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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Mar 28. 2022

피자를 만들다 상념에 잠기다(?)

지금보다 조금 옛날의 부모들에 대하여


딸이 코로나19에 확진돼 일주일간 집에서 지냈다. 자택치료 4일 차를 맞던 이틀 전부터 피자가 먹고 싶다 노래를 불렀다. 시켜 먹는 피자는 짜고 자극적인 탓에 나름의 방법으로 집에서 만들어 주었다.


마트에서 파는 토르티야, 이미 다 잘려 나오는 시판 모차렐라 치즈, 먹을만한 고기, 양파와 시판 토마토소스, 여유가 있다면 버섯과 파프리카, 그리고 적당한 크기의 에어프라이어만 있다면 누구나 네 살 아기가 먹을만한 피자를 뚝딱 만들 수 있다. 에어프라이어에 160도로 10분만 돌리면 적당히 바삭하고 녹진하다.


이번에는 베이컨과 양송이, 시금치를 넣었다. 베이컨은 물에 씻어 짠 기운을 빼고, 시금치는 잘게 썰었다. 아이가 잘 먹는 걸 보니 '먹고 싶다' 노래를 부른 그날 바로 만들어주지 않고 하루를 건너뛴 게 슬쩍 미안해진다.


3, 4주에 한 번 정도 아이에게 피자를 만들어 주는데(밥을 너무 안 먹어서 이거라도 먹여야 한다), 왜인지 피자를 에어프라이어에 넣을 때와 꺼낼 때마다 나는 매번 상념에 잠긴다. 약 20년 전쯤의 내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그렇다. 나의 인생이 나름대로 많이 흘러왔으며, 또 그에 따라 세상도 몇 굽이 바뀌었고, 그때와 지금의 나와 우리의 처지도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상념의 결말은 항상 '그 시절의 부모들'에게 향한다.


내가 19살까지 자란 곳은 인구 13만 명의 작은 도시였다. 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던 1990년대 우리 동네에는 대형 마트는커녕 슈퍼마켓도 변변치 않았다. 지금처럼 운송능력이 양과 질에서 뛰어났던 시대도 아니라 다양한 식재료를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서울에서는 이미 1980년대 말 맥도널드와 피자헛 1호점이 각각 들어서 다들 새로운 식문화에 눈을 떴지만, 시골 도시에 사는 내게는 그림 속의 떡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전자레인지라는 것이 생겼다. 지금으로 치면 에어프라이어급 신기술에 먹보였던 내 가슴은 설레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전자레인지로 집에서 손쉽게 피자를 만드는 법'이라는 글을 봤다. '식빵에다 토마토소스를 바른 뒤 토핑을 올리고, 피자치즈를 올려 전자레인지에 1분만 돌려서 먹으라'는 내용이었다.


'집에서 피자를 먹을 수 있다니…!' 가슴이 뛰었다(이때 이미 비만의 길을 걷고 있었던 듯하다).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 재료만으로 피자를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 식빵과 소시지, 치즈를 사다가 신나게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비록 슈퍼에는 '피자치즈'와 '토마토소스'가 없어 그냥 평범한 가공치즈와 토마토케첩을 사용해야 했지만, 난 몇 번이고 식빵피자를 만들어 먹으며 90% 부족한 맛에도 행복해했다.


대충 이 정도 회상이 끝나면 다음은 그 시절의 부모님들에 대한 생각으로 옮아간다. 어떤 부모가 자식들에게 유행하는 음식과 옷가지, 영화와 책을 사주고 싶지 않을까. 그러나 시공간의 제약과, 제한적인 주머니 사정이 그때의 부모들이 꿈꾸던 육아를 막아섰을 것이다. 아빠들은 주 5일 근무는커녕 주 6일 근무에 야근까지 해가며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시달리다 아이들이 몇 학년 몇 반 인지도 까먹었을 것이다. 엄마들은 자신의 꿈을 고민할 시간도 없이 '현모양처'의 상을 사회적으로 강요당하며 아이들에게 얽매였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을 테지만, 1990년대 지방의 작은 도시의 부모들은 대개 그랬다.


TV에서나 보던 피자를 한 번 만들어 먹어보겠다고 식빵과 슬라이스 치즈를 들고 호들갑을 피우는 빙구 같은 자식과, 어찌 됐든 뭔가를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더 좋은 걸 해주지 못해 미안한 부모의 심정. 나도 나이를 먹어 두 입장을 모두 알게 됐고, 그걸 느낄 때마다 두 눈과 마음이 착 내려앉는 느낌이 들곤 한다. 결국 나는 집에서 만든 여전히 20% 부족한 피자를 보며 어울리지 않게도 매번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우리 딸은, 내 나이가 돼 어떤 홈메이드 피자를 만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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