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 그리고 카페
여전히 불안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른 채 매일을 어떻게든 걸어가던 20대의 끝, 나는 서울 동쪽 끝이자 8호선의 종점이기도 한 암사동 골목 한 모퉁이에 heenect(히넥트)란 이름을 가진 작은 카페를 차렸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쩌다 카페를 차렸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인생은 가끔 정말 의외의 곳으로 우릴 데려간다. 아무도 등 떠밀지 않았지만 뭔가에 떠밀리듯 나는 공간을 꾸리고 차렸다. 정신 차려보니 난 암사동 골목 한 모퉁이의 주인이 되어 있었고, 손님들은 나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때 내 나이는 불과 또는 무려 스물아홉이었다.
내 인생 계획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예상외의 장소였던 그곳에서 난 많이 웃었고, 다정하고 따뜻한 날들을 보냈다. 물론 이따금씩 울었고 외로웠고 힘든 나날들도 있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그 작은 공간은 내게 좋은 추억과 그렇지 못한 기억을 함께 안겨주었다. 당시엔 그랬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모두 좋은 기억인 듯싶다. 인생은 뭐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니까. 그만큼 내가 그곳, 그 시절에서 멀어졌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이따금씩 다시 카페를 차릴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다.
"아니. 절대"
절대란 말은 절대 쓰는 것이 아니지만 나는 '절대'란 말에 내 마음의 단호함을 담아 거절의 의사를 표한다.
단호한 대답을 하면서도 점점 좋은 기억들만 남아 가는 상황에서 나는 언젠가 카페 또는 내 공간을 지키고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인간은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