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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이맘 Mar 29. 2021

고무신 신고 부모님 품으로

마스크 쓰고 자유를 얻다

병원 탈출, 백수 선언! 과 동시에

나는 나이 서른 넘어 말로만 듣던 '고무신'이 되었다.


무슨 말이냐고?


남편이 전공의 수련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훈련소에 입대했다는 소리다. 물론 의무사관후보생으로 6주짜리 단기 훈련소 입소이기는 하지만, 나이 먹고 사회의 단물이 잔뜩 들어서 까까머리로 괴산 훈련소에 입소하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안쓰러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결혼한 사람도 많고 다들 나이가 있어 부모님 외 주변에 챙겨주는 사람이 많아서 훈련소에 입소하는 훈련생들은 다들 이것저것 잔뜩 챙긴 거대한 가방을 들고 나타난다고 한다(물론 다 빼앗길 각오는 되어있겠지). 무튼 그때 잘 안 챙겨주면 우리 남편만 가난이 든 얇은 가방들고 들어가서는, 훈련소 안에서 이것저것 빌려 쓰고 얻어먹고 불쌍해진다는 군의관 마누라 선배님들의 조언 있 입대 1주일 전부터 기저기 발품 팔고 인터넷 쇼핑해가며 열심히 가방을 싸주었더랬다. 가방이 점점 더 빵빵해질수록 내 뿌듯함도 이만큼 커졌달까.


입대 3일 전에는 함께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갔었는데 속세에 대한 미련을 미처 다 못 버린 남편은 이 정도면 괜찮다며 생각보다 머리를 길게 잘라버렸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거울을 보고는 결국 소심한 우리 부부는 둘 다 불안해져 버렸다.

"자기야, 머리가 길면 입구에서 바리깡으로 그냥 쭉 밀어버린다는 소문 있던데..."

".... 그럼, 그냥... 자기가 좀 다듬어줄래?"

그렇게 나는 갑자기 이발병? 이 되다. 부랴부랴 집에 있던 강아지용 바리깡으로 남편 머리를  다듬는데 부분 부분 밀면 밀수록 다른 쪽이 삐쭉거려서, '역시 머리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생각해보면 그냥 입대해서 몇 번이라도 더 경험이 있는 군인한테 사람용 바리깡으로 밀리는 게 더 깔끔했을 것 같긴 하지만... 0.5cm라도 덜 깎이기 위해...ㅎㅎ 무튼 우리 둘 다 나름 선방했다며 만족해하며 이발을 마쳤다. 그때는 몹시 황당했는데 돌아보니 두고두고 이야기할 추억거리가 생긴  같다.


그렇게 우리 큰 아드님을 훈련소에 보내 놓고, 난 출산휴가 이후 1년 만에 다시 친정집으로 딸과 함께 들어갔다. 그렇게 시작된 친정살이.

엄마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더 익숙한 따님 덕분에 시작은 순탄하였으나 따뜻한 날씨에 제 막 바깥 맛을 알아버린 15개월 아가를 돌보는 건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이가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만 씌우면 자지러지게 울어버려서 갈 수 있는 곳도 없고, 결국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곱만 겨우 떼고 사람 없는 놀이터로, 점심 먹고 놀이터로, 저녁 먹고 또 놀이터로 이어지는 강행군이 계속되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의학적으로는 24개월 미만의 어린아이들은 호흡기 발달이 미숙하여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호흡곤란시 대처가 어렵기 때문에 마스크 미착용을 허용하고 있고 무이가 대부분은 부모님과 집에 머물기 때문에 그동안 크게 조바심내고 있지 않았었다. 그러나 막상 아가랑 다녀보니 마스크 쓰기는 이미 우리한테 일상 예절과 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심지어 비슷한 또래의 어린 친구들이 "아줌마, 쟤는 왜 마스크 안 썼어요?"라며 묻기도 하고, 동네에서 지나가며 혀를 끌끌 차시는 어르신들도 계셨다. "24개월 미만의 아가는 코로나보다도 마스크 쓰기가 더 위험할 수도 있어요"라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무용지물이었다. 코로나도 무섭지만, 이렇게 어린 아가에게 답답한 마스크를 꼭 씌워야만 하는 그냥 이 현실이 몹시 속상했다. 살랑거리는 봄바람과 꽃내음... 우리 아이들은 언제쯤 자유롭게 느낄 수 있을까.

그렇게 마스크 씌우기 특훈에 들어갔다. 하루 내내 울다 지쳐 잠들기를 반복, 겨우 씌워 나갔다가 벗어버려 다시 집에 돌아오기를 수차례... 이제는 밖에 나가자며 본인이 마스크를 찾아서 가져오는 수준에 이르렀다. 우리 딸 얼굴에는 답답한 마스크가 씌워졌지만, 대신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남편한테는 편지를 써서 전했다. 무이가 놀이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제는 마스크를 얼마나 잘 쓰는지. 바쁜 세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이 여유로운 일상을 내가 무이와 어떻게 바쁘게 채워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남편의 소중함도 조금은...^^

코로나가 바꿔놓은 우리의 일상이 서글프지만, 하나의 관문을 잘 넘은, 차차 적응해나가는 우리 무이에게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자유가 기대된다. (그럼 엄마한테도 자유를 좀 줄 거지? 그렇지, 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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