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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nect Nov 08. 2020

제주에 삽니다 - 여유가 조금 생겼습니다

제주가 내게 선물한 여유


제주에 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많은 것들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고, 새로워서 하루하루를 기분 좋게 보내고 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이런 새로움 들은 없이 익숙한 풍경과 일상이 이어지는 시간이 올 것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지금의 제주 생활은 참 좋다. 제주에서 지내며 새로이 알게 된 일들도 있고 조금은 익숙해져 가는 것도 있다. 오늘은 그중 제주가 내게 준 조금의 '여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여유', '쉼'이 중요하다는 건 늘 생각했던 거라 알고 있지만 그걸 삶 안에 넣고, 실행하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도시에서 지낼 때 나는 '여유를 가져야지', '여유롭게 지낼 거야'하며 이따금씩 다짐을 했지만 그 다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쩌다 행동으로 옮기게 되어도 여유 있는 시기는 잠깐일 뿐 얼마 못 가 원래의 여유 없는 나로 돌아가곤 했다. 그래서 나에겐 그런 데서 오는 괴리가 있었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도 있었다. 가지고 싶었지만 욕심을 내니 더 갖기 어려웠던 여유.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 자체가, 그런 욕심 자체가 여유와는 거리가 먼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그렇게 가지고 싶어 했던 여유를 제주에 와서는 어쩐지 거저 얻게 된 기분이다. 아직 '여유 그 자체야!'라고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도시에서 지낼 때보다는 조금 더 여유로워졌음을 느낀다. 제주에서 보는 너른 풍경들 덕분인지, 느리게 돌아가는 삶의 패턴 때문인지 어쨌든 나는 조금 여유로워졌다.


도시에선 늘 먹고 싶은 것이 끊임없이 생각났는데 제주에 온 뒤로는 그 빈도수가 훨씬 줄었다. 어쩌면 어차피 먹고 싶어도 못 먹으니 나의 내면이 자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주 먹고, 자주 생각나던 치킨, 떡볶이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 걸 깨닫고는 조금 놀랐다. 내가 도시에서 늘 먹고 싶어 했던 음식들은 어쩌면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채워지지 않는 것들을 다소 자극적인 음식들로 채우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제 햇빛이 쨍하게 내리쬐는 곳에서 한참을 앉아있어도 괜찮은 기분이다. 피부가 타면 어쩌지 하는 그런 걱정이 훨씬 줄어든 느낌이다. 도시에서도 제주에서도 똑같이 선크림은 챙겨 바르는데 내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 같다. 도시에선 햇볕이 괜히 싫고 피해야 할 대상처럼 느껴졌는데 제주에서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웨이팅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는 이제 웨이팅을 해도 괜찮은 기분이다. 웨이팅도 이제 그러려니~ 한다. 이건 버스 배차와도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제주는 버스 배차 간격이 정말 크다. 어떤 노선은 두 시간에 한 대가 오기도 한다. 그런 제주에서 나는 지금 뚜벅이로 지내고 있고 제주의 버스 시스템에 적응해가고 있다. 제주에서는 아직 꼭 시간 내에 해야만 하는 일이 없기에 배차가 커도 여유롭게 기다릴 수 있다. 너무 크면 택시를 부르지만 가끔 택시조차 부를 수 없는 곳이면 그냥 조금 걸어본다. 다른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으로 가거나 목적지를 조금 바꿔보기도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 스스로가 훨씬 유연해진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막 일주일 차 제주살이라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는 내 감정이 바뀔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제주가 참 좋고 고맙다. 걱정되는 일들을 뒤로하고 제주로 오며 기대했던 몸과 마음의 건강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늘 여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에게 제주는 여유를 주었다. 나는 제주에게 주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제주는 내게 한없이 많은 것들을 준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도 기대한다. 제주가 내게 또 어떤 것들을 선물해줄지. 제주 덕분에 일상이 조금은 선물 같아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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