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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우 Nov 16. 2022

막내 여사원이 건낸 청첩장의 후폭풍

세상일 아무도 모른다더니, 과연 참말이었다. 우리 부서 막내 미애사원이 결혼한다는 소식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일이었다. 스물다섯 아직 꽃다운 싱그러운 나이에 벌써 결혼이라니. 그녀가 수줍게 내민 청첩장의 신랑 이름을 보고 난 순진한 웃음을 터뜨렸다.


“신랑 이름이 우리 옥철수 과장이랑 같네~ 성씨가 희귀한데 혹시 신랑이 옥 과장이랑 친척 아닌가?”


근데 뭐지? 왜 저 노총각 옥 과장이 그녀 뒤에서 볼이 발그래해져서 능글능글 웃고 있는 거지? 왜 저래 불길하게. 뭐야 왜 미애 사원이 옥 과장 팔짱을 끼는 거야?


부서 직원들이 그 둘을 둘러싸고 축하 인사를 주고받은 것을 보며 난 혼란스러웠다. 때 묻은 와이셔츠에 누렁니가 트레이드 마크인 옥 과장이 어떻게 감히 우리 순결한 미애 사원을… 난 마치 끔찍한 범죄 현장을 목격하는 것 마냥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 아니 미애 사원, 왜 굳이… 응? 응?”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모두들 갑자기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내 표정을 동영상으로 찍던 박 대리가 “몰래카메라!”라고 외쳤을 때야 난 정신이 돌아왔다. 미애 사원의 첫 출근날에 내 아이디어로 우리 부서원들은 합심해서 그녀에게 몰래카메라의 추억을 선물해준 것이 기억났다. 그 복수를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당하다니 뒤통수가 얼얼했다.


의심 많은 날 속이기 위해 일부러 가짜 청첩장까지 인쇄소에서 찍어왔다고 한다. 그렇게 촬영된 나의 표정은 연말 송년회에서 최고의 영상으로 전 직원들 앞에 상영되었다.




그날의 기억이 추억이 되고 아련하게 잊힐 즈음, 난 옥 과장에게서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받았다. 내가 그다음 해에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고 벌써 이년이 지났으니 삼 년 만의 연락이었다.


“저… 부장님, 잘 지내시지요? 오랜만에 연락드리는데 죄송한 부탁을 드려야 할거 같아서요… 저, 미애 사원이랑 저랑 기억나세요?”


그날의 굴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눌한 말투로 느릿느릿 말을 꺼내는 것이 여간 의뭉스러운 말투가 아니었다. 내가 비록 나이는 더 먹었지만 눈치는 죽지 않았다.


“아~ 그럼 기억하지. 내가 자네 결혼식에서 축가도 불렀잖아. 이제 애가 세 살쯤 됐으려나? 미애 사원, 아니 재수 씨는 잘 있지?”


내 천연덕스런 대답에 아마 스피커폰 너머 직원들이 웃음을 삼키고 있겠지. 그래도 이렇게 날 잊지 않고 장난을 걸어준 직원들이 그립고 고마웠다.


“…아 부장님! 그게 아니잖아요! 여보, 여보, 아냐 내 말 좀 들어봐… 뚝”


옥 과장은 비명 같은 다급한 몇 마디를 다 마치지 못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난 장난을 뭐 이렇게 맥락 없이 끝내나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너무 유머러스하게 받아쳐서 다들 당황했나 싶어 뿌듯했다.


그날 난 몰랐다. 옥 과장이 그 가짜 청첩장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는 걸. 내가 이직한 다음 해 그가 옆 부서 노처녀 고 부장과 눈이 맞아 결혼했다는 걸. 고 부장이 그 가짜 청첩장을 옥 과장의 추억상자에서 발견했다는 걸. 눈이 뒤집힌 고 부장 앞에서 옥 과장이 벌벌 떨며 스피커폰으로 내게 전화했었다는 걸.


세상일 정말 모를 일이다… 미안해 옥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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