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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예 Apr 17. 2020

2. 헤어지자고 할 거면 당직 때 말하지 그랬어

오프


4월만 해도 몸서리치게 추운 날들이 많았는데 5월이 되자 기적같이 날씨가 좋아졌다. 처음에는 절대 못 할 것 같다고 여겼던 인턴 일들도 점점 손에 익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숙소에서 없어지는 속옷들. 예쁘거나 비싼 속옷이 아닌데도 세탁을 하고 난 뒤에는 꼭 1-2세트씩 속옷이 사라져 있었다. 


또 하나는 달라진 남자친구의 태도였다. 절대로 CC를 하지 않겠다는 입학 당시의 굳은 결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CC가 되어 있었다. 함께 PK(폴리클, 학생실습)를 돌고 의사 국가고시를 준비하면서 나는 CC하기를 잘했다, 라고 느끼는 순간들도 많았다. 참으로 다정한 나의 남자친구. 나를 위해 따뜻한 글을 쓰고, 간지러운 노래를 불러주는 다정한 나의 남자친구. 주변 친구들은 내 남자친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가 나를 많이 좋아한다는 사실은 인정해주었다. 어떤 친구는 그가 나를 볼 때 항상 갈증이 난다는 표정이어서, 왠지 부끄러워진다고도 이야기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겨우 오프를 맞춰 만나도 그는 핸드폰을 들여다보기에 바빴고, 내가 모르는 동아리 형들, 성형외과 형들, 정형외과 형들, 이런 형들, 저런 형들, 아주 다양한 형들과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내가 그를 의심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나를 아직 사랑한다고 믿었고, 또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날 나는 응급실 당직을 끝내고 지방 분원으로 가는 전철에 올랐다. 응급실 인턴은 하루를 일하면 하루는 쉬는 스케줄이었는데, 내 귀중한 오프를 이렇게 쓴다는 게 너무나 억울했다. 나는 다음 턴인 외과 인계를 받으러 가는 길이었는데, 지난 턴에 외과를 돌았던 인턴들로부터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듣고,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하는 자리였다. 나는 비좁은 전철 의자에 몸을 구겨 넣고 남자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지금 내려가는 중.'


바로 답장이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눈을 붙였다. 슬슬 허리가 뻐근해질 무렵에 익숙한 역 이름이 흘러나왔다. 


'어우, 하마터면 놓칠 뻔.'


나는 부리나케 전철에서 내렸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아직까지 1이 사라지지 않았다. 바쁘겠거니, 하고 나는 병원 쪽으로 빠른 발걸음을 옮겼다. 


인계는 지루했다. 그리고 또 무서웠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히 컸는데, 이런 나에게 인턴을 하면서 한 달 주기로 겪는 과에서 과로 옮겨가는 과정은 정말이지 힘든 일이었다. 나는 아주 욕심쟁이라, 일도 잘하고 싶고, 연애도 잘하고 싶고, 윗년차 선생님들로부터 좋은 평도 받고 싶고, 술도 잘 먹고 싶고. 아무튼 간에 잘하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아주 피곤했다. 


심지어는 예상치 못했던 회식까지 이어지자 나는 거의 실신 직전까지 갔다. 저녁 시간을 훌쩍 넘긴 어두운 시간에 전공의 선생님들과 펠로우 선생님까지 합세하여 곱창을 구워대고 있었다. 나는 하품을 슬쩍 숨기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1이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답장은 없었다.


나는 불안감에 사로잡혔지만 피곤해서 불안해할 틈이 없었다. 나는 곱창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집어삼키고는 술에 취해 집으로 가는 전철에 올랐다.


당직


'아 미친 머리통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나는 숙취로 웅웅 울리는 머리를 쥐어 싸매고 출근길에 올랐다. 인턴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도저히 지하철을 탈 자신이 없어서 택시를 잡아 탔다. 그런데 그것이 실수였다. 나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응급실로 가는 길에 있는 화장실에서 한바탕 구토를 했다. 잔뜩 쏟아내고 나니 어쩐지 두통도 사라졌고 속도 후련해진 기분이었다.


'오빠 나 출근했어.'


카카오톡 메신저에 온통 노란 말풍선들 뿐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메시지를 보냈다. ABGA(동맥혈 채혈)니 blood culture(균 배양을 위한 정맥혈 채혈)니 EKG(심전도)니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나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답장이 와있었다.


'응 내일 오프지?'


나는 슬며시 웃음이 나와 금세 답장을 보냈다.


'응 오빠는?'

'나 내일 프리오피만 챙기고 형들 인사하고 퇴근할 듯. 내일 볼까?'

*프리오피 : 수술 전에 필요한 심전도, 혈액검사 등을 확인하는 것

'ㅇㅇ 그러자'


솔직히 말해 나는 좋은 여자친구는 아니었다. 나는 감정 기복이 무척 심했고, 짜증도 자주 부리고,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 항상 의아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심하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던가? 나의 부모님은 엄하고 통제적이긴 했지만 결코 나를 방임한 적은 없었다. 나의 지난 연애들은 순조롭다 못해 지루할 정도였고. 그러나 나는 사람을, 사랑을 믿지 못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내가 정신과 의사가 된 이후에야 비로소, 마침내, 그 실마리를 찾아가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그 시점에 나는 내가 대체 왜 이렇게 꼬여 있는가, 나의 꼬인 점으로 인하여 대체 왜 이렇게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가, 이런 의문들로 가득했다.


영화 <클로저>에서 나탈리 포트만은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믿어달라는 남자에게 말한다.


'보여봐. Show me.'


나 역시 항상 그런 식이었다. 증명해봐, 내 눈 앞에 가져와봐 너의 마음을. 내가 볼 수 있고 만져볼 수도 있게. 팔딱팔딱 뛰는 심장이라도 가지고 와 봐. 


그래서 나는 아주 미성숙한 방식으로 연애를 했다.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들은 이렇게 행동할 것이다, 라는 공식을 정해놓고 그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불같이 화를 냈다. 너, 너 말이야, 나를 사랑한다더니, 이건 나를 사랑하는 남자가 하는 행동이 아니잖아.


사랑을 잡을 수도, 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꽃다발을, 손편지를,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자랑할 만한 선물을 원했다. 또한 나는 섹스도 원했다. 나를 사랑하는 남자라면, 나를 열렬히 원할 거야. 나 때문에 흥분된다고 말해, 나 때문에 못 견디겠다고 말해.


나는 우습게도 이런 나 스스로를 아주 천박하게 여겼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 전에, 원하기 전에 그가 먼저 알아서 나를 충족시켜 주기를 바랐다. 내가 구질구질해지지 않도록. 


이런 연애 방식에 익숙해져 있어서, 나는 그가  아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때론 자신을 지키기 위해 굉장히 비열해질 수 있다는 점 역시도.


그리고, 다시 오프


몇 주만에 만난 그는 조금 수척해져 있었다. 그와 나는 강한 햇빛을 맞으며 공원에 앉아 있었다. 나는 너무나 피곤해서 어디든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이 강했지만, 이런 봄날을 꽃구경 한 번 하지 못하고 보낸다는 것은 분명 후회되리라 생각되었기에 그의 어깨에 기대 눈만 꿈벅거렸다.


"저녁 뭐 먹을래?"


이렇게 나른하고 무료한 오후가 순식간에 호러 장르로 변해버린 것은 그 다음이었다. 그가 주변 식당가를 검색하기 위해 지도 어플을 켜자 최근에 검색한 내역들이 주루룩 떴다.


온통 모텔들 이름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무슨 상황이지? 싶어서 그저 그의 어깨에서 뺨을 떼고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가 허둥지둥거리며 어플을 종료하려고 하는데 최근에 실행했던 어플들의 미리보기 화면들이 또다시 주루룩 뜨더니 소개팅 어플 화면이 보였다. 


"야 이 미친새끼야"


상황 파악을 미쳐 끝내기도 전에 육두문자가 먼저 나왔다. 그가 내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내 어깨에 손을 대려 하기도 하고 내 팔목을 잡으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나는 귀 주변이 웅웅거리고 눈 앞이 흐릿해서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정수리 끝까지 무언가 뻗치는 느낌이 들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 이런 걸 소름이 쭈뼛 돋았다고 하는 건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가 뭐라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고 내 손을 끌어당기고 급기야는 내 앞에서 무릎까지 꿇었지만 나는 그저 서서 잔잔한 호수의 표면만 가만히 응시했다.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이 이상한 눈으로 우리를, 아니 이젠 그와 나를 힐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에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그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따귀를 올려붙인 다음에 혼자 택시를 타고 가버렸을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 생각보다 나는 그와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한순간에 내 인생에서 그를 뽑아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불가능한 과정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이렇게 바보 같은 여자가 다 있을까. 내가 비록 운전면허는 없어도 의사면허까지 있는 여자인데. 그러나 나는 그에게 바로 이별을 고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친구들에게 그에 대해 털어놓지도 못했다.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죄었다. 나는 내가 그에게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인턴을 하느라 내가 예쁘게 꾸미지를 못해서, 내가 너무 성질이 고약해서 그를 아프게 해서 그런 것이라고 나 자신을 탓했다. 그 편이 훨씬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왜냐면 내가 바뀌면, 내가 달라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와 내가 헤어지게 된 것은 그 일이 있고 몇 주가 지난 뒤였다. 그와 나는 오프였지만 만나지 못했다. 나는 갑작스레 불안한 마음이 들어 그에게 나를 보러 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잔뜩 신경질을 내며 내게 이해심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내가 침대에 누워 비참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 때, 동생이 노크를 하더니 방에 들어왔다.


"언니 짜장면 먹을 거임?"


그 얘기를 듣자 짜장면이 먹고 싶었다. 우습게도 나는 그 순간 그와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다시 말해 헤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운 여자라도 짜장면은 먹고 싶은 거니까. 이 정도면 되었다, 싶었다. 그가 나를 원하지 않고, 나를 배신하고, 내 자존심을 철저히 뭉개버리면 나 역시 면발이나 후루룩거리며 나도 그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이제 그만 헤어지자'


나는 동생에게 탕수육도 같이 시키라고 말하며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가 오거나 답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받은 답장은 뜻밖이었다.


'헤어지자고 할 거면 당직 때 말하지 그랬어'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당직 때면 이것저것 일들로 바쁘니까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일까? 왜 이런 말로 자신의 오프를 망치냐는 뜻일까? 어떤 의미로 한 말이었든 간에 나는 저 황당한 말에 되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5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잔인한 4월이라고 했는데, 내게는 5월이 너무나 잔인했다. 방 모퉁이에 몰아넣은 기억의 덩어리들이 애처롭게 꿈틀거렸다.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페어웰 중에도 나는 종종 시선을 잃고 과거를 보았다. 퇴색되다 못해 탈색되어 가는 나를 느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안쓰러운 눈초리를 받으면서, 인턴 숙소의 이층 침대에 누워 안타까워했다. 내가 더 이상 술을 마시고 후회할 짓을 할 만큼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것에, 이 모든 것들을 바로잡기에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변해버렸음에, 지난 시간들을 아름다운 것들로 기억할 수 없다는 점들에 대해서. 나는 아무도 없는 정사각형 방에서, 아주 오래전 잘려진 나무 밑둥처럼 누워서 오독오독 기억들을 씹으면서, 삼키면서, 참아 내면서 막시밀리안 헤커 노래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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