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구축론” 리포트 번역•수정
‘동아시아’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폭넓게 쓰이는 현상과 비교해 각국 혹은 각 분야 입장에 따라 이를 상정하는 범위가 달라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여기서는 전후 일본 역사학계에 있어 1960년대부터 부상한 개념으로서 ‘동아시아 세계’를 염두에 둔다. 니시지마 사다오(西嶋定生)는 동아시아에 대해 먼저 한자를 중심으로 유교•불교•율령 등 중국에서 발상한 문화를 수용한 고유 문화권—현재 중국, 남북한, 일본, 베트남 등—에 착목했다. 그리고 문화 전파를 매개하는 정치구조인 ‘책봉체제’를 공유하는 정치권을 문화권과 더불어 파악하고, 우에하라 센로쿠(上原専禄)가 주창한 ‘세계사상(世界史像, world history image)’에 비춰볼 때 자기-완결된 문화권인 동시에 독자적인 정치구조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 역사적 세계로서 ‘동아시아 세계’는 성립한다고 일컬을 수 있다. 동아시아 세계가 다시금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야 범위를 넓힘으로써 각 일국사(一國史)의 도합만으로는 은폐되어버리는 기억의 결락(欠落)을 가시화하여 문화권 단위로 지니고 있는 여러 문제에 발전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함이다.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를 형성한 이데올로기로 중화사상을 지목할 수 있다. 중화(중국)을 세계 중심에 두고 책봉체제를 통해 주변 민족•국가를 정돈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그 사상을 실현했다. 한편, 일본은 지정학적 환경에 의해 책봉 대상이 된 시기가 짧아 중국 왕조의 간섭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러한 배경 아래 중화사상의 구조를 따라 그 중심을 일본으로 바꿔 둔 독자적인 ‘소중화사상’이 등장하고, 이윽고 신국사상(神国思想)으로 발전한다. 신국사상은 근대 국가 형성기에 왕조 교체가 없던 천황제를 사상적으로 결합하여 민족 전통성을 강조하고, 근대국가 이행을 위한 국민 통합을 꾀했다. 신국사상 근간에 있는 화이사상은 일본이 주변기기를 ‘문명화’해야 한다는 역할을 지고 있다는 주장 근거로서 군사제국화 및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만주, 한반도, 오키나와 및 태평양 등 동아시아 광역에 걸쳐 벌어진 전쟁과 그에 따른 학살, 약탈, 노동력 및 성적 착취 등의 만행은 해당 국가 및 시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특히 현대에도 책임과 대응에 관해 격론이 오가는 종군 ‘위안부’ 문제는 근대 일본의 ‘천황제국가’ • ‘가족국가’ • ‘젠더 이데올로기’ • ‘성적(性的) 관리 시스템’ • ‘식민주의’ • ‘침략전쟁’ 따위 문제들이 지닌 모순이 한 데 집약된 국가 범죄로, 이에 대한 해명은 근대 일본국이 은폐한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된다.[1] 종군 ‘위안부’를 둘러싼 문제는 종종 종군의 자발성 여부에 관해 프레이밍되지만, 애초에 ‘식민지’와 ‘여성’이 처한 상황과 그 인과를 논점에서 지운다. 현대 공론장에 있어서도 논점을 흐리는 주범으로서 신자유주의체제에 의한 경쟁 절대화를 들 수 있다.
전후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경제 이념에 의거해 분단 대립하는 냉전기를 맞는다. 동아시아 외교 관계도 재편성되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대립 전선 전방에 주어진 것이다. 그러한 체제 아래, 한미일 정권은 반공주의와 신자유주의 헤게모니를 공유하며 우호관계를 구축한다.
신자유주의적 소득 분배에 관해 노동•자본과 같은 생산 요소는 자유시장을 통해 제 값이 지불된다고 주장하는 시카고 경제학파의 이론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헤게모니를 획득하는 경향을 말한다.[2] 그 이념은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는 중요한 동력이 되었지만, 고전자유주의의 경쟁 개념이 공정성 아래 사회적 이익을 증진하여 인간 존엄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이념이었다 것에 반해, 신자유주의식 경쟁원리안 시장에 의존하여 경젱 자체의 공정성 의문을 차단하고 차별적 결과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받는다.[3] 구조적으로 일어나는 성•민족•장애 차별 등을 묵인하고 경제 격차를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서 옹호하는 것이다.
즉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경제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는 문제가 지니는 구조적 차별을 묵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자세를 촉진하는 주체로서 전쟁의 책임 관계와 착종되고 만 냉전기 세계 재편과 관계를 다시금 짚어야 하겠다.
이것은 동아시아 세계가 공유하는 모순이 드러나는 장면으로 보인다. 한일관계를 보면 맥락은 다를 지언정 양쪽 모두 종전•해방 직후 미군정을 경험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적 민주자본주의가 국가 운영의 이데올로기를 점하고 있다. 그것은 전쟁의 책임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재편이고, 여전히 ‘위안부합의’를 둘러싸고 모순적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가 될 테다.
여기서 필요한 관점이란 역사 기록의 권력을 지닌 주체에 의해 목소리가 지워진 민중•여성•식민지 등 마이너리티의 기억을 파헤쳐 권력 구조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여러 분야에서 민간 커넥션이 이어질 때 각각의 미시적 역사를 남기는 것으로 전체를 둘러싼 강압적 헤게모니로부터 탈락을 꾀할 수 있고, 그 조합을 통해 기존 권력 관계에 의한 역사와는 다른 관점을 획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오고시 아이코, 전성곤 역, 『근대 일본의 젠더 이데올로기』, 소명출판, 2009. Original Publish 大越愛子、『近代日本のジェンダー』、三一書房、1997.
[2] Saad-Filho, Alfredo, and Deborah. Johnston, *Neoliberalism [electronic Resource] : a Critical Reader* / Edited by Alfredo Saad-Filho and Deborah Johnston, Pluto Press, 2005; 양흥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평생교육의 과제」, 『평생교육학연구』 18, no.2 (2012) : 103-130에서 재발췌.
[3] 강창동, 「고전적 자유주의 관점에서 본 신자유주의 교육관의 이념적 한계」, 『교육사회학연구』 21, no.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