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계획하지 않은 일들도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까
하려던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좌절되는 때를 조심해야 한다. 그런 때엔 어김없이 조급해지기 마련이니까.
엄마가 내게 카페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던 날 저녁, 나는 그 어떤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자영업으로 우리를 길러온 엄마는 장사라는 것에 꽤 긍정적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리 긍정적인 건 아니었던 듯 하지만, 엄마는 방황하는 딸내미를 어떻게든 정착시켜보려 했던 것 같다) 일이 잘 풀리지 않던 때이다 보니 엄마와 하는 이야기가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가능성을 봤던 건지, 어느새 마음속엔 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싹텄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엔 될 일이다 싶으면 머릿속에 자연스레 정리가 되면서 그림이 그려지는데 그때가 그랬다. 엄마와 대화를 나누며 해보겠다는 마음이 싹텄고 내 머릿속엔 대략적인 가게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직 가게가 될 공간을 보지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는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다는 계획들이 하나둘씩 자리 잡았다.
그래서 바로 다음 날 엄마가 친구분께 연락을 했고, 난 홀로 공간을 보러 갔다. 가게는 개포동 골목 한편에 있는 아담한 공간이었다.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예전의 '캔모아'와 어떤 1세대 커피 프랜차이즈를 섞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공간의 분위기를 아예 뒤집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둘러보는 내내 변화 후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그래서 가게를 다 둘러보곤 바로 언니네로 향했다. 당시의 나는 마음이 시끄럽거나 혼란스러울 땐 언니네에 가서 쉬면서 생각들과 마음을 정리하곤 했는데, 그렇게 언니네 집에 머물며 여러 가지 사항들을 구체화했던 기억이 난다. 다양한 분야에 해박한 형부는 인테리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 내게 유용한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덕분에 인테리어부터 시작해 메뉴, 그리고 내게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었다.
구체화가 거의 끝나고 계약을 이틀 앞둔 날, 집으로 돌아와 등기부등본을 확인했다. 언니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게 보증금이 크진 않아도 꼭 건물에 융자가 얼마나 있는지는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친구네 건물이라 믿을 수 있다고 했지만 빼꼼이인 큰 언니가 그런 말에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무조건 확인해보고 말해달라고 내게 신신당부했기에 집으로 돌아와 등기부등본을 확인했는데 이럴 수가, 생각보다 융자가 많았다. 독립도 해보지 않았던 나는 부동산 서류와 거의 일면식 없었는데 그런 내가 봐도 빚이 있다는 것, 아니 많다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언니에게 보여주니 아무래도 안 하는 게 낫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엄마는 여전히 친구라 믿을 수 있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언니는 단호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라고. 친구면 말하기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준비한 시간이 아깝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미리 알아서 다행이니 하지 말자고 했다.
알게 모르게 부풀었던 기대감은 그렇게 쪼그라들었다. 극 N인 나는 이미 문전성시를 이루는 가게에서 일하는 내 모습까지 상상했건만 현실의 벽은 어쩔 수 없었다. 무모한 도전을 하기에 내겐 경험, 직감, 자신감 모든 것이 부족했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럼에도 해보겠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음에도 나를 잠시나마 설레게 했던 나의 카페 창업은 거기서 좌절되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