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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Oct 20. 2024

간절함과 욕망을 품고 추락하는 남자의 궤적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리뷰 후기 해석 / 기예르모 델 토로 스릴러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간절한 바람을 담은 스탠의 말버릇

- 스탠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추락의 연료, 술

- 클렘의 수집품 '에녹'의 의미

나이트메어 앨리 (Nightmare Alley, 2022)

간절함과 욕망을 품고 추락하는 남자의 궤적

개봉일 : 2022.02.23.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범죄, 드라마, 스릴러

러닝타임 : 150분

감독 : 기예르모 델 토로

출연 : 브래들리 쿠퍼, 케이트 블란쳇, 토니 콜렛, 윌렘 대포, 리차드 젠킨스, 루니 마라, 론 펄먼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나이트메어 앨리>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직전 필모그래피인 <셰이프 오브 워터>와 대척점에 있는 영화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인간의 추한 욕망, 불안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나이트메어 앨리>는 무거운 욕망을 안고 스스로 깊이 침몰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이야기는 주인공 스탠이 자신의 집에 스스로 불을 지르고 도망치는 모습부터 시작된다. 집이 불타고 스탠에게 남은 건 지금 걸치고 있는 옷과 라디오뿐이다. 그는 정처 없이 떠돌다 어둠 속에서 비현실적으로 빛나고 있는 한 유랑극단의 카니발 안으로 들어간다. 갈 곳이 없던 그는 거처를 해결할 겸 임시로 일을 시작한다. 극단의 단장인 클렘은 스탠과 그의 라디오가 마음에 들었는지 나쁘지 않은 보수를 제안한다. 스탠은 클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유랑 극단의 일원이 된다.

스탠은 유랑 극단에 머물며 밑바닥에 내려앉은 기인과 그 위를 밟고 올라선 다양한 이들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술을 배우고 유랑 극단을 떠나 큰 명성과 부를 축적해간다. 그 기술을 알려준 극단원들의 경고를 무시한 채로.


가족도 집도 없는 떠돌이 인생이라는 좁은 골목길(alley)에 서있던 스탠은 그곳을 벗어날 탈출로를 찾아 달린다. 하지만 그가 머물고 있는 현실은 쉽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지 않고 그를 점점 더 좁고 끔찍한 길로 몰아넣는다. 욕망에 눈이 먼 스탠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길로 스스로 뛰어든다.

영화 속 세계관과 감독이 만들어낸 스탠과 몇 인물들의 도덕성은 잔인할 만큼 절망적이다. 그래서 스탠이 아버지와 유랑극단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길 때 목표를 향해 상승할 때 마침내 목표를 쟁취했을 때까지. 내내 허상을 좇는듯한 불안함만 가득하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절대'. 강한 부정이 말버릇인 스탠


스탠의 주변엔 수많은 눈들이 있고 그들은 스탠에게 위험을 경고하거나 그의 운명을 예지해준다.

피트는 공연 기술을 배우는 스탠에게 절대 심령쇼를 하지 말라, 거짓은 희망이 아니다.라는 경고를 했고 릴리스 박사는 스탠을 이용하면서도 몸에 남은 흉터를 보여주며 사람을 함부로 건드는 건 위험하다는 말을 해준다. 지나는 타로를 통해 스탠의 운명을 예지해주었는데, 스탠이 뽑은 타로카드는 추락, 급박한 선택, 매달린 남자였다. 이 정도로 많은 경고와 충고를 받았다면 깊이 깨닫진 못해도 적어도 조심은 할만한데 스탠은 '절대' 그럴 일 없다, 타로 결과 정도는 내가 뒤집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절대'는 스탠의 말버릇이다. 이는 어리석은 확신과 자존심이 깃든 말버릇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스탠이 '절대'를 자기최면 또는 불안감을 해소하는 기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릴리스 앞에선 애써 숨겼지만 사실 스탠은 평생 아버지를 증오했다. 그의 아버지는 술에 찌들어 사는 사람이었고 스탠은 그런 아버지에게서 풍겨오는 술 냄새를 싫어했다. 시간이 지나 마침내 병든 아버지의 몸이 무력해진 순간, 스탠은 아버지를 해하고 악몽 같았던 집을 벗어난다.

아버지는 죽었지만 핏줄은 쉽게 끊어낼 수 없다. 스탠도 이를 알고 있었을거다. 그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 위해 술을 입에 대지 않았고 허름한 집에 살았던 과거를 지우기 위해 더 많은 부와 명성을 쌓으려 노력한다. 타인이 스탠의 추락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야기 할 때, 그가 '절대' 추락하지 않을 것이고, '절대'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 단호하게 말했던 건 단순한 자만이 아닌 간절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스탠과 나이 든 남자들의 관계
스탠이 가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스탠의 이야기를 듣던 릴리스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나이 든 남자들과 관계가 독특하네요."

릴리스가 말한 이 독특한 관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관계가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아들이 아버지에겐 적대감을 어머니에겐 애착을 갖게 되는 감정을 뜻한다.


스탠은 극 중에서 세 명의 나이 든 남자, 즉 세 명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아버지를 만난다. 첫 번째는 그의 친아버지, 두 번째는 기술을 알려준 피트, 세 번째는 경제, 사회적 도움을 받은 킴벌 판사. 친아버지는 스탠이 사고를 위장해 고의로 살해했고 피트는 메틸알코올을 갖다 주는 실수로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킴벌 판사의 경우엔 '아들을 곧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심령쇼를 하며 판사의 아내에게 믿음을 주는 바람에 그녀의 아내가 판사에게 총을 쏘게 만들었다. 나이 든 남자들은 각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 스탠에 의해 죽는다. 심지어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있던 에즈라 또한 스탠에게 죽는다.


그리고 극 중엔 그가 애착 관계를 형성한 세 여자, 즉 세 어머니를 의미하는 인물도 등장하는데 첫 번째는 유랑극단에서 만난 지나, 두 번째는 몰리, 세 번째는 릴리스 박사다. 세 사람은 모두 직, 간접적으로 스탠과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

추락의 연료, 술


극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는 건 바로 '술'이다. 영화는 술에 찌든 스탠의 아버지가 아들의 손에 죽는 장면으로 시작해 술을 손에 들고 극단에 찾아가는 스탠의 모습으로 끝난다. 누군가 죽거나 무너지는 순간엔 술이 빠지지 않는다.

스탠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사람 구실을 하지 못했고 오랜 시간 아들 스탠에게 증오를 산 그는 아들의 손에 죽는다. 피트는 스탠이 잘못 갖다 준 메틸알코올을 마시고 죽었고, 스탠은 에즈라 저택에 가기 전 시점부터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변의 나이 든 남자들이 다 죽은 후 남겨진 스탠은 그들과 똑같이 술을 손에 들고 저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술로 시작된 추락의 끝은 극단의 기인이 되는 것이다. 스탠은 머리에 구더기가 낀 기인을 유기하고 클렘과 식사를 하며 기인을 어떻게 만드는지 묻는다. 클렘은 저 어디 골목에 누워있는 술과 아편에 찌든 이를 데려와 술, 아편으로 다시 길들이며 기인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이때 스탠은 그게 본인의 일이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을거다. 스탠은 도망친 기인을 붙잡는 극단원에서 또 다른 극단의 기인이 된다. 그가 뽑았던 타로카드처럼 그의 운명은 완전 뒤집히고 만다.

클렘의 수집품 '에녹'의 의미


클렘의 방엔 희귀한 물건들이 많다. 어미를 죽이고 태어났다는 '에녹'은 그것들 사이에서도 클렘이 가장 아끼는 수집품이다.

에녹의 존재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구원받은 자 또는 술에 절여져 있는 죽은 자. 즉 에녹은 스탠이 원했던 미래와 현재의 스탠이 마주한 현실을 의미한다.


성경엔 에녹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나온다. 에녹은 아담의 7대손으로 아담의 아들 중 유일하게 죽었다는 기록 대신 '하나님께서 데려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인물이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중 유일하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즉 구원을 받은 인물이라는 뜻이다. 스탠은 자신의 인생이 누군가에 의해 구원받기를, 안된다면 스스로라도 자신을 구원할 수 있기를 바라며 쇼를 이어간다. 하지만 구원은 없었고 스탠이 마지막으로 마주한 현실은 이전보다 훨씬 나빠져있다.


앞서 언급했듯 극 중에서 술은 죽음과 관련이 있다. 에녹은 메틸알코올(먹을 수 없는 술)이 가득한 병안에 담겨있는 클렘의 수집품이다. 엔딩신에서 스탠은 손에 술을 들고 에녹을 사들인 다른 극단장에게 찾아가 그의 새로운 수집품이자 쇼의 도구인 기인이 되겠다고 말한다. 스탠은 성경 속 에녹처럼 구원받길 바랐으나 과도한 욕심으로 스스로를 죽이고 클렘의 에녹처럼 극단장의 자랑스러운 수집품이 되는 최후를 맞이한다.


스탠은 카니발을 통해 현실의 탈출구를 찾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곳은 새로운 악몽의 시작점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타인을 짓밟는 그 세상 속에서 구원을 찾으려 했던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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