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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nect Jan 31. 2021

제주에 삽니다 - 육지 뚜벅이가 바라본 제주 버스

귀여운 제주의 버스


"자차 없이 제주에서 생활하기는 너무 불편하잖아"

내가 제주에서 생활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이다.

물론, 자가용이 있으면 삶의 질이 훨씬 올라간다는 건 사실 제주에서만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적용되는 얘기가 아닐까.


나는 자가용 없이 제주에서 지내고 있다. 사실 면허는 작년 4월쯤에 땄는데 면허를 따면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나는 연습 도중에 고라니를 만났고, 강사님에게 정말 크게 혼났다. 근데 남은 거라곤 도로주행 시험뿐이어서 시험을 보고 떨어지면 다신 운전대 근처도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무튼 시험에 덜컥 붙어버리긴 했지만 도로는 역시 내게 무서운 곳이고 30여 년 넘게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기사님이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는 삶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물론 자가용을 구매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그래서 나는 제주에서 '당분간' 뚜벅이 생활을 결심했다. 그 '당분간'이 얼마나 길어지게 될지, 또는 급작스럽게 끝나버릴지는 나조차도 모르지만.




애월에서도 그랬고, 지금 지내고 있는 도심에서도 나는 주말마다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가보고 싶은 곳을 가곤 한다. 필요한 곳이라기보단 그냥 '여기 가볼까?' 하는 곳. 도심이 좋은 점은 필요한 것을 생각보다 금방 얻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들은 대부분 주변에서 충족할 수 있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온라인을 이용한다. 무튼 그래서 애월에서 지낼 때부터 버스를 타 왔던 나는 제주 버스의 귀여운 특징을 몇 가지 발견했다.


먼저, 제주 버스에는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 타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대개 캐리어를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와 같은 경우가 아니면 아마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자차를 이용하는 것 같다. 무튼 그래서인지 나는 그 틈에 가벼운 차림으로 들어서면 마치 나도 여행자가 되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조금 색다른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제주 버스 기사님들은 츤데레가 많다. 물론 조용히 노선을 따라 운행을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리에 금방 앉지 않거나 정류소에 다다르기도 전에 일어나면 기사님이 빽! 소리를 지르시곤 한다. 처음엔 그 빽! 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랐지만 지금은 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걱정해서 그런 것이란 걸. 왜냐면 빽 소리를 지른 후에는 늘 이런 말이 따라붙는다. "위험하구로!" 실제로 워딩이 그렇진 않지만 뭔가 저런 사투리로 표현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문장을 꼭 끝에 붙인다. 그래서 이제는 버스 아저씨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면 왠지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처음 들었을 때처럼 심각한 미간이 아니라.


이렇게 버스 아저씨들이 소리 지르는 것에 대해 제주 친구에게 얘기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제주 친구가 알려준 제주 사투리가 하나 있다. 말로 들었던 거라 표기가 정확한지 모르겠는데 바로 '왼다'라는 말이다. (검색을 해보니 주문을 '왼다' 등의 외운다는 의미를 가진 문장들만 나온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제주 사람들은 외치듯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 때 쓰는 '왼다'라는 표현이 있다고. 그걸 들으니 제주 버스 기사님들의 외침은 제주의 성향이었고, 그것을 표현하는 제주만의 언어가 있구나. 역시 언어는 그 지역의 문화를 대변하는 것 같다.


아, 그리고 제주는 버스의 배차간격이 정말 크다. 가볍게는 20분, 길면 2시간에 1번 오는 버스도 있다. 절로 여유를 만들어주는 시스템이며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제주에선 사람들이 많이 타고 내리는 정류소가 아니면 바짝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 버스가 정류소 근처로 오지도 않을뿐더러(실제로 1차선이 아닌 곳에서 타고 내린 적이 많다) 거의 멈출 의향이 없는 듯 버스가 달려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멀리서부터 '아저씨 내가 지금 아저씨가 운전하는 그 버스를 타려고 해요!'를 어필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소심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교통카드가 들어있는 지갑을 살짝 들어 보일 뿐이지만, 나의 간절한 눈빛을 읽으신 건지 다행히 한 번도 버스를 놓친 적은 없다. 설령 아저씨가 그냥 지나갈 뻔했다가 급정거하여 태워준 적은 있다 하더라도.


일단 생각나는 제주 버스의 특징은 이 정도. 도심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제주 버스에 나는 그래도 비교적 빨리 적응을 한 것 같다. 내가 주말이면 자주 타는 버스 중 하나가 202번 버스인데(202번에서 보이는 풍경들은 정말 좋다) 타고 온 버스에서 202번으로 환승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동네에는 202번이 지나가지 않는다) 환승을 할 때면 항상 환승하는 정류소에 202번이 2분 앞서서 도착한다. 그러면 나는 그 정류소에서 가만히 다음 202번을 기다린다. 서울이었다면 지하철이나 다른 버스를 찾아보는 등 대체가 될 수 있는 노선을 찾아보겠지만 제주에서는 어차피 다른 노선도 비슷하기에 그저 다음 202번을 기다린다. 주어진 것에 순응하는 법을 배웠다고나 할까. 이런 것들을 자연스레 몸에 익힐수록 도와주는 제주가 고맙고 좋다.



아 추가로, 카카오맵은 제주 버스들의 현황을 귀엽게 표시해준다. 실시간으로 몇 번 버스가 어디를 달리는지 보여주고 그 버스를 누르면 그 버스의 운행노선을 보여준다. 카카오맵에서 간단히 설정만 해주면 제주도에서 열심히 달리는 귀여운 버스를 볼 수 있다. 언젠가 제주에 올 일이 있다면, 뚜벅이로 다니게 된다면 카카오맵의 이 설정을 꼭 이용해 보길 바란다. (사실 엄청 유용하진 않지만 그냥 신기하고 귀엽다) 제주여서 유용하고 할 만한 서비스니까.


*아래는 제주버스현황이 표시되는 카카오맵을 캡처한 화면이다.

 빨강, 초록, 파랑의 네모 박스들이 버스들이고, 조금 더 확대를 하면 각 버스 노선 번호가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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