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규 Aug 25. 2020

14년째 정신과를 다니고 있습니다

일상생활 가능해? 내가 정말 미친 걸까요?




처음 정신과를 찾아갔을 때는 17살이었다. 매일을 눈물로 보냈고 자살시도도 했다. 등교거부를 하였고 아버지 지갑에 돈을 훔쳐 경상도로 가출도 했다. 그것을 발단으로 2년-3년 정도 심리 상담과 미술치료를 받았다. 성인이 된 후 그 과정들을 단순히 '나는 사춘기를 심하게 보냈다'라고 생각했다. 다시 내 발로 정신과를 찾아가기 전까지 말이다.




출근을 하다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가다가도 차에 치여서, 아니면 다른 우연스러운 사고라도 내게 일어나길 원했다. 원인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끝도 없이 말할 수 있다. 불우한 나의 유년시절부터 시작하여 잘 풀리지 않는 사회생활과 허무하게 끝나버린 연애, 믿었던 친구의 배신 등. 하지만 그것들은 핑계일 뿐 정말 나를 괴롭게 하고 슬프게 하는 원인을 몰라서 정신과에 발을 들였다.



아침 한번, 저녁 한번 드시고 1주일 뒤에 뵙겠습니다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고 나오며, 또 약이구나 싶었다. 물리적인 것 말고 다른 것이 필요했다. 우울을 극복해야만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거 네가 생각이 많아서 그래. 일이라도 열심히 해봐. 부정적인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바빠지잖아? 그럼 우울증 그런 것도 없어져."




이거구나 싶었다. 우울감에 빠지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마침 방송 영상 계통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야근과 철야가 잦았다. 바쁠 땐 1주일에 2번 정도 퇴근을 했다. 씻지도 않고 회사에 남아 일을 했다. 명절과 신년에도 일을 했다.




주말 출근에도 빠지지 않고 병원에 가서 약을 타왔다. 열심히 살자. 열심히 살다 보면 이런 것도 다 없어질 거야. 스스로 다독였다.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정신과에 다닌다니 슬퍼하실 것 같았다. 정신과 약을 몰래 먹고 혹시나 들킬까 봐 약봉지는 버리지 못하고 서랍에 쌓아뒀다. 독립을 선언한 뒤, 방 청소를 하다가 서랍에 쌓여있는 약봉지를 발견하였다. 무려 2년 치였다. 오래도 먹었네, 이제 그만 가도 되겠지? 정신과에 스스로 발을 끊었다. 정말 괜찮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오랜만에 정시 퇴근을 하고 전철에서 업무 카톡을 받았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속이 메슥거렸다. 현기증이 날것 같았다. 정신을 놓으면 바로 쓰러질 것 같았고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공황발작




결국 나는 다시 정신과에 가서 약을 받아왔다. 허무했다.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하고 우울하게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마음 한편에 짐처럼 남아있던 대출금도 다 갚았고, 불우하다 생각하는 가정환경에서도 독립을 하면서 벗어났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과 인연을 끊었고, 스스로 노력하여 주변 환경을 바꾸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때였는데 다시 약을 먹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회사에서도 공황발작의 연속이었다.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집중을 할 수 없었고 발작이 심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과 버스는 타지 못하게 되었다.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도 공황발작으로 심장이 두근거려 터질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사람 많은 곳엔 가지 못하게 되었다. 노력했는데 나아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절망감에 빠졌다. 정신과만 17살부터 31살에 이른 지금까지, 벌써 14년째.




나는 정말 우울증과 공황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약을 언제까지 먹고살아야 할까?
다른 사람들과 앞으로 어울릴 수 없을까?
이러다가 정말 미쳐버리는 게 아닐까?




실제로 우울증과 공황발작을 오래 겪어온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을 할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너보다 힘든 사람들도 열심히 살잖아. 그러니 나중엔 너도 괜찮아질 거야.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그러니 오늘만 울어.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힘내.'



이제 이런 말들은 하도 들어서 와닿지도 않는다.

나도 겪고 보니,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은 시간을 느낄 수 없다. 그들의 시간은 대부분 과거에 멈춰있다. 시간이 멈춰있는데 어떻게 시간이 흘러 나를 괜찮게 만들어준단 말인가?



어줍지 않은 말로 위로하기 보다 그저 조용히 그들을 안아주고 싶다.

어느 시인이 말한 '7초간의 포옹' 그 기적을 믿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