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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13. 2020

씁쓸하지만 싫지만은 않은 그런 맛이었다

월간에세이 6월

사랑할 때는 몰랐다가 이별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꽤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그동안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 중 꽤 많은 부분이 사실은 그 사람이었다는 것, 세상 모든 것에 사실은 이별이 숨어있다는 것, 그런 것들이 보이고 나서는 더 이상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사랑노래를 들어도 슬프고, 이별노래는  마치 내 얘기인 것처럼 아프다. 다들 내 이별을 있는 그대로 겪은 듯한 가사들이다. 이 아픈 걸 다들 견디면서 사는 걸까? 사람에 대한 존경심마저도 생긴다.


깊은 새벽,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별노래들을 자꾸 틀어준다. 이별 앞에 어느덧 담담해졌다고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5년만이다. 그동안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감정들, 정리하지 못한 생각들을 이제야 처리할 때가 왔나보다. 그 때의 이별노래들을 하나씩 꺼내 들으며 미뤄둔 숙제를 마쳐보려 한다.


윤종신 <내일 할 일> ‘내일 슬프지 않기로 해. 마지막은 기억에 남기에’


헤어지던 날, 그 사람이 고마웠다. 이것 저것 너저분한 말 없이 '네 잘못 아니야. 그 동안 고생했어' 라고 말해준 게 고마웠다. 너무 차갑지도, 너무 끈적이지도 않은 그 담담한 한 마디. 마지막은 확실히 기억에 또렷이 남는다. 그 기억이 ‘이 정도면 아름다웠지’ 라고 추억할 수 있는 것이어서 고맙다.



장기하와 얼굴들 <그 때 그 노래> ‘너무 빨리 잊어버렸다 했더니, 그럼 그렇지 이상하다 했더니’

 

 헤어지고 얼마간은 밥도 못 먹고 울기만 했는데, 1주일쯤 후 갑자기 멀쩡해졌다. 안 먹히던 밥도 먹히고 눈물도 더 이상 잘 안 났다. 그 사람과의 사진, 카톡을 지우는데도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참, 그렇게 죽고 못 살고 울고 불고 해봤자 1주일이면 괜찮아지는구나... 싶은 생각에 허탈해지기도 했다. 장기하의 '그 때 그노래' 를 듣기 전까진 그랬다. 옷, 공책, 볼펜, 비밀번호, 말투. 일상 속에 느껴지지도 않던 그 사람의 흔적이 갑자기 낯설어 보이기 시작했다. ‘예쁜 물감으로 서너번 덧칠했을 뿐인데 어느새 다 덮여버렸구나 하고 웃었는데, 알고보니 나는 오래된 예배당 천장을 죄대 메꿔야 하는 페인트장이였구나’


안녕하신가영 <우리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기 위해서 어느 날 불 같은 사랑을 했고 잊을 수 없어 매일 울었고>


3개월쯤 지나자 슬슬 정상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슬슬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이별은 그냥 자연스럽게 잊혀지겠지 내버려두면 되는 한가한 일이 아니었다. 하루라도 빨리 고통을 끝내기 위해 기억을 끄집어 내고 흔적을 찾아내서 지우고 비우고 청소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러려고 그렇게 내 열정을 바쳐 사랑했나 싶었다. 소중하던 추억들이 이제는 치워야 하는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참 괴로운 느낌이었다. 3년의 시간은 다 뭐였을까. 우린 결국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기 위해서’ 그 모든 말과 행동을 나눴던 것일까.


오랜만에 꺼내본 내 이별의 맛은 아직도 참으로 씁쓸한 맛이었다. 바보처럼 사랑하고 치열하게 아파하던 옛날의 내가 참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다. 그 때는 그 감정들을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몰랐는데, 이제야 드디어 조금씩 알 것 같다. 영원히 이별이 오지 않을거라 믿고 철없이 반짝였던 시간들. 그 때의 나를 만나면, 영원히 이별은 오지 않을테니 지금처럼 사랑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별 그 자체는 씁쓸하지만 그 덕에 내 젊음을 더 빛내준, 그리 싫지만은 않은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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