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중 Sep 14. 2021

고추 한 박스에 만원

코로나와 함께 2021년도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장기화 되는 게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는 중이라 다른 분들보다는 덜 힘들게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하기도 하면서 죄스럽기도 한 평안한 나날들입니다.

 이곳 시골 마을은 코로나가 비껴간 듯 조용합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10시 이후에는 영업을 하지 않고 4인 이상 모일 일이 거의 없는 동네입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코로나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사실을 잠시 잊곤 합니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 주민들도 저처럼 코로나를 잊은 채 살아가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농민들은 코로나로 인해 전에 없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우연히 식당에서 옆자리 앉은 농부 아저씨와 얘기를 나누다가 듣게 되었습니다. 그 날 하루 10kg 상자로 아삭이 고추 10상자, 청양고추 4상자를 따셨다고 합니다. 고추를 140kg이나 따려니 혼자 딸 수가 없어 일당 10만원에 고용한 사람과 같이 따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고추를 농협에 모두 팔고 받은 돈은 총 18만원이었다고 합니다. 아삭이 고추는 한 상자에 1만원, 청양 고추는 2만원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식당들이 모두 어려워져 구매처가 많이 사라진 탓에, 게다가 고추 농사가 풍년인 탓에 고추 가격이 사상 최악인 수준이라고 합니다.

 e마트 몰에서 아삭이 고추 가격을 검색하니 최저가 기준 100g 당 1000원이네요. 10kg에 1만원이던 고추는 마트에선 가격이 10배나 뻥튀기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고추 가격이 좋을 때는 한 상자에 3만원씩도 받았다고 합니다. 사실 코로나 이전이라고 상황이 좋으셨던 것은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별 생각 없이 시켜서 마시던 4000원짜리 아메리카노. 이 커피 한 잔과 고추 4kg이 같은 값이라니. 이게 같은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맞나 싶습니다. 농협에서는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한방 의료봉사 행사를 많이 개최합니다. 제가 일하던 병원에서는 이런 행사에 자주 참여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환자 한 명당 1~2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농협으로부터 지원받고 있었습니다. 공짜로 침 놔줘서 고맙다며 손 꼭 잡아주고 가신 할머니들께 죄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냥 온 국민이 농민들을 착취하고 있는 구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돼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간 느껴지던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과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이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 심각한 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오르지 못했을까. 모두의 이해관계에서 철저히 비껴간 정말 사각지대에서 오늘도 묵묵히 일을 해 나가시는 농민 분들이 존경스러우면서도 죄송스럽고 아픕니다.

 국가 지도자도 사망케 하는 코로나는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지만,  사이에서도 우리 인간은 가장 약하고 가장  보이는 사람들에게 아픔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씁쓸해집니다. 우리나라 농민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희망차게 하루 하루를 살아갈  있는 날이 언젠간   있기를 바라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생일 축하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