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직장을 끝내 퇴사했다.
다음 거처를 정하지 않은 채 퇴사했고,
나는 이제 채용 시장 안에서도
제법 나이가 있는 축에 속했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은 내가 노력한다고 뒤엎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차치해 두고
일단은 리프레시를 목적으로 계획한 두 번의 여행을 떠났다.
첫 번째 여행은 휴양지인 푸꾸옥으로 떠나
마음껏 휴양을 즐겼다.
오직 ‘쉼’에만 초점을 맞춰 일정을 보냈다.
그렇게 충분히 쉰 첫 여행을 마친 뒤
곧이어 두 번째 여행지인 후쿠오카로 떠났다.
그렇게 떠난 후쿠오카 여행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점이 있었다.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 대체로
자신의 일에 대해 프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실제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단순히 파트타이머로 보이는 이들도
마치 자신의 가게인 것처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이곳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자신 있게 소개하며 서비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엔 뭐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으니
그저 ‘좋다’ 정도의 감정으로 여행을 이어갔다.
어느 곳을 가도 내가 마주한 직원들은
우왕좌왕하는 일이 없었다.(단순히 운이 좋았을지도)
무언가에 대해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이나
그들의 태도에서 ‘이 공간의 주인’이란 느낌을
확실히 받을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골목의 한 작은 빈티지샵이었다.
10평 정도의 공간에 그릇, 오브제 등이
적지 않게 채워진 공간이었다.
나무바닥 위로 오래되었지만 잘 관리된 집기들 사이로
주인의 취향이 그득하게 담긴 물건들을 구경하는 건
여느 때처럼 재밌었다.
먼저 나의 주된 관심사인 테이블웨어를 구경하다
사장님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카운터 근처까지 갔다.
그곳에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절로 떠오르는
양쪽으로 열리면서도 옆면이 튀어나오는 필통,
말굽자석, 못난이 인형, 저학년용 노트 등이 있었다.
앞서 구경했던 그릇들의 취향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재밌게 다 구경을 하고
구매할 물건을 골라 계산대로 갔다.
정중히 물건을 받은 사장님이 계산을 해주셨는데
갑자기 사장님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쓰리피스 수트를 입고 계셨다. 조금 놀랐다.
내가 뒤를 돌면 못난이 인형, 말굽자석 등
내가 초등학교 때 보던,
레트로 컨셉을 내세운 관광지 상점이나 호프집에서
볼 법한 오브제들이 놓여 있는데
이런 물건들이 놓인 이 공간의 주인은
쓰리피스 수트를 차려입고
정중한 태도로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계산 후 포장을 하고
내게 물건을 건네주는 과정도 굉장히 정중했는데
그 후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설 때
그 공간과 공간 안에 놓인 물건들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모든 물건들이 계산하기 전 보다 더 귀해보였고,
레트로 컨셉을 떠올릴 때의 가벼운 웃음보다는
소중한 추억과 취향이 담긴 귀한 물건으로 보였다.
그래서 원래도 조심스럽게 물건들을 살피는 편이지만
해당 빈티지 가게에서
유독 조심조심 가게의 물건들을 보게 되었던 건
분명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빈티지 상점과 사장님이 생각났다.
결국 내가 어떤 것을 다루고
어떤 환경에 놓여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가 더 중요하단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일의 관점으로 보면,
내가 어떤 직업으로 어디서 일하냐 보다
나의 일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건 곧 나를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빈티지샵 사장님의 정중한 태도를 보았을 때
그 안의 물건들이 더 귀해보였던 것처럼
내가 나를 귀하게 다뤄야
다른 사람도 나를 귀하게 다뤄주게 된다.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기억이 난다.
사장님이나 일하는 분들이 가게에 관심이 깊으면
그건 그분의 태도에서 이미 드러난다.
그래서 나도 그 가게 안에서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행동하게 되는 반면,
내가 들어왔는지 나갔는지도 관심이 없는 곳에선
나도 무심하게 행동하게 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통상적으로 말하는 귀한 직업을 가지고도
불평하고 툴툴거리며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면
그 직업은 천한 직업이 되는 거고,
모두가 천하다며 꺼리는 직업이라도
내가 정말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일하면
그 직업은 귀한 직업이 된다.
그저 동화나 도덕 책에 나올 법한
참 바른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내 경험을 빗대어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내가 하루 중 정말 많은 시간을 쏟고
생계를 이어감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 ‘일’이기 때문에
기왕이면 그것을 귀하게 다루며 일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물론 그런 내 모습을 본 다른 사람도
나의 일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 주는 일을 하고 싶다.
후쿠오카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내 커리어와는 무관하게,
퇴사 전 세운 계획은 밀어 두고,
스스로 존중할 수 있는 일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