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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우 Nov 05. 2022

가짜 결혼식과 대리남편

“그러니까 나보고 가짜 남편 역할을 해달라는 거야?”


웨딩 매니저인  대학동기 고은이는 결혼식 하루 전날 파혼 통보를 당한 예비신부를 위해 대리 남편을 찾고 있었다. 가짜 남편까지 내세워 결혼식 강행하려는 이유는 신부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오래  투병생활을 해온 신부의 아버지는 기껏해야   정도의 삶이 남았다고 했다. 신부는 아버지의 소원인 딸의 결혼식을 마지막 선물로  드리고 싶어 한다고 했다. 딱한 사연은 이해가 됐지만 그래도 생판 모르는 사람의 대리 남편을 한다는 것이 깨림찍했다. 하지만 내가 막 거절하려던 순간 고은이는 나를 급하게 붙잡았다.


“야, 사례금은 들어보시고 결정해야지. 천만 원.”


그렇게 난 다음날 턱시도를 입고 신랑 대기실에 앉게 되었다. 한 시간짜리 결혼식에서 눈 딱 감고 연기만 하면 천만 원이라니, 이런 제안을 누가 마다할 수 있겠는가. 처음 마주한 신부의 모습은 아버지를 생각하는 그 따뜻한 마음만큼이나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하얀 드레스만큼 빛나는 그녀의 눈망울은 선함으로 가득했다.


“이런 어려운 부탁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난 돈값을 해야겠다는 책임감에 내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결혼식 내내 촉촉이 젖은 신부 아버지의 눈가를 보고 있으니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세삼창과 팔 굽혀 펴기를 시킨 짓궂은 사회자가 원망스럽긴 했지만, 결혼식은 무사히 잘 마무리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통장에 입금된 천만 원을 은행 앱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야, 김고은.  이거 어떻게 해야 해… 자꾸 이분이 만나자고 연락을 하시는데.”


문제는 신부 아버지가 예정대로 돌아가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기적이라 말했다고 한다. 그의 몸속 암세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건강을 되찾은 그는 사위와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수시로 오는 그의 전화에 난 곤란한 지경이 되었다.


“미안해, 내가 어떻게든 정리를 해볼게. 이상하다, 분명 금방 돌아가신다고 했는데…”


고은이는 사과를 하며 신부 아버지의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자 그로부터 전화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결한 건지 물어보았지만  고은이는 몰라도 된다며 날 안심시켰다. 그렇게 다시 한 달이 지나고, 주식에 투자한 천만 원이 오백만 원으로 쪼그라들었던 어느 날, 신부 아버지로부터 한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필요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네. 부디 희망을 갖게. 남자로서 응원하겠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문자에 난 고은이를 찾아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말을 하라고 닦달했다. 그녀는 머뭇대더니 내게 사실을 말했다. 그녀의 대답은 내 머리가 아득해질 만큼 황당했다.


“… 그러니까 내가 알고 보니 자식을 만들수 없는 남자로 드러나서 이혼을 당한 거라고?”


“응…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이 최선이었어. 신부 아버지가 워낙 손주 보기를 바라시기도 했고.”


그제야 의사의 도움을 받아보라는 그의 문자가 이해되었다. 천만 원이 절반으로 쪼그라든 것도 속상해 죽겠는데, 내 정력도 쪼그라들었다니…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이 없자 고은이는 쭈뼛거리며 말했다.


“아… 근데 신부 아버지가 따님 이혼 사유가 따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려야 한다며… 주변분들한테 이야기를 좀 하셨다고 하네… 혹시라도 결혼식에서 마주쳤던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오해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어요…”


“야 김고은!”


그날 저녁 고은이는 길길이 화를 내는 날 달래기 위해 호텔  최고급 프렌치 식당에서 가장 비싼 코스요리와 고급 와인을 대접했다. 화가 풀릴만 하면 다시 생각이 나서 화가 나고, 다시 화가 내렸다 올랐다를 반복하는 동안 고은이는 내 화를 달래려 밤새 애를 썼다. 쉽게 누그러지지 않던 내 화는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간신히 가라앉았다.


“너무 억울해하지 마. 그래도 난 너 멀쩡한 거 잘 알잖아. 너 완전 남자로 멀쩡해.”


고은이는 엄마가 아이 달래듯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토닥였다. 와인을 두병이나 비우고서 내려온 호텔방 침대 위에서 난 내 남성성에 문제가 없음을 고은이에게 증명한 직후였다. 그것도 여러번.


“그치, 나 멀쩡하지? 넌 이제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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