응답 받지 못할 하늘을 향한 물음

영화 <사바하> 리뷰, 해석 /  오컬트, 스릴러 추천 / 장재현 감독




사바하 (SAVAHA : THE SIXTH FINGER, 2019)

"응답 받지 못할 하늘을 향한 물음"


개봉일 : 2019.02.02.

관람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미스터리, 스릴러

러닝타임 : 122분

감독 : 장재현

출연 : 이정재, 박정민, 이재인, 유지태, 정진영, 이다윗, 진선규, 지승헌, 타나카 민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X


종교에선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누군가가 인간 세계를 창조했다거나 어떠한 세계를 다스리고 있다고, 인간을 지켜보거나 구원해 준다고 믿는다. 난 그들의 믿음을 존중할 뿐, 공감하지 못한다. 나는 구원을 믿지 않는다. ‘구원? 그런 건 없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 과연 구원이란 게 존재하는지, 나를 구원해 줄 존재가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장재현 감독님의 영화 중 <사바하>를 가장 좋아한다. 영화에 담겨있는 악한 것과 인간을 뛰어넘은 것, 삶을 이어가기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싸우는 인간들, 그리고 구원과 초월, 선과 악에 관한 물음. 나는 날이 차가워질 때면 다시 이 영화를 꺼내보고 답 없는 물음을 반복하곤 한다.


장재현 감독님의 영화들은 겉으론 공포 영화 같아 보이기도 하고, 악령, 종교에 관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오래 들여다보면 그의 영화는 ‘인간의 삶 또는 신비로운 존재에게 던지는 물음’임을 알 수 있다. <검은 사제들>은 전자에 <사바하>는 후자에 가깝다.



<사바하>를 처음 본건 겨울이 다 끝나갈 즈음이었다.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처음 <사바하>를 봤을 때 든 생각은 하나였다.


“무슨 얘긴 진 정확히 모르겠는데 엄청 슬프다…”

종교적 메시지와 숨겨진 뜻 같은 건 하나도 해석할 수 없었지만 허망함과 슬픔, 무력함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사바하>는 종교 비리 전문가 박 목사가 사슴 동산이라는 신흥 종교를 조사하던 중 접하게 된 사건과 그 뒤의 실체에 접근하는 과정을 그린다.


종교 문제 연구소의 박 목사는 이상한 신흥 종교들을 파헤치며 돈을 버는 사람이다. 믿음만큼이나 경제적 후원이 중요하다며 커다란 스크린에 후원계좌를 띄우는 그의 모습은 속물적이면서도 가벼워 보인다.


박 목사가 이번 목표로 잡은 신흥 종교는 바로 ‘사슴 동산’이다. 그는 사슴 동산을 건드릴 명목을 찾기 위해 법당 근처를 맴돌다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찾으러 왔다는 형사와 마주친다. 박 목사는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더 큰 건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갖고 본격적으로 사슴 동산에 매달린다. 박 목사는 사슴 동산의 경전, 경전의 집필자이자 교주, 그가 후원했던 단체와 아이들을 조사하며 그것들이 모두 인근에서 벌어진 여아 살인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걸 눈치챈다. 박 목사가 사슴 동산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그 안에 숨어있던 새로운 인물과 과거가 하나씩 풀리며 이야기는 새롭게 가지를 뻗어나간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이것이 태어남으로써 저것이 태어나다.


동방교의 교주 재석은 미륵에 가까워진 자로 6개의 손가락과 늙지 않는 몸을 가졌다. 그는 과거 독립군을 돕기도 하고 사회 전반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었다. 일부 종교인들은 그를 스승이라 칭하며 존경하고 숭배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사회가 급격히 변하면서 불교에 대한 의식 또한 변하게 되고 재석은 동방교를 해체하고 모습을 감춘다. 이후 재석은 티베트 대승의 “100년 후 그가 태어난 바로 그곳에서 그를 해칠 천적이 태어난다.”라는 예언을 들은 이후 천적을 죽일 계획을 짜며 서서히 타락의 길을 걷는다. 재석은 한때 모든 걸 깨우친 미륵이었으나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욕심에 지배되어 죄 없는 99년생 여자아이들을 죽이는 악인이 된다.



재석의 천적은 금화의 쌍둥이 언니 ‘그것’이다. 금화의 다리를 갉아먹으며 자란 그것은 16년 동안 창고에 갇힌 채 죽지도 않고 살아있다. 흉측한 털가죽, 6개의 손, 소름 끼치는 목소리, 악의 기운을 가진 그것은 금화의 몸에 변화가 일어난 날, 털가죽을 벗고 부처 같은 모습으로 나한을 맞이한다. 그것은 미륵도 신도 아닌, 그저 재석에게 대항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재석이 어떻게 열반의 경지에 가까워졌고 그것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인간은 알 수 없다.  그저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악이 있으면 선이 있듯이, 재석이 있으니 재석의 천적이 태어난 것이다. 재석이 타락의 길을 걸었으니 굳이 구분하자면 그것은 선을 행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일지도?


세상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떠한 규칙에 따라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그저 존재할 뿐이다.



타락한 자와 용서받은 자


영화에서 해안 스님은 불교엔 악인이 없다고 말한다. <사바하>도 그렇다. 이 영화의 끝에 남는 건 선한 자와 악한 자라는 구분이 아닌 타락한 자와 용서받은 자라는 구분이다.


영화는 중반부까진 악마 같은 그것의 모습, 여아들을 죽이는 사천왕 나한의 모습, 그것을 지시한 재석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며 그들이 이 사건을 만든 악한 존재라는 느낌을 주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이 존재들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그것이 악마 같은 모습을 하고 초자연적인 힘으로 사람들을 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가 죽은 것은 전염병이었을 확률이 있으며 개들이 짖은 건 그저 인간이 아닌 낯선 존재에 대한 경계의 의미였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인간을 죽이거나 몸을 취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에게 접근하는 인간을 쫓아낸 이유는 그저 천적인 재석이 자신을 찾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고 금화의 다리를 갉아먹은 것 또한 금화를 세상에 많이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재석을 견제하고, 그가 아이들을 죽이는 걸 막는 것이다.



아버지를 죽인 소년수 광목(나한의 전 이름)은 박 목사의 누나가 말했듯 어떠한 뻔한 상황(어머니가 접대원, 아버지는 정확지 않지만 아마도 포주일 것)에 노출되어 자랐다. 타락한 자였던 광목은 재석이 벗어준 옷을 입고 나한이라는 이름을 받는 순간 용서받은 자이자 그의 군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나한은 여아들을 죽이는 악행을 저질렀지만 최후엔 그것의 부름을 받고 재석을 죽인 후 삶을 마감한다.


재석은 여아 살인사건을 지시한 악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도 열반의 경지에 오른 종교인으로서의 과거, 사회를 위해 공헌한 선한 과거가 있다.


그것, 나한, 재석은 모두 악한 면과 선한 면을 갖고 있다. 어느 부분을 보느냐에 따라 세 사람은 선한 자도 악한 자도 될 수 있다.



극 중에서 해안 스님은 불교에선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 선과 악은 정확히 나눌 수 없는 개념이다. 하지만 <사바하>에선 이 인물들을 나눌 수 있는 다른 개념이 존재한다. 그건 바로 ‘스스로 악을 택한 자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자’, ‘타락한 자와 용서받은 자’다.


그것과 타고난 운명 때문에 악한 것으로 취급받는다. 나한은 재석의 말에 홀려 살인을 행하며 살아간다. 이 둘은 스스로 악을 택하지 않았다는 것과 사명을 다하고 죽기 전에 누군가에게 용서를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야기에서 누군가에게 겉옷을 벗어주는 행위는 옷에 담긴 온기를 나누고 그를 이해, 용서, 포용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것은 금화의 가디건을 입고, 나한은 박 목사의 코트에 감싸진 채로 죽는다.


반대로 스스로 타락의 길을 걷고 마지막까지 나한과 그것을 해하려 했던 재석은 누구의 용서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옷을 입고 불속에서 타죽는다.



아이러니한 기쁨


영화에서도 직접 언급되지만 재석이 행한 학살 성경에 나오는 헤롯왕의 영아 학살 전설과 닮은 구석이 있다. 헤롯왕은 원래 아스켈론 지방의 핏줄이지만 왕으로서 예루살렘의 통치권을 갖게 된다. 헤롯왕은 예언서에 기록된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메시아에 의해 자신의 왕위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헤롯왕은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 예언된 지역 베들레헴과 그 부근의 영아들을 모두 죽이라는 지시를 내린다. 하지만 몸을 숨긴 마리아와 예수는 목숨을 부지했고 예수가 태어난 그날, 베들레헴 근방의 죄 없는 아이들이 죽었다고 한다.


상당히 아이러니한 일이다. 예수가 탄생하는 기쁜 순간엔 근방의 수많은 아이들이 죽었고, 종교인들의 등불이 되었던 재석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선 재석의 고향에서 태어난 99년생 여아들이 죽어야 한다. 두 사람 모두 종교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탄생 뒤에서 죽어간 수십 명의 생명보다 그들의 생명이 더 가치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두 사람의 탄생도 수많은 죽음도 이미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두 사람의 탄생을 마냥 칭송하고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실의 수많은 사람들과 <사바하> 속 인물들이 내 삶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에게 부여받은 사명을 이루기 처절하게 살아가고, 죽고, 또 악을 행하는 동안 전지전능한 존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이 모든 걸 보고 듣고 있다면, 인간을 용서하고 구원할 능력을 갖고 있다면 왜 개입하지 않는 걸까? 수많은 인간들이 신의 뜻을 찾고 울부짖고, 매년 그의 탄신일을 기념하고 있는데, 왜 그는 어떤 것도 알려주지 않는 걸까.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kyung769/

https://www.instagram.com/movie_read_together/

블로그 : https://blog.naver.com/hkyung769

유튜브 : https://youtube.com/channel/UCTvKly8P5eMpkOPVuF63lwA

매거진의 이전글 1편 보다 단단하고 빠르게. 더욱 굳건해진 그들의 세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