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 아무도 모른다더니, 과연 참말이었다. 우리 부서 막내 미애사원이 결혼한다는 소식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일이었다. 스물다섯 아직 꽃다운 싱그러운 나이에 벌써 결혼이라니. 그녀가 수줍게 내민 청첩장의 신랑 이름을 보고 난 순진한 웃음을 터뜨렸다.
“신랑 이름이 우리 옥철수 과장이랑 같네~ 성씨가 희귀한데 혹시 신랑이 옥 과장이랑 친척 아닌가?”
근데 뭐지? 왜 저 노총각 옥 과장이 그녀 뒤에서 볼이 발그래해져서 능글능글 웃고 있는 거지? 왜 저래 불길하게. 뭐야 왜 미애 사원이 옥 과장 팔짱을 끼는 거야?
부서 직원들이 그 둘을 둘러싸고 축하 인사를 주고받은 것을 보며 난 혼란스러웠다. 때 묻은 와이셔츠에 누렁니가 트레이드 마크인 옥 과장이 어떻게 감히 우리 순결한 미애 사원을… 난 마치 끔찍한 범죄 현장을 목격하는 것 마냥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 아니 미애 사원, 왜 굳이… 응? 응?”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모두들 갑자기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내 표정을 동영상으로 찍던 박 대리가 “몰래카메라!”라고 외쳤을 때야 난 정신이 돌아왔다. 미애 사원의 첫 출근날에 내 아이디어로 우리 부서원들은 합심해서 그녀에게 몰래카메라의 추억을 선물해준 것이 기억났다. 그 복수를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당하다니 뒤통수가 얼얼했다.
의심 많은 날 속이기 위해 일부러 가짜 청첩장까지 인쇄소에서 찍어왔다고 한다. 그렇게 촬영된 나의 표정은 연말 송년회에서 최고의 영상으로 전 직원들 앞에 상영되었다.
그날의 기억이 추억이 되고 아련하게 잊힐 즈음, 난 옥 과장에게서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받았다. 내가 그다음 해에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고 벌써 이년이 지났으니 삼 년 만의 연락이었다.
“저… 부장님, 잘 지내시지요? 오랜만에 연락드리는데 죄송한 부탁을 드려야 할거 같아서요… 저, 미애 사원이랑 저랑 기억나세요?”
그날의 굴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눌한 말투로 느릿느릿 말을 꺼내는 것이 여간 의뭉스러운 말투가 아니었다. 내가 비록 나이는 더 먹었지만 눈치는 죽지 않았다.
“아~ 그럼 기억하지. 내가 자네 결혼식에서 축가도 불렀잖아. 이제 애가 세 살쯤 됐으려나? 미애 사원, 아니 재수 씨는 잘 있지?”
내 천연덕스런 대답에 아마 스피커폰 너머 직원들이 웃음을 삼키고 있겠지. 그래도 이렇게 날 잊지 않고 장난을 걸어준 직원들이 그립고 고마웠다.
“…아 부장님! 그게 아니잖아요! 여보, 여보, 아냐 내 말 좀 들어봐… 뚝”
옥 과장은 비명 같은 다급한 몇 마디를 다 마치지 못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난 장난을 뭐 이렇게 맥락 없이 끝내나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너무 유머러스하게 받아쳐서 다들 당황했나 싶어 뿌듯했다.
그날 난 몰랐다. 옥 과장이 그 가짜 청첩장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는 걸. 내가 이직한 다음 해 그가 옆 부서 노처녀 고 부장과 눈이 맞아 결혼했다는 걸. 고 부장이 그 가짜 청첩장을 옥 과장의 추억상자에서 발견했다는 걸. 눈이 뒤집힌 고 부장 앞에서 옥 과장이 벌벌 떨며 스피커폰으로 내게 전화했었다는 걸.
세상일 정말 모를 일이다… 미안해 옥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