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대기업 팀장이었던 A 씨는 최근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변에서는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그가 그 대기업에서 한창 잘 지내고 있었고 상사로부터 인정도 받았기 때문이다.
사례 2. 대기업 팀장인 B 씨는 올해 말 자발적 퇴직을 계획하고 있다. 재무 분야에서 일해 온 그는 자기만의 사업을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그는 적어도 앞으로 5년 동안은 대기업에서 아무 문제없이 일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먼저 떠나는 쪽을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은 과연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
직장과 나의 관계는 ‘계약 연애’다. 이미 직장 입장에서도 나의 ‘매력’이 덜해지거나 나보다 ‘더 매력적인’ 직원이 나타나면 쿨하게 헤어질 마음이 있다. 그러니 직원 입장에서도 결혼이 아닌 계약 연애로 관계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지금의 40대 중후반 이상이 “한 직장에 오래 다니는 것이 미덕”이라는 말을 들으며 직장과 나의 관계를 결혼처럼 생각했던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다. 결혼 전에 여러 사람과 만나 연애해 보는 것이 좋다는 조언이 있듯, 이 시대의 직장인들은 ‘밀려나기’ 전에 혹은 자기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 직장과 연애를 해보는 것이 좋다.
직장을 떠나고 옮긴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이직과 관련해 들었던 가장 중요한 말은 “저점이 아닌 고점에서 옮겨라”라는, 어느 헤드헌터의 조언이었다. 우리는 보통 회사에서 일이 안 풀릴 때, 누군가와 사이가 안 좋아졌을 때 이직을 고민하게 된다. 이는 마치 주식을 가격이 낮을 때 파는 것과 유사하다.
물론 저점에서 떠나는 것을 고려해야 할 때도 있다. 단순히 직장을 옮기는 것이 아닌 그동안 몸담았던 직업에 대한 회의가 들어 업(業) 자체를 변경하려고 할 때다.
고점에서 옮기라는 조언에 대해 일도 신나게 잘 풀리고 승승장구할 때 옮기란 말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고점에서 옮기라는 말은 다시 풀어보면 무엇인가 익숙해질 때 옮기라는 말이다. 익숙하다는 말은 더이상 배움이나 자극이 없다는 말이다. 커리어를 개발하면서 익숙함은 경계의 대상이다. 성장이 멈추었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이다.
떠나기로 마음먹었다면 잘 헤어져야 한다. 보통 직장을 옮길 때 우리는 새로 가게 될 직장에 더 비중을 두고, 떠나는 직장에는 소홀히 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소셜미디어로 인해 더 연결된 세상에서 이것처럼 자신을 망치는 일도 없다. 저점이 아닌 고점에서 떠나라는 조언처럼 ‘박수 받을 때’ 떠나는 것이 중요하지만 ‘박수 받으며’ 잘 떠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끝이 안 좋으면 앞으로 또 문제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A 팀장의 경우에는 대기업에서 인정도 받았고 다양한 경험도 했지만, 자신의 전문성이자 열정이 있는 콘텐츠 분야의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중소기업 임원으로 옮겼다.
나는 그가 ‘신의 한 수’를 두었다고 생각한다. 고점에서 옮겼으며, 자신의 전문성을 더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갔고, 주요 임원으로서 사업 전체를 바라보며 기획과 조정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갔기 때문이다. 기업은 더 작은 곳으로 옮겼지만 자신의 업무 분야에서는 더 큰 곳을 선택했다. 장담하건대, 그는 이번 이직으로 대기업에 있을 때보다 적어도 은퇴 시점을 최소 5∼10년은 더 늘려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에서 그만한 경험을 가진 사람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독립을 수개월 앞둔 B 팀장 역시 직장에서 밀어낼 때쯤 허둥지둥 다음 길을 찾는 여느 직장인과 달리 잘 지내고 있을 때 다음을 오랫동안 준비해왔고, 이제 독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물론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 좋은 마무리를 하는 것도 그런 준비의 일환이다.
그의 독립에 대해서도 상반된 의견이 있겠지만 급하고 안 좋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독립하는 것이 아닌 느긋하고 안정된 상황에서 오랜 고민과 준비 끝에 독립하는 것이 더 나을 수밖에 없다.
A와 B 팀장은 모두 박수 받을 때, 박수 받으며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주변 상황 변화에 어쩔 수 없는 수동적인 리액션(반응)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 상황을 스스로 개척해 주도적인 액션을 취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회사를 떠나는 일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