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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nect Oct 30. 2020

제주로 떠납니다

제주로의 이주를 준비하는 마음

유독 힘들고 지치게 느껴졌던 2020년을 2달여 남긴 11월, 나는 홀로 제주에 간다. 여행이 아니라 살아보러. 문득 멋진 브랜드의 캠페인 문구가 생각난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제주에 가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리고 혼자 가게 된 이유는 또 이야기가 길다. 그 여러 가지를 모두 얘기하기엔 지루하기도 하고 머리가 아파오기도 해서 나는 주변인들에게 제주에 가게 된 이유를 다소 간소하게 전했다.

"그냥 제주로 가게 됐어"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2살에 서울로 온 나는 초등학생 시절 3년여를 제외하고 늘 수도권에서 살았다. 그렇기에 내가 기억하는 과거 대부분의 장소는 서울이다. 지금은 경기도에 살고 있는데 수도권이라는 이름 안에 경기도와 서울이 함께 묶여서인지 나는 여전히 서울에 사는 기분이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면 어느 동네에 살게 될지에 대해 생각할 때도 말 그대로 나는 도시가 아닌 동네를 생각했다. 도시는 당연히 수도권일 테니까. 나에게 수도권은 그만큼 당연한 터전이다.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의 삶을 와 닿도록 떠올려 본 적은 없다. 리틀 포레스트를 보며 귀농귀촌에 대한 로망을 끌어올린 적이 있지만 극 중 혜원이 벌레를 아무렇지도 않게 잡는 모습을 보며 나는 로망을 고이 접어 마음 깊숙한 곳에 넣어뒀다.


제주에서의 삶은 과거 카페를 오픈할 때만큼이나 급격하게 결정되었다. 급격한 결정과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의 생활은 그저 막연했기에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지난 주말 짐을 싸며 어렴풋이 실감했다. 아마 완전한 실감은 제주에 가고서도 몇 주가 흘러야 가능하겠지. (그때는 실감보다는 체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테지만) 30여 년 간 늘 부모님과 함께 지내던 내가 처음으로 이동하게 된 거처가 하필 제주라 두렵기도 하고 한 켠으로는 제주이기에 설레기도 한다. 사실 결정에 있어 두려운 마음이 없던 건 아니다. 오히려 한창 두려운 마음이 커지는 와중에 나는 제주행을 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나를 새로운 곳에 놓아보고 싶어서. 이 결심이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는 알 수 없지만. 올해를 꽤 힘들게 지내온 나에게는 새로운 환경이 절실히 필요했다.




제주로 가는 날은 정했지만 아직 돌아오는 일정은 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잘 적응하지 못하면 금방 돌아오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버텨보고 이겨보고 싶은 마음이다. 4년 전쯤 카페를 오픈하는 일이 급작스럽게 결정되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지 못했던 나를 후회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만큼이나 급격한 결정으로 제주에 가게 된 나는 그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제주의 삶에 대해 열심히 찾아보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제주에 지인이 따로 없기에 나에게 가장 많은 정보를 일러주는 것은 유튜브다.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수많은 채널에서 소상히 들려주는 제주 이야기는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안겨줬다.


유튜브가 들려주는 제주살이의 무시무시한 이야기 중 나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 벌레다. 제주에는 벌레가 정말 많다고 하는데 어떻게 집에 들어오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았다. (문장으로 다시 옮겨 쓰면서도 너무 무시무시한 것 같다) 얘기를 듣다 보니 왠지 제주의 벌레는 살충제로 죽지 않을 것 같다는 이상한 믿음까지 생겨버렸다. 아마 제주에 내려가 당분간은 벌레를 예의 주시하며, 벌레에 대처하는 유연함을 배워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벌써 두려운 마음이 가득하다. 부디 소리를 지르다 목이 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다음 우려는 편의시설과 택배다. 제주는 시내에 살지 않는 이상 편의시설이 집 근처에 있을 확률이 낮다고 한다. (사실인가 싶어 지도를 찾아봤는데 사실이었다. 그 사람들이 거짓말할 이유가 없지만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 '택배가 있잖아'라고 할 수 있지만 제주사람들에게 무료배송이란 존재하지 않으며(도서산간 지역 3,000원 추가가 내게 하는 말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배송 시기도 육지에서보다 1-2일 더 소요된다고 하니 마음을 정말 단단히 먹어야 될 듯하다. 수도권에서 모든 서비스를 당연한 듯 누리며 살았던 내가 과연 편의점 조차 5분 이상 걸어가야 하는 곳에서 그 불편함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오늘 주문해서 내일 상품을 받아보는 것이 당연하고 특히나 로켓의 속도로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저녁에 주문해도 다음 날 낮에 받아볼 수 있는 그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삶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꽤나 조급한 내 성격이 부디 잘 적응해서 조금 여유롭고 느린 삶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이상적인 그림을 꿈꾸고 있긴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쉽지만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아, 그리고 배달어플도 뒤쪽으로 미뤄뒀다. 이용할 일이 거의 없을 것 같아서.


그 외에도 걱정이 되는 점은 많다. 일단 연고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찾아올 외로움이라든지,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의 매서움이라든지, 가로등이 도시만큼 넉넉하지 않아 무서울 밤길이라든지, 섬 특유의 날씨라든지. 게다가 얼마나 살게 될지 모르기에 당분간은 차 없이 뚜벅이로 지낼 예정인데 제주의 여유로운 대중교통 시스템도 걱정이다. 5년 전쯤 신도시로 이사 오면서 주변에 단지가 거의 없어 주말이면 1시간에 1대 오는 버스가 다니던 시절, 길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내가 3분 여정도 길을 잃고 헤매던 그 절망감이 생각난다. 택시들도 들어가면 나오는 게 일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던 때였는데, 제주가 왠지 그때와 비슷할 것 같아서 벌써부터 불편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인생 처음으로 혼자 살아보는 것, 애월 해안도로에서의 러닝, 이따금씩 멋질 하늘과 일몰, 낮은 건물들과 바다, 여유로움 가득한 생활 등을 생각하면 기대감이 차오른다.




2020년을 2개월 앞두고 맞이하는 제주의 삶은 어떨까.

20대의 끝자락에 혼자 운영하던 카페를 접고 고요하게 살아온 내 삶이 다시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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