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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우 Feb 24. 2023

예민한 사람들

출근하던 남자는 내려야 할 지하철역을 두 정거장 앞두고 서둘러 내려버렸다. 귀가 유난히 예민한 남자는 열차 안에서 시끄럽게 통화하는 누군가의 소리에 참을 수가 없었다.


머리를 감싸며 역을 빠져나온 그는 평온을 찾아 이끌리듯 근처 덕수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을아침의 덕수궁에는 기분 좋은 자연의 소리들이 그를 위로하듯 맞이했다. 대숲이 바람에 서걱대는 소리, 은행열매가 바닥에 툭 떨어지는 소리, 돌바닥에 빗자루 쓸리는 소리.


자연만큼 평온해진 마음으로 그는 다시 출근길로 돌아왔다. 예정에 없던 산책으로 늦게 사무실에 도착한 그는 이미 업무를 시작한 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살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의 엉덩이가 의자에 닿기도 전에 옆자리 동료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자리 그녀는 그가 지하철에서 머리를 감싸며 내렸을 때처럼 일그러진 표정으로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그는 자신의 신발 바닥에 으깨진 채 붙어있는 은행열매를 발견하고 아차 싶었다.


귀가 예민한 남자의 옆자리 그녀는 코가 유난히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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