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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nect Nov 03. 2020

제주에 삽니다 - 제주의 밤과 바람 그리고 삼다수

제주살이 2일 차에 마주한 제주의 3가지 모습

어제 제주에 도착해 짐을 풀고 부지런히 정리를 했다. 아직 하루가 채 되지 않았지만 알게 된 제주의 모습 세 가지가 있다.

1. 제주의 밤은 정말 깜깜하다. (그래서 무섭다)
2. 제주는 바람이 정말 많이 분다.
3. 제주는 삼다수가 저렴하다 (편의점에서 2L가 1,000원)



제주의 밤은 정말 깜깜하다. 제주는 길에 가로등이 얼마 없고 인적도 드물다. (제주에서 몇 달을 운전하면 상향등 전문가가 된다는 얘기도 들었었다) 물론 제주 시내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지내는 애월읍의 제주는 그렇다. 5-8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편의점을 가는 길도 정말 무섭다. 어제 바로 그걸 깨닫고는 무조건 낮에 모든 걸 해결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급하지 않은 것은 모두 로켓이 배송해주는 그 시스템을 십분 활용해야지 마음먹었다; 그렇게 깜깜한 밤은 사실 영화에서나 봤던 밤이라 자꾸 무서운 생각이 따라와 더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콘텐츠를 소비할 때 분위기가 조금만 무섭게 느껴져도 보지 않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어쩌다 보게 된 무서운 장면들은 늘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때의 기분까지도 생생히. 어제 제주의 밤 길을 걸을 때 내가 본 몇 안 되는 영화의 장면들이 자꾸만 겹치고 무서워서 전화를 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특히 대학 때 과제 때문에 보았던 '살인의 추억'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이게 되었다. 단 하루 만에! 육지에서 지낼 땐 저녁에 귀가하는 것이 큰 부담이 아니었다. 물론 11시가 넘어가면 인적이 드물어져 조금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익숙한 동네이고, 곳곳에 cctv가 있어서인지 그 시간에 귀가하는 것이 큰 공포는 아니었는데 제주의 밤길은 그때와는 전혀 다르기에 나는 해가 떨어지는 6시, 아무리 늦어도 7시 전에는 꼭 집으로 들어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서 낮 동안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하고 집에서 저녁을 보낼 것이다. 제주에서 나의 밤은 정말 길 예정이다.



제주는 바람이 많이 불고 매섭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일까 온 몸으로 바람을 맞아내는 기분이다. 게다가 불규칙적으로 불어온다. 바람이 잠잠해지는가 하면 또 거세게 불어오고 그러다 금세 잠잠해지기를 반복한다. 거기에 구름이 많을 때면 해도 들쭉날쭉해서 '정말 제주는 변화무쌍하군!'하고 생각하게 된다. 오늘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사실 제주에 바람이 많다는 것은 학창 시절 삼다도를 배우며 알게 되었고, 제주에 오기 전 다양한 유튜브를 통해서도 익히 들었었다. 그렇지만 또 이걸 몸소 느끼는 것은 또 다른 것 같다. 갑자기 바람이 강하게 불 때는 정말 몸이 날아가버릴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물론 그럴 리 없지만) 모자를 쓰는 날엔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잡을 수 있도록 한 손을 늘 준비해둬야 한다. 심지어 챙이 넓은 벙거지류를 즐기는 나에겐 더더욱. 어디서 바람이 어떻게 불어올지 모르니까 언제든 손을 올려 모자를 잡을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아직은 제주의 바람이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곧, 언젠가 친해질 수 있겠지. 애월에서의 러닝을 꿈꾸던 내게 바람은 왠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다.


제주의 물가는 비싸다. 아무래도 관광도시라 그렇겠지만 아직까지 느낀 건 밥 값이 비싸다 정도? 음식점도 잘 찾으면 물론 저렴한 곳들도 있지만, 그리고 어떤 메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은 인당 12,000-15,000원 정도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돈을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돈을 쓰러 온 여행객의 입장에서는 12,000원-15,000원이 아주 큰 부담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제주에서 생활을 하게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확실히 매 끼니를 사 먹는 건 무리가 가는 일이다. 유튜브에서 봤을 때도 그랬고, 그냥 단순히 생각을 해봐도 어쨌든 운송비가 포함될 테니 가격이 조금 더 붙을 수밖에 없겠구나 싶긴 하다. 유튜브에서 많이 들었던 문장이 '제주는 삼다수 빼고 다 비쌉니다'였다. 그냥 웃으며 넘겼는데 편의점에서 삼다수 가격을 보고 놀랐다. 2L의 그 큰 물통이 1,000원 이라니(야호!) 서울 편의점에서는 작은 병이 850원인가 했던 것 같은데. 브레타 정수기를 사서 써볼까 했던 나는 삼다수를 매일 사서 먹는 거랑 가격이 비슷할 거 같아 조금 고민 중이다. 환경을 생각하면 매일 플라스틱을 배출하는 것보다는 필터도 수거해간다는 브레타가 나을 것 같기도 해서. 어쨌든 매일 플라스틱을 배출하는 것이 좋은 모습이 아니니까.




이렇게 나는 제주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곳이라 설레기도 하고 모든 장면을 찍어두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밤의 제주는 아주 깜깜하지만 어둠이 걷히고 난 제주는 아름답다. 높은 건물이 별로 없어 답답하지 않고 탁 트여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밤이 무서운만큼 낮을 더 부지런히 지내야 하는 점도 아직은 왠지 마음에 든다. 늘 느지막이 일어나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내 패턴을 조금 더 부지런하게 바꿔줄 테니까. 앞으로 나는 제주에서 어떤 것들을 더 발견하게 될까. 육지가 아닌 섬에서의 생활이 내게 가져다줄 건강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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