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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카눈을 상상하며 글 쓰는 아이

그림책 읽고 이야기 쓰기

2005년 국가 인권위원회는 일기 검사를 아동 인권침해로 판단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학교 선생님들은 일기 숙제를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일기는 일종의 글쓰기 성장을 위한 목적이 가장 큰 것인데 목적은 사라지고 인권에 초점을 두니 갈 방향을 잃은 것이지요.


그렇다면 일기 검사 대신 무엇을 통해 글쓰기를 장려할 수 있을까요?


인권위는 교육적 효과를 위한 대안으로 작문 활동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젠 일기가 아닌 주제 글쓰기로 변화하여 한글 쓰기를 대신하고 있지요.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의 일기 숙제가 사라지고 주제를 정해 주고 그 주제에 따라 글쓰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선생님들도 아이들의 글쓰기 활동을 무척 난감해합니다. <어린이의 문장 프롤로그 중_정혜영>


하지만 주제 글쓰기는 상상이 풍부한 어린이나 경험치가 많은 어린이는 어렵지 않게 쓰지만,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에게는 그저 어렵고, 머리만 아플 뿐이지요.

실제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오며 아이들의 문해력은 현저히 떨어졌고, 단어를 이해하지 못해 MZ 세대조차 사흘을 4일이라고 답하는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초등 국어 어휘는 어느 정도 익혀야 할까요?


일상생활과 학습에 필요한 기초 문식성(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갖추고 말과 글(또는 책)에 흥미를 가진다. <초등 국어과 교육과정>

로 되어 있습니다.


결국 나와 주변으로 생각을 점점 확장해 가야 하는 때인데 모든 상황이 다 낯설어 두려움을 느끼는 아이도 많습니다. 이런 때에 학습적 부담까지 더해진다면 오히려 공부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스카이 버스 164쪽_분당강쌤> 여기에 경험이 부족하거나 어휘력이 또래보다 적다면 그 부담감은 말할 수 없겠죠.


어휘를 정확히 아는 것은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지만 아이들이 접하는 재미있는 그림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아이들을 지도하는 글방에서는 그림책, 글 책, 문학, 비문학, 소설을 통해 어린이들이 상상하고 어휘를 넓혀갈 수 있도록 아이의 개인 수준별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2학년 글쓰기 수업이 있었습니다. 글방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골라서 의자에 앉아 읽습니다. 글을 열심히 읽는 어린이도 있고 그림을 유심히 보며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하는 어린이도 있습니다. 무엇을 먼저 보든 아이가 의자에 앉아 책을 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참 멋진 일이지요.

요즘 아이들 스마트폰 보는 것에 익숙하여 책은 손에 쥐어주기조차 힘들다고 하니 말이에요.


나라가 온통 태풍 카눈 이야기에 어수선합니다. 아이는 책을 읽다가도 곧 한반도에 도착할 태풍 카눈이 온다며 핸드폰에서 태풍의 이동 경로를 보여줍니다.

아이가 핸드폰으로 보여 준 태풍경로

"여러 번 말하는 걸 보니 00가 태풍에 관심이 많구나!" 하고 말해주니 선생님이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해 준 것이 좋은지 더 신나서 얘기합니다.

이럴 때 대부분 어머님들은 어떤가요?

"00야, 태풍 걱정을 니가 왜 하니? 어서 책이나 읽어!!"라고 일침을 가하죠.

하지만 저는 여기에서 아이가 글쓰기 소재를 찾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곧이어 제가 소개해 주는 책을 읽어줍니다. 학교가 방학이기도 하고 더운 여름날 여행을 많이 떠나니 여행 이야기가 담긴 책 <고양이와 생쥐의 어느 멋진 날>을 읽어 줍니다. 책을 읽으며 서로 공감 가는 부분은 신나게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고양이가 왜 사람처럼 서 있느냐? 생쥐는 기차에서 잠만 자느냐? 등등 어린이들이 재밌어하는 이야기들이지요.


책을 읽고 난 후 어떤 이야기를 쓸지 질문을 합니다.

"00는 어떤 곳에 여행을 가고 싶니?"

"고양이처럼 산에 가고 싶니? 생쥐처럼 바다가 가고 싶니?"

"산에 가면 뭘 하고 싶어? 바다에 간다면?"


저의 질문에 아이는 대답들을 쏟아 냅니다. 이렇게 주고받는 말이 아이의 어휘력을 향상하기도 하는 의외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죠. 한 예로 글방에 다니는 아이의 한 어머니는 아이가 글방을 다니면서 생전 쓰지 않던 어휘를 사용한다며 신기해하더라고요.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술술 말합니다.

"선생님, 저는요 나중에 커서 유럽 스위스, 캐나다 그런데 갈 거예요."

"학교도 그쪽으로 갈 수도 있어요."

"그럼 오늘은 00가 여행하고 싶은 이야기 00의 어느 멋진 날 어때? 그리고 00가 태풍을 좋아하니까 태풍 이야기도 좋아."

아이는 신이 나서 좋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쓰다 말고 갑자기 "선생님, 그런데 마법가루 뿌려놨어요?"라고 물었어요.

"응? 무슨 얘기... 아~ 그랬지. 선생님이 글이 자꾸 생각나는 글쓰기 마법가루 뿌려놨지"


지난 시간, 이상하게 글방만 오면 쓸 이야기가 자꾸 생각난다고 말하기에 "너희들이 글방에 오기 전 마법가루를 뿌려 놓아서 그렇다"라고 한 말이 생각났나 봅니다.

저는 다시 한번 더 힘을 주어 "그렇다"라고 했더니 아이는 더 신이 나는지 "자꾸 글이 생각난다"라며 신나게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이어 쓴 이야기는 자꾸 생각난다며 10줄의 이야기를 썼지요.

당연히 태풍 카눈의 이야기가 들어갔습니다. 태풍 카눈을 타고 날아다니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결론은 모두 죽었다로 끝나길래 이야기의 끝이 좀 아쉽다고 했더니 50층 높이에서 떨어졌기에 죽을 수밖에 없다고 답을 했습니다.


죽지 않은 이야기로 고쳐보자고 할 수도 있지만 00의 말도 근거가 있는 사실을 표현했기에 굳이 고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또 신이 나서 이야기와 연계된 그림을 그립니다.

어린이의 글쓰기

아이는 자기가 쓴 글을 바라보며 어떤 기분이 들까요?

아마도 최고의 만족을 느꼈을 겁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태풍을 소재로 이야기를 썼으니까요. 이렇게 쓴 이야기가 하나씩 쌓이는 것을 보며 아이의 마음도, 문장력도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맛있는 간식을 먹고 귀가하지요.

아이가 요리에 참여해 더 맛있는 <피자만두>

저는 아이들이 쓴 글을 재밌게 읽는 유일한 독자가 됩니다. 그 기분 어떨지 상상해 보셨나요?

"와!! 지난번에는 맞춤법도 틀리더니 이번에는 바르게 썼네?"

"우와 이런 말을 썼다고"

"어떻게 이런 재밌는 상상을 했지?" 하며 아이들이 풀어놓은 글들을 벅찬 마음으로 감상합니다.


제10회 브런치 대상작 <어린이의 문장>을 쓴 정혜영 작가는 교사가 궁금해할수록 아이들은 더 용기 내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아이들의 중요한 이야기가 휘발되지 않도록 더 정성 들여 읽고 궁금해해야겠다. 아이들이 쓴 이야기뿐 아니라 쓰지 않은 마음까지 살피려면 부단히 좋은 글눈을 가져야겠구나. 그리하여 재능이 없더라고 꾸준히 하면 나아지는 글쓰기의 막강한 힘을 길러줘야지라고 했습니다.

브런치북 제10회 대상작_어린이의 문장_정혜영 작가


어린이가 쓴 문장은 이렇게 저의 가슴에 살아 움직이는 문장으로 숨을 쉽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제가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이 가시나요???


어린이도 어른도 글을 쓰면 행복해집니다.

지금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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