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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nect Jan 17. 2021

제주에 삽니다 - 변화무쌍 제주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제주의 날씨


제주의 날씨는 정말 변화무쌍하다.

내가 육지에 살던 사람이라 섬의 날씨가 아직은 어색해서인지, 아니면 그저 다른 지역이어서인지, 또는 정말 제주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주의 날씨는 육지와는 확연히 다르다. 정말 시시각각 변한다. 내가 느낀 제주의 겨울은 중간이란 없다.




제주는 사실 겨울에도 꽤 포근한 날씨를 유지한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대부분이 영상을 유지하고 습도도 꽤 높은 편이라 비교적 포근하게 느껴진다. 물론 매서운 바람이 이 모든 것을 상쇄시키지만. 이번 겨울, 서울에는 매서운 한파와 엄청난 함박눈이 찾아왔다. 그즈음 제주의 날씨는 최저가 영하 3도였고 눈 예보도 있었다. 사실 내게 영하 3도는 놀라운 수치가 아니다. 영하 3도쯤은 서울에서 아주 추워지기 전에 겪는 온도였다. 그런데 제주에선 아마도 낯선 기온이었는지 긴급재난문자가 왔다. 한파가 찾아올 것이니 잘 대비해야 한다고. 그리고 많은 눈이 내릴 것이니 그 또한 대비해야 한다고. 영하 3도로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지만 몇십 년 만에 제주 공항 활주로에 빙판길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했다.


제주는 기온 자체가 많이 낮은 건 아니지만 바람이 많이 분다. 그리고 눈이 정말 많이 내린다. 더는 오면 안 될 것 같은데도, 더 올 수가 없을 것 같은데도 계속해서 눈이 내린다. 그리고 바람도 함께 매섭게 분다. 비가 올 때 바람이 같이 불면 나는 항상 같은 불평을 했었다. '아니 비만 오든지, 바람만 불든지 하나만 해!' 제주는 거의 모든 순간 눈과 바람이 동시에 찾아온다. 그래서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때때로 소리마저 무섭다. 시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 모두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날은 해가 쨍한데 눈이 내린다. 그리고 그 눈은 마치 스티로폼처럼 동그랗고 외투에서 마구 튕겨져 나간다. '아니 왠 갑자기 눈이야' 하고 있으면 갑자기 매서운 바람과 함께 스티로폼 눈들이(내가 지은 이름이다) 마구마구 내린다. 그러다가 한 3분쯤 지나면 스티로폼은 난데없이 사라지고 해가 쨍하고 비춘다. 그래서 '이제 괜찮겠군'하고 생각하며 걷다 보면 또 어느새 갑자기 하늘이 흐려진다. 그러다가 또 스티로폼이 내리다가 갑자기 햇살이 찾아온다. 스티로폼은 여전히 내리는데도. 처음엔 적응이 안돼서 날씨가 왜 이렇게 변덕인가, 왜 이렇게 오락가락인가 생각했다. '제주는 호랑이가 장가를 참 많이 가는구먼'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처음 눈이 올 땐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당황스럽고 어쩜 이렇게 중간이 없을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저 나도 눈이 내리는 것 같으면 모자를 쓰고 그렇지 않을 땐 모자를 벗고 걷는다. 제주에선 눈이 올 때 우산을 쓴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대부분 외투의 모자를 푹 눌러쓰고 걷는다. 물론 우산을 써야 할 정도로 내리는 날에는 대부분 고립되어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 (내가 외출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햇살 사이로 내리는 눈을 꽤 자연스럽게 바라본다. 그리고 하늘이 보내는 신호는 믿지 않는다. 내가 육지에서 쌓아온 데이터를 믿지 않는다. 파란 하늘과 하얗게 빛나는 구름이 보인다고 해서 눈이나 비가 끝났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 하늘은 그 하늘이고, 눈과 비는 언젠간 아니 조만간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그럴 때 내리는 눈이나 비는 아주 과격하진 않아서(물론 과격할 때도 있다) 옷이나 물건이 젖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크게 되진 않는다. 그냥 모자를 뒤집어쓴 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정도라.




오늘도 제주에는 눈이 왔다. 분명 예보에 비 표시가 있어 비 표시가 없는 시간대를 골라 외출을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일단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비가 아니었다. 비가 아닌 스티로폼 눈이 집을 나선 지 3분 후 마구 내리기 시작했고 나와 거리의 사람들은 말없이 모자를 뒤집어썼다. 신호등에서는 외투 모자를 뒤집어쓴 동지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햇살이 비췄고 나는 그 가운데 내리는 스티로폼 눈을 바라보았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런 제주의 겨울 날씨가 꽤 익숙해진 것 같다. 여전히 신기하기도 하고 예상하기 어렵긴 하지만 갑자기 눈이 내려면 '금방 그치겠지 뭐' 하고 말아 버린다. 제주에서 받아들이는 일을 점점 배워가는 것 같다. "대체 왜 그런 거야?" 하지 않고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일. 큰 배차의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를 마주하면서도 이제 나는 꽤나 평온할 수 있다. 육지에 있을 때는 되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되고 있는 기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궂은 날씨가 더 이상 애꿎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더는 오면 안될 것 같은데 계속 눈 내리는 제주


더는 오면 안될 것 같은데 계속 눈 내리는 제주 2


분명 파란하늘이 햇살이 느껴지는데도 여전히 눈 내리는 제주 (미세먼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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